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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2

문화노트/2017년

spoiler alert!

영화

  • 꿈의 재인 -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어.”
  • 스파이더맨 홈커밍 - 스파이더맨이 마블품에는 돌아왔다. 하지만 내 스파이더맨은 돌아오지 않을것 같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최고의 스파이더맨은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디에서 바뀌지 않을 것 같다.
  • 덩케르크 - 직접 책에서 배운 역사가 아니었던 고로 높은 공감을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병사들의 귀환을 위한 그들의 고군분투를 느끼기는 좋았다. 무엇보다 영화에 나온 사람들 왜 죄다 잘생기고 콧대 높고 옷 잘입음? 나도 유럽사람처럼 옷입고싶다.
  • 러빙 빈센트 - 스토리보다는 눈이 즐거운 영화. 반 고흐의 화풍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정말로 좋아할 영화였을 것 같다. 그는 외로움 속에 죽음을 택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영화를 보면서 그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그를 걱정한 사람이 정말 많았다는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끝에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전람회

데이비드 슈리글리

  • 2017년 1월 1일 일요일. 이태원 현대카드 Storage.

대번에, 이 사람이 “이말년의 상위 호환이자 프로토타입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미술가.

가볍게 감상할 수 있는, 생각보다는 볼륨이 작은 미니 전시회.

알고보니 내가 예전에 샀던 제이슨 므라즈 'Im Yours' 앨범의 그림이 이 사람 작품.

몇몇개의 조소 작품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이 사람은 일러스트를 통해 많이 표현했다고 생각.

아무래도 자주봤던 영국 TV Show 인 Top gear에서도 그렇듯 영국 사람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가 크게 느껴져서 보는 내내 유쾌했다. 특히 이사람이 그린 일러스트가 몇몇 벽에 가득하게 채워져 있는데, 거기서 풍자적인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단순한 그림이었는데도 내내 재밌는 그림을 찾아다녔다. 대표적으로 “The Salesperson”이라는 제목에 해적이 총을 들고 있는 그림이라던지…

사람들의 생각을 강제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 메시지가 구체적이면서 생각할 여지를 많이 만들어주는 그림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 만든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많이 드러나는데, 의미없이 스위치를 켰다가 끄는 모습이라던지, 말을 세탁기에 넣고 빨아서 타고 다닌다던지… 전시하는 동안 자유롭게 생각하면서도, 그게 자칫 고민스러움이 되지 않아서 전시회 감상하는 내내 즐거웠었다.

여담이지만, 이 전시회 근처에 있는 현대카드 오디오 청음매장도 그렇고, 현대카드가 주최하는 슈퍼콘서트와 같은 행사도 그렇고, 이렇게 문화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투자와 홍보를 수행하는 카드사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호감이 느껴진다… 나는 당한 것인가.

하지만 카드를 만들진 않을거야.

알폰스 무하 -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 전.

  • 2017년 1월 30일 월요일. 예술의 전당.

현대 서양 미술사에 한 획을 긋고 '아르누보' 화풍을 만들어낸 1900년대의 선구자. 체코 출신.

처음 그림을 보고서 느꼈던 것은 타로카드의 그림들과 프린세스메이커. 난 쓰레기인가.

그간의 보아왔던 몇몇 미술가들의 그림들이, 자신만의 그림 세계 속에서 엄청난 고집과 집념을 불태우며 고통속에 완성한 그림들이 많았다면, 이 사람의 그림은 행복하고 자유롭게 그린 그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이 성당과 같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과거라면, 그것을 대중 앞으로 끌고나와 누구나 미술을 느끼고 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 이 사람의 그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 본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 텐데도, 가구, 장신구, 부채, 과자와 담배의 포장지 등에서 이 사람의 일관된 표현방식을 보고 느낄수 있는 점에서 산업 디자인의 기본을 다진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

그림을 보고 느낀 첫인상에서 바로 익숙함을 떠올릴 수 있었듯이 현대 미술에 이사람의 화풍이 많이 배어 있어서 은연중에 그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그래서 작품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이사람이 원조구나! 하고 반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전시회에서 이것을 “아르누보”라고 일컫고 있었음.

거의 모든 그림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나오는데, 자신의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페르소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 그 표현을 위해 사진을 적절히 활용하고 끝없이 연습한 점이 고전적인 회화에서 이어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결국 자신의 표현방식이 현실과의 접점이 이어져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던 전시회.

그림이 정말 예쁘다. 정말로. 시선이 오래 머물었던 그림들이 꽤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계:봄”. 작품속에서 관람자를 응시하는 여자의 눈빛과,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가 한번에 집중하게 만들고는, 그 전체적인 실루엣으로 시선이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림속의 여자가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YOUTH - 청춘의 열병.

  • 2017년 3월 12일 일요일. 대림 미술관 D-Museum.

전체적으로 공감하기는 쉽지 않은, 그런 전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가보자고 생각하고 갔던 전시였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많다. 커플들 속에서 향수냄새를 견디며 관람해야했다. 젊음이라는 것이 때로는 핍박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면죄부가 되기도 하는, 그때만 가질 수 있는 속성이라는 의미의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에는 여러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서양식 젊은이의 모습들을 담아놓고 그 상징들을 전시해 놓았다. 스케이트 보드,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놓은 방 사진. 술담배.

그야 말로 이유없는 반항들이었다.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방사진이었다. 제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미적인 감각도 없이 덕지덕지 붙여놓은 포스터들.

나도 여지껏 살아오면서 내 방을 좋아하는 것으로 꾸며봤던 적이 한번은 있었지 않았나 떠올려보니 한번은 있었네. 건프라를 사다가 전시해놨었지.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볼때마다 손가락질을 하거나, 가지고 놀다 때려부수기 일쑤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 이라는것을 사람들이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는 척… 도 하지 않았지. 그들은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서 꾸며놓은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오랫동안 그 사진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위대한 낙서 - 쉐퍼드 페어리전

  • 2017년 4월 9일 일요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미술의 영향력, 작가의 성장, 반전과 평화

역시 사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러서 관람. 날씨도 정말 좋았다. 그 유명한 오바마의 'HOPE' 포스터가 이 사람의 작품임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보이는대로의 표현속에서, 그 풍자를 심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주목시키고, 그 속에 큰 목소리를 심어놓고서 끊임없이 보는 사람에게 주제를 던진다.

위대한 낙서 3번째

  • 2017년 7월 16일 일요일. 압구정동 현대 미술관.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그래피티 예술의 발달.

함께 해주신 이영은님께 감사를.

색채의 황홀 - 마리 로랑생 전

  • 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포스터의 화풍에 이끌려 전시를 가게 되면 항상 전시물 보다도 그 사람의 인생에 매력을 느끼고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 역시 그렇다. 열정적이어서 기승전결이 분명했고, 그 끝이 행복했던 화가. 그림의 스타일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해 나가서 이 사람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던 전시였다고 생각. 그래서 미술에 입문하여 '세탁실'에서 다른 작가와 경쟁하며 고뇌한 시기를 지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던 시기의 작품을 비교하면 정말 재밌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였다. 무엇보다 이 사람의 그림이 너무 좋다. 너무도 편안하고 우아한 화풍. 꿋꿋하게 사람, 특히 여자만을 그려내었던 고집도 너무 좋고. 화사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그림과 편안한 곡선들 사이에서 보여주는 날카로운 눈매의 디테일이 묘하게 균형을 이루어서 재미있던 그림들.

서적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3월 25일 완독.

그 동안 잘 몰랐던 인류의 궤적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인류 발자취를 예측 하는 아주아주 냉소적인 책.

하지만 나는 우울하지 않다. 인류는 어떤 목적없이, 정확히는, 목적은 있었지만, 그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결과를 받아들며 지금의 상황에 와있는 것이다.

사피엔스는 또 짧은 기간, 그 스스로의 육체를 발전시킬 여지도 없는 새에 또 다른 변화를 받아들고, 그 결과를 온전히 겪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나는 살아가리라. 나는 우울하지 않되 그저 궁금하다.

소년이 온다, 한강. 4월 12일 완독.

이 작가는 인간의 고통과 폭력을 표현하는데 정말 도가 튼 사람인것 만 같다. 그리고 요즘 시국과 잘 맞아 떨어지는 책으로 느껴져서 더욱 오래 기억될것 같은 책이라고 생각.

작가는 광주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과정에서 군과 권력으로 부터 억압된 피해자들의 부서진 몸과 마음을 덤덤하고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금방 죽는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로써 표현해 내었다. 그리고 그 살아남은 사람들이 마치 그 전쟁과도 같은 상황을 증언하듯 덤덤하게 풀어나가는 글귀가 읽는 사람에게 마치 죄책감을 주는 것 처럼 느꼈다.

아마 그런 폭력에 스스로 무덤덤해지게 되면,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도 무덤덤해지게 되는 그런 죄책감.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5월 7일 완독.

어떻게 살것인가로 시작하여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말하는 책.

썰전의 유시민 작가가 읊어준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아는 것이 그렇게 많으시면서도 이렇게 쉬운 문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이분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보통의 이런 책들이 그렇듯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다.

  • 좋아하는 것을 해라.
  • 사랑하고 연대하라.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질 것. 그것이 진보.
  • 스스로을 존엄하라.
  • 자기주도적으로 생각할것.
  • 신념에 잡아먹히지 마라.
  • 이름을 날리는데 연연하지 마라.

특히 진보적인 성향으로 유명한 사람으로써, 이분이 어떻게 진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무엇이 본인이 생각하는 '진보'인지를 잘 알려주어서 읽기 좋은 책이었다.

칼의노래, 김훈, 6월 어느날 완독.

아주 남성적이고 아주 외로웠던 이순신의 일대기.

그의 적은 단순히 왜놈들은 아니었으리라.

자신을 둘러쌌던 수많은 적들과 싸웠던 고독했던 이순신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사람은, 단순히 영웅으로 추켜세우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인것 같다.

그렇게 큰 공적을 쌓아 영웅이 된 배경은 본인의 의지가 강렬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웠기 때문이리라.

덕혜옹주도 그렇고, 이 역사적인 인물들은, 거스를수 없는 역사의 흐름속에서 자기 자신들을 어떻게 그렇게 굳건히 지켜내는 걸까.

나는 여전히 알수 없었다.

나중에 감상을 좀더 추가하면서,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의 모습에서 이사람의 모습이 겹치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은 영웅으로 추켜세우고, 조정은 장군을 핍박하고 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이창실 역. 7월 어느날 완독

자기 자신의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노인의 이야기.

끝까지 자신의 자유의지를 관철한 인간의 이야기.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유승민, 7월 20일 완독.

왜 정치하는지는 잘 알것 같은 책. 하지만 대선이라는 목표를 두고 쓴 책이라는 느낌을 완전히 지워내기는 어려운 것이 아쉽다. 이분은 박근혜 후보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것을 제외하면 나름 일관성이 있는 정책과 철학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는 사람 됨됨이를 판단함에 있어 가장 크게 보는 점이(좋은 방법인지 나쁜 방법인지 판가름 하기 어렵지만), 사람의 일관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분은 일관성이 있는것 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일관성과 본인의 식견을 더하여 “무엇이 보수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점에서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앞서 읽었던 유시민의 “어떻게 살것인가”와 비교해서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에 있어서는 본인이 공부해온 배경이 풍부하다고 느꼈고, 국방에 있어서는 실제로 국방위원회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이 다양하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바른정당을 잘 이끌어주시길. 이 사람의 행보는 주목할만 한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완독

말그대로 82년생 김지영을 주인공으로 현대사회에서 여성에게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차별을 덤덤하게 그려내는 책.

엄마가 생각이 났다. 계속 참고 사시는 우리 엄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한마디 말도 못하고, 아니 사실은 말을 해보았지만, 듣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단념해버리셨던 우리 엄마. 아무것도 모르며 긍정적으로 살아왔던 주인공 김지영씨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자꾸 겹쳐보였던 것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다른 것은 다 좋았지만, 나는 소설에 관련자료의 출처가 표기된 것이 매우 불편하다.

이야기 하는 도중에 “내가 헛소리 하는거 같지? 아니거든? 이 출처좀 봐봐.”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빌려주신 이영은님께 감사를.

퀴즈쇼, 김영하. 9월 11일 완독

나태하고 허황된 20대 젊은이의 기묘한 모험.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출장의 큰 줄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어버린것만 같다, 질문을 잘 해야만 한다. 온통 모르는것 뿐인 이곳에서는 스무고개 하듯이 질문을 만들어 답변자에게 던져야만 한다. 답변자는 내가 물어본 질문 외에는 어떤 힌트도 내게 던지지 않는다.

다행히 적어도 내가 만났던 미국 사람들은, 내가 물었던 질문에 “맞아”, “아니야” 만을 담백하고 친절히 말해줬을뿐, “그것도 모르냐?”,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럼 그거지 다른게 또 뭐가있겠어” 같은 말은 첨언하지 않았다.

핑계로 일관한 삶을 살아온 주인공은 세상이 자신에게 던지던 질문에 대해 항상 궤변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퀴즈쇼를 통해 만나온 많은 인간군상과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그녀를 만나면서, 그가 새로운 책방을 열고 자신을 쫓아낸 노인을 찾아가면서는, 새로운 답을 찾으려 애쓴다는 인상을 크게 받았다. 이제서야 궤변이 아닌, 스스로 생각해서 내놓는 그런 답변.

Destruction of shell인가. 내가 작가의 의도대로 읽고 있는게 맞을까? 아니면 내가 책을 읽고 새로운 답을 내놓아도 괜찮은걸까?

빌려준 이재혁에게 깊은 감사를.

쇼코의 미소, 최은영. 10월 8일 완독

가장 마음이 일렁이던 책이다.

단편을 추려낸 소설집이며, 다음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쇼코의 미소
  • 씬짜오, 씬짜오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한지와 영주
  • 먼 곳에서 온 노래
  • 미카엘라
  • 비밀

'한지와 영주'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단편에 딸과 엄마가 나온다. 엄마 이야기를 듣는다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가니 빠르게 읽어지더라.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내가 전혀 뜻하지 않는 이유로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먹먹해질수밖에 없는것 같다. 그렇게 멀어지는건 내가 어쩔 도리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슬프다. 아마 지금의 내가 사람들로 부터 자연스레 멀어지고 있기 때문인것 같다.

빌려주신 이영은님께 감사를.

바깥은 여름, 김애란. 10월 20일 완독.

마찬가지로 단편을 추려낸 소설집이며, 다음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입동
  • 노찬성과 에반 - 확실히 아픈 강아지 이야기는 읽기 너무 힘들다.
  • 건너편
  • 침묵의 미래 - 이 책에 실린 소설 중에서 제일 신기한 내용을 담은 소설. 언어를 보존하기 위해 격리한 소수언어 민족들을 수용하면서 겉으로는 그들을 보존할 의도를 내비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을 사회로 부터 격리하여 서서히 말려죽게 만들고 있다.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짐으로써, 사실은 언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침묵'이라는 게 만들어내는 암담한 미래. 아니면 암담한 미래가 만드는 침묵…
  • 풍경의 쓸모
  • 가리는 손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지난번 소설이 '어머니'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며 읽었다면, 이번 소설은 '상실'을 키워드로 읽어내려갔다.

가장 머릿속에 기억남는 책은 '가리는 손'. 약자에 대한 시선에 있어서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으며, 누구든 무심코 냉소와 조소를 보내게 된다고 말하는듯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가 폐지줍는 노인에게 보내는 '틀딱'이라는 키워드에 숨어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이 책도 역시 빌려주신 이영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몬드, 손원평. 10월 28일 완독.

사람들에게 공감능력이 낮다고 평가받은 한 소년이 선한 친구도, 악한 친구도 만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나서 돌이켜보면, 공감능력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생각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함부로 타인을 재단하는 모습에서 쉽게 구역질이 느껴진다. 소년은 공감능력이 자랐기 때문에 마지막에 친구를 구해낸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자신의 마음은 예전과 같은데, 그냥 사람들 눈치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남 눈치 보지 않고 주도적으로 결정하기만 한것 아닐까. 소년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 것을 드러내기만 했던 것으로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공감을 충분히 이끌어냈다.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한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스스로 뜻을 펼치고서야 비로소 어머니가 품에 돌아온것이 이채로웠다고 생각.

나도 내 뜻을 펼칠수 있을까. 내 뜻은 다른 사람의 공감… 까진 아니더라도 인정과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11월 1일 완독.

소설이 너무 짧다.

화자는 처음에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철저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 기억조차도 자신이 느낀 바를 적은 것일 뿐, 이것 마저도 정확하게 기록하지는 못하는것 같다. 나는 아직도 소설의 강아지가 있는것인지, 없는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그저 화자는 반성조차도 모르는 완전한 악이 된 다음, '무' 로 돌아가는 것 처럼 느껴졌다. 완벽한 자아의 붕괴. 소설 도입부에 나왔던 불경 구절을 외우면서 말이지.

그의 세계속에서는 타인은 공감해줄수 없고 자신만이 타협없이 만들어낸 완벽한 자신의 세계가 있었다. 혹시나 타인이 발견해줄까 싶어 몹시 흥분하기도하고, 때로는 자신이 재미보고 있는데 타인이 끼어드는것에 거부감도 느끼는 오타쿠 같은 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세계가 천천히 지워지고 무너진다. 아주 혼란스럽게.

나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손을 내밀테니 누군가 그손 잡아줄 수 있어서, 계속 붙들려 있으면 좋겠다.

이 역시 빌려주신 이영은님께 감사를.

오직 두사람, 김영하, 11월 6일 완독

단편 소설집이며, 다음의 소설들이 모여있다.

  • 오직 두사람
  • 아이를 찾습니다 -
  • 인생의 원점 -
  • 옥수수와 나 - 스스로를 옥수수라 생각하는 정신병에 걸린 남자는 치료를 통해 극복해 나간다. 작가생활을 하는 남자는 이미 이혼을 한 전 부인과도 비즈니스적으로 계속 연락하는 찌질한 캐릭터다. 최후에 약을 먹고 다시 옥수수로 돌아오는 이야기. 가장 인상 깊었다.
  • 슈트 -
  • 최은지와 박인수
  • 신의 장난 - 취준생 남녀 4인이 어느날 방탈출 상황에 놓이면서 구출되지 못한채 서서히 죽어가는 이야기.

전체적인 이야기의 주제는 '미지의 미래' 가 아닐까하고 속으로 생각. 왜 이런 짧은 소설은 대책없이 벌려놓고 정리해주지 않는거야 왜.

이것도 역시 빌려주신 이영은님께 감사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11월 20일 완독

오랜만에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예에전에 단편 소설집을 읽었던 이후로 한해 정도가 지난 듯 하다.

그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색채를 느끼는 것처럼, 소설 처음에 읊어주는 모습들은 마치 시야가 좁은 세피아톤의 사진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친구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무던히도 애를 쓰던 주인공. 그리고 대학에 들어간 후 알지도 못한 채 친구들과 멀어지고 말았던 주인공. 그리고 그 상실감을 상처로 일생을 색깔 없이 지내온 주인공의 마음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왜냐면 나라는 인간은 항상 자신의 행동을 밤늦게 복기하면서 내가 혹시 멀어짐 당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 하는 부류의 인간이거든.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조언을 받고 자신이 피하려고 했던 마음의 불편함을 맞딱뜨리기 위해 친구들을 만난다. 이름도 청, 홍, 흑, 백이라니.

남자들인 청과 홍은 멀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주인공에게 해명하며 현재 자신들의 처지를 주인공에게 고백한다. 흑은 6년전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 했다. 백은 찾아온 주인공에게 용서를 구하며 그때 균형을 깰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주인공에게 털어 놓는다.

이 책은 끝나고 나서 마치 재미있는 고등학교 문제집 지문을 읽은 느낌을 줬다. 주인공의 결말을 예견해 보라는 듯이 끝나는 결말이 주인공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하지만 분명한건 해피엔딩이지 않을까. 주인공은 핀란드에서 자신을 멀리했던 친구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생각이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이제는 드디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하고 지나치게 조심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풍경을 있는 비로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것만 같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가 일하고 있는 지하철역의 모습을 주인공이 말해줄때 드디어, 나는 그가 일하고 있는 곳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마치 흑백 텔레비전에서, 컬러로 전환된 느낌을 받았다.

결국 모든 시간의 흐름은 비가역적이고, 그 앞에서 느낄 수 있는 완벽함 또는 '완벽해 보이는 것'은 언젠가 쉽게 깨어지고 상처 줄수 있는 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살면서 그 변화를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싶다.

이것도 역시 빌려주신 이영은님께 깊은 감사를.

가면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코, 11월 25일 완독

첫반전에 실망할 즈음에 그 다음 반전을 줘서 충격에 빠뜨리는 소설, 오랜만에 읽은 장르소설.

장르소설은 그 몰입감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좀 부산스러운 카페에서 읽기에는 약간 아까운면이 있었다. 범인이 밝혀진 것은 약속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북적스러운 카페에서 기다리는 때였다. 문장을 곱씹어 가면서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밝혀진 반전은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고, 그것이 밝혀지기 위한 전개가 다소 작위적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약속을 다 마치고 돌아가는 한산한 지하철에서 뒷장을 읽으면서 새로운 반전이 있다는 것을 보고는 다시 멍해지고 말았다. 등장인물이 돌아가면서 말하는 점, 그리고 각 캐릭터가 전형적이라고 느꼈던 것이 연극같다고 느꼈는데, 정말로 그것이었을 줄이야.

주인공이 말한 '연극은 끝났잖아'라는 의미를 정말로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어떤 법적인 처벌보다도 처절하게 꽂혀버리고 마는 싸늘한 복수의 비수.

히가시노 게이코의 소설을 하나 더 읽고 좋다 나쁘다를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이르다.

이것도 빌려주신 이영은님께 깊은 감사를.

예고범, 츠츠이 테츠야, 전 3권. 11월 26일 완독

만화책이지만 독후감을 남긴다. 만화책으로써는 느끼기 힘들었던 완벽한 기승전결에 감동했다.

대표앰생 4인이 펼치는 본격 홍길동식 액션활극.

세상의 나락까지 떨어져 봤던 4인은 SNS에 자신의 범행 아닌 범행을 예고하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긴다.

그리고 그 범행은 자신들이 이루려 하는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고 끝이 난다.

끝까지 사회에 분노했던 주인공들이 단순히 자신을 파괴만 해서 세상에 메시지를 내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아서 굉장히 유쾌하게 감상했다.

오히려 주인공은 목소리 내지않고 숨어서 냉소하는 보통사람들에게도 가차없이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 처럼 느꼈다.

자신의 살아갈 가치를 모두 불사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리고 희생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지막에 충격이 더 컸던것 같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4인중의 한명이 상처를 얻은 채로 우산을 돌려주러 가는 모습이 바닥에서 찾으려는 희망을 보는 것만 같다.

사람들이 싫어져서 사회와 멀어졌을 적에 베풀어주는 사람들의 친절을 거부하지 않고, 그렇다고 비뚤게 해석하지 않으면

예전에 걸어둔 고장난 우산을 돌려주면 앞으로 좀 더 맛있는 우동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동급생, 프레드 울만 - 황보석 옮김, 12월 5일 완독

히틀러가 독일을 뒤덮은 2차대전을 뒤덮었던 때의 두 소년의 우정을 그린 소설.

작가가 화가가 본업이어서 그들이 우정을 쌓는 과정에서 그려주는 독일 전체의 풍경이 머릿속에서도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다.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고, 우정과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는데, 그래서 마지막의 반전이 너무 강렬하게 그려졌나보다.

이 책을 읽기 이전에는, 책은 꼭 스토리의 의미만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으나, 이 책에서 묘사하는 독일의 풍경이 마치 따스한 색깔을 가진것 처럼 생생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래서 마지막의 반전이 너무 강렬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마지막 글귀의 반전이, 그 친구가 정말 주인공을 위해 선택한 일인지 아닌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서른의 반격, 손원평. 12월 16일 완독

두 번째 손원평 작가 소설 독서. 이 사람 소설 재밌다.

작가가 보여주는 시선이 서늘하리만치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벤트들은 다소 허구적인 면도 있었지만.

제목 그대로 이제 서른살인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기득권자의 불합리한 자기보호와 모순적인 사회구조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체제에 순응하는 것도 아니고 반항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인 서른살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현실체제에 완벽하게 순응한 다른 사람들과 그 체제에 완벽하게 반항하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속물스러운 내 모습을 보게 한다.

전체적으로 만화 '예고범'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 12월 24일 완독

“공항에서 일주일을” 책을 군대에서 읽었던 이후로 두번째 알랭 드 보통 책. 그리고 굉장히 오랜만에 읽은 비문학 서적. 첫 책의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유감스러운 일.

구매를 했을적에 예상했던 내용과는 다른 방향으로 책 내용이 전개되었다. 개인의 심리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불안을 설명해주기 보다는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개인에 시선을 두고 불안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 처럼 느꼈다.

처음에 말해주는 불안의 원인이 '사랑결핍' 이라는 제목을 달고는 있지만, 그는 남녀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느끼는 불안은 집단속에서 개인간에 느끼는 '격차' 또는 '결핍과 질투'가 불안의 원인이며, 이를 해결하는 것으로 철학, 예술, 정치상황의 이해, 종교적인 가르침의 수용, 세속적 계층을 냉소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는 목차에도 나와있다.

  • 원인 -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 해법 -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안.

그러니까, 우리가 불안을 완벽하게 떨쳐내는 것은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이상 거의 불가능 하다. 다만, 사회를 이해하고 우리가 세속적인 시선을 벗어나서 새로운 가르침에 시선과 가치를 둔다면 불안을 올바르게 관리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낼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현실에 타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이와는 별개로, 계속 자신에 대한 불안으로 사고방식이 단순하고 편협해지는 내 자신을 요즘들어 느꼈으나, 이 서적을 느끼고 내 자신을 바라보는데 조금 거리를 두고 보는 연습을 하게 되어서 의미있는 책이었다고 생각. 다시 이런책을 자주 읽고 내 개인을 고양시킬 생각을 해야지.

반도덕주의자, 앙드레 지드, 동성식 옮김. 12월 27일 완독.

이사람은 쓰레기다.

화자가 말하는 바를 쉽게 공감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화자는 엄격하지만 체계적으로 공부했던 자신의 학문과 과거의 관습,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진실이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마저도 부정하고, 모든 것을 '현재'로서만 느끼겠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그 결과가 부도덕함에 이끌리는 것이라니.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여주는것, 혹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있게 자기를 설명하는 것이 실은 자신이 아닌것, 남이 선택해준 자신의 모습이라는 말은 꽤 많이 동의한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모습이 진심인지 아닌지 도저히 파악할 길이 없다.

문화노트2.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7/12/31 20:45 저자 116.120.12.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