<WRAP todo> 아래의 내용은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WRAP>
영화를 보던지 책을 읽던지 혼자 읽고 땡 해버리면 재미 없으니까 여기다가 간단한 감상이라도 적자.
올해 관람한 영화는 딱 10편!
'산문집'이라곤 했지만 소설처럼 읽을 수 있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필자의 정서가 여전히 묻어나고, 내 성격상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책. 하지만 전작 '보통의 존재'보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관심, 연애와 여자에 대해 다소 방어적이었던 필자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같이 따라가는 모습이 즐거웠다. 그리고 그가 끝내 극복하지 못한 자기 인간성의 한계를 자각하면서, 나도 그런 한계를 느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의 열린 결말은 왜 내가 괜히 짜릿해 지는 걸까. 나도 그런 순간이 올 수 있는 걸까?
소심하고 방어적인 성격을 갖게 된 내 성격으로 비추어서 주인공의 사고방식에 대해 많이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 성격이 결국 자신의 의지를 파먹고 뇌를 좀먹듯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다. 주인공은 사람들로 부터 자신의 '의지'라는 것을 제거 당한것만 같았다. 물론 그의 행동까지 공감할수는 없었다. 나는 그러한 행동조차도 눈치를 많이 보고 방어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어서, 도저히 실행에 옮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사상이나 예절이나 법규같은게 좀 더 고도화 되어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작가에게 묻고 싶었는데, 절망스럽게도 작가는 세번의 자살시도 끝에 결국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사실이 소설 내용보다도 더욱 절망적이었다.
굉장히 현실에 밝은 사람인데도 다른 사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풀어나가는데 능숙한 사람이라는게 너무 매력적인 사람이다. 나는 다른사람의 마음이나 행동에 얼마나 관심같은것 없이 살아왔던 걸까. 주관적인 자신의 생각도 객관화 해서 풀어나가는 그녀의 글을 보면서 정말로 자존심은 낮추고 자존감을 높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고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것으로 하여금 페이스북에 게재하는 글도 더 잘 쓰고 싶어졌다.
아아 이나이모 찬양해.
조금 더 어릴때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년들이 어린시절의 여러가지 모습을 나타낸것 같기도 하면서도, 사실은 내 속에 너무도 많았던 여러가지 자아들을 다 보여주고 있는것 만 같았다. 책임 또한 무겁게 느껴야 하겠지만, 무엇이든 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 나는 부모님도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나는 그 시절에 혹은 아직도 주변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길 망설이는 걸까.
심지어 집중력도 떨어졌으니 큰일이다 정말.
너무 늦게 접해서, 그 유명한 엔딩이 나오는 소설 말미에서는 혼자서 나지막이 탄식하고 말았다.
평소에 내 자신을 낮추어서 생각하고 말해온 경험이 많았다. '공부를 해야만 해', '너는 멍청해', '이것도 다 하지 못했다니' 같은 말. 이런 말들이 나를 겸손으로 포장한다고 여태 생각해왔었는데, 내가 스스로 먼저 내 자신을 판단하고 나를 불행하게 하면서도, 실은 나를 둘러싼 환경을 탓하면서 내 책임을 회피하는 옹졸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타인에게 비폭력적으로 말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 가장 내게 중요했던것은 타인의 말을 폭력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스스로의 욕구에 귀기울이며, 이에 따른 책임을 내가 온전하게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적어도 내 자신에게는 폭력적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책. 이 책을 추천해준 그 분께 감사를.
단편 소설 몇편을 엮어서 만들어낸 책. 진중하지 않게 가볍게 읽어낼 수 있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뚜렷하지 않지만, 주인공과 그 등장인물의 생각이 구구절절 공감되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 옛날 김국진이 나왔던 테마게임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특별한 결론을 내어주진 않았지만, 내가 어떻게든 주인공 입장이 되어 자유롭게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책. 제목은 '여자 없는 남자들' 인데,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항상 여자가 있거나 있었던 사람들 뿐이었다. 쌍놈새끼들.
솔직하게… 공감하기 어려운 책이었어. 이분이 드셨던 먹거리도 그렇고, 그것으로 느끼셨던 감성들도 좋기는 했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웠던 이야기. 어르신께서 조곤조곤 말씀해주는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 책, 뭔가 엄청 서늘하다.
단편으로 구성되어있는 책. 첫 파트가 '채식주의자' 나중에 말을 좀 더 정리해서 감상평을 쓰자. 해설이 덧붙여 있어서 해설과 감상을 비교하면서 정리해야겠다.
지금까지 느낀 점의 키워드를 정리하면,
'당연함'의 폭력, 그 당연함 때문에 오랜시간을 함께 해도 서로를 모르는 것. 당연하게 느끼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에 질문을 던지지 못한 것. 서늘함. 하지만 주인공 역시 다른 사람과 대화할 의지는 없어 보임. 단순히 화자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당연함'에서 피해자가 되는 입장. '더위'의 억압. (대사 '더워서'가 그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임)
이어지는 2부는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완전하게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느낌을 정리하면 '돌이킬수 없는 연민'.
해설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폭력과 치유, 동물과 식물에 빗대어서 감명깊게 읽을 수 있었지만 역시 뭔가 서늘하고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책. 마나가 별로 없을 때는 읽기 쉽지 않았다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이 반드시 음란함을 수반하는 것이라면, 나는 어느정도까지만 알고 지내는게 모두에게 이로운 것일까.
독서 진행중.
수학은 적절한 추상화 과정이 새로운 통찰과 새로운 힘을 낳은 것이다. 인간은 개념을 '발명'하고 결과를 '발견'한다. 머릿속에 돌멩이를 떠올려서… 수 개념도 생각하고 소수도 생각하고, 곱셈도 생각하고, 등차수열도 생각하고. 음수에 음수를 곱하는 예는 수학적으로 납득할 수는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적용하는가? 삼각관계? 적의 적은 친구?
아아 복소수 i 의 의미를 '위상'으로써 이해하는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욕조 채우기를 통한 우리의 인지부조화. 패턴인식 오류의 예.
타원과 포물선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원뿔'의 단면이라는 것!
미분과 적분이야기. 첫째 : 구하고자 하는 변수를 지정 둘째 : 해당 변수를 이용한 함수 공식을 설정 셋째 : 전체 답에 대한 그래프를 도출 넷째 : 이를 미분한 것을 답으로 취득.
세상의 모든 일에 수학이 숨어있고, 다시 그 수학을 다른 세상에 적용할 수 있다고 작가가 말하는 것 만 같고, 나는 어렵지않게 수긍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어려운 수학공식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무심코 지나칠 세상의 일에도 심오한 수학의 원리가 숨어있음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영양가 없다고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우리는 그 속에서 보이는 디테일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큰 그림을 보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여행기가 절반, 그리고 그곳에서 돌아보는 자기 자신과 자기 비판이 절반쯤 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불행히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니어서 그러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계속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을 기록해서 책으로 보여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근원에 대해 말하면서(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고 했다. 내게는 유년기의 친구들이 그랬다.) 그러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방법, 아직 완전히 존중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천천히 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에 느끼는 감정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던 것 같다. 지성 보다는 감성에 집중한 책이다 보니 조금 오글오글 하기도 한 책이었다. 근데 나는 좋았다. 가감 없이 소탈하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만 같아서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외롭지 않았거든.
가벼운 그림체, 무거운 담론. 다이어트를 논하면서도 비주얼에 시선을 집중한 것이 아닌 건강을 논하는 멋진 웹툰.
어렵지만, 작가의 자아성찰과 성장의 궤적을 알 수 있었던 책. 그리고 독자에게 끈질기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는 생각. 화자 싱클레어는 처음 자신에게 닥쳤던 작은 시련조차 스스로 극복해내지 못하고 전전긍긍 했지만, '데미안'을 만나면서 모든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배워왔던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넓혀가고, 자신의 세계를 깨트리고자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올바른 생각에 대한 규칙이 확립되고서 부터 진정 자신이 추구한 바를 찾기 시작했고, 그 존재였던 에바부인을 만나고서 그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어서 서술예정…
우울하고 읽기 힘들었던 책
어쩌면 올 상반기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여성버전 일수 있다는 생각. 나같은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뭔 그리도 걱정이 많은 삶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한것은 이 사람은 자기를 의식하지 못하는 모습을 엄청 싫어하면서 꿋꿋하게 자신이 의도하는 삶을 추구했던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꾸준하게 투쟁해온 사람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시선을 자신에게 두면서 채찍질 하는 삶은 확실히 쉽게 행복을 느끼는 삶은 아닌 것 같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항상 죽음을 의식하는 것도 타인의 삶의 자세로써 굉장히 감명 깊다.
작가가 끝끝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마지막 일기를 쓴지 4일만에 자살을 택한것은 섬뜩하고 충격적이면서도, 끝끝내 투쟁의 에너지를 다하였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적어도 작가는 자기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이 '객'은 아니었고, 온전히 '주'로써 의식된 삶을 살고자 노력했고, 그 모습을 주변사람들은 많이 안타까워 했다.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역시 자기 주도적이었다. 적어도 이사람은 좋고 싫음의 구분이 정말 명확하고, 추구하는 것도 명확했다.
하지만 나는 그정도 디테일의 삶을 살 자신이 없어. 내가 아는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
작품을 전시한것보다 작품을 그래픽 등으로 재구성 하여 작가의 삶을 조명한 전시회.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엇보다 자신을 확신했던 작가의 강한 자아를 느끼고 왔다. 작품도 멋지긴 했지만, 기실 작품보다도 모네의 삶이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와 함께해준 연인을 보며 그렸던 그림이 더 멋지게 느껴졌다. 그가 그린 말년의 그림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추상화 되었다는 생각을 했는데, 위키에서 나중에 작가의 눈이 안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묘한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를 온전히 누군가에게 공유하지 못하고 마음과 머리로만 담아둔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큰 외로움을 느꼈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그림세계를 확신하며 수많은 명작을 남긴 모네를 보면서, 합리화와 정신승리로 점철된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캐릭터, 스토리, 월드. 세가지 관점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스토리를 창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회. 하나의 익살스러움이 맥락없는 웃음이 아니라 치밀한 고민과 디테일의 구성 끝에 만들어지는 하나의 결론이란 점에서 마냥 웃음만 나오는 전시는 아니었다. 사실 굉장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창작자들의 열정과 장인정신이 느껴지는것 같아서 숙연했다.
항상 창작의 고통을 겪는 창작자들에게 경의를. 그리고 나 역시 창작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자.
작년 제주도 여행 중 이중섭 미술관에서 이미 이중섭의 미술작품과 생가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힘있는 소 그림으로 기억되는 작가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그리워하고 만나지 못해 절망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미술을 감상하면서 알 수 있었다. 작가의 변화 무쌍한 마음은 그림에도 나타나서, 단조롭고 건조한 색채로 슬픔과 허무함을 나타내는 가 하면, 강한 색채와 과감한 붓터치로 표현되는 희망찬 모습도 그림으로 그렸다. 그가 가족과 헤어진 후, 첫 개인전을 열기 전에 만들어 냈던 소 그림은, 그의 젊은 날에 그린 슬퍼보이는 습작들에 대비하여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보는 사람에게 전달해 주었다. 짧지만 단란했던 가족들과의 한 때가 있었기에, 그는 가족들과의 즐거운 모습을 그림으로나마 계속 담아내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부인에게 근황을 전하기 위해 계속 썼던 편지가 그 슬픔을 증폭시켰다. 끝끝내 가족과의 즐거운 한때를 다시 만들어내지 못하고 연고 없는 타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기에, 그의 인생이 더욱 절절하게 기억에 남고, 그의 작품들은 영원히 회자되지 않을까. 제주도의 전시도 그랬지만, 이번 전시도 너무도 슬픈 전시였다.
사실 이전에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혼동했기 때문에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 그 유명한 다비드 상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는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예술가의 미술전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게, 스스로를 몰아붙일수 있는 무서운 동기부여와 열정에 항상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람은 겸손 까지 더해져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뭐 그와는 별개로 성격이 굉장히 괴팍한 사람이긴 하더라.
스미스소니언에 전시된 다양한 사진들. 아무래도 박물관에 전시되는 사진들이다보니 깊은 메시지와 은유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쪽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자연현상과 생태에 관한 사진들이 매우 많았고, 그 신기함을 있는 그대로 간접적으로 경험하기 정말 좋았던 사진전. 다만 전시회 자체가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진전에서 큰 흐름을 느끼기는 어려워서 개인적 취향은 아닌게 아쉬운 사진전.
전세계의 다양한 생태, 인간 생활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많아서 짧은 세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끼는 연습을 했다고 생각.
가장 감명깊었던 사진을 카톡 프사 배경으로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