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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3

문화노트/2018년

spoiler alert!

영화

코코, 2월 25일.

사람이 정말로 죽는것이 기억에서 잊혀지는 순간이라며,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며 살아가라 말해주는 영화. 눈물났다. 누가 나좀 기억해줘요.

데드풀 2, 5월 19일

4DX로 관람. 여전히 해학이 넘치는 데드풀 2. 고민하지 않고봐도 재밌는 영화, 고민하면서 봐도 재밌는 영화. 우리 인간적으로 다르다고 왕따시키고 그러지 맙시다. 마지막에 나오는 쿠키영상들도 재밌었다. 물론 전작 만큼은 아님.

트루스 오어 데어, 5월 31일

오랜만에 혼자가 아닌 영화관람. 공포영화 싫다고 계속 떠들었으나, 공포보다는 초자연적 현상을 응용한 스릴러라는 생각. 그러나 생각보다 끝나고도 긴장감은 오래갔던 편. 엔딩이 조금 허무하다. 주인공이 게임을 둘러싼 엄청난 비밀을 갖고 있는줄 알았는데 별로 그런건 없어서 아쉬웠다. 영화가 명료하게 끝나서 끝나고 생각할만한 여지가 별로 없는 오락영화. 나름 재미있었다.

에브리데이, 10월 11일

단체관람. 한국영화 뷰티인사이드와 원작은 동일하나 스토리노선은 다르다고 한다. 흥미로운 소재로 이끌어난 재미있는 사랑이야기… 이기는 한데, 뭔가 소설에서 더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영화의 분량과 전개를 위해 일부 재단된 느낌이 들어서 아쉬운 영화.

국가부도의 날, 12월 8일

이야기의 전개과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는데, 그 방법이 조금 아쉬웠던것 같다. 너무 전형적인 캐릭터를 배치해서 마치 경제가 선과 악의 대립끝에 악이 흘러가는 구도로 이어진 것도 아쉽고, 경제가 무너진 이유의 배경과 디테일이 많이 생략이 된 느낌도 역시 아쉽다. 경제가 무너진 이유에서 내가 모르는 좀더 새로운 이유를 알고 싶었는데 그런것이 아닌점이 아쉽다.

다만, 허준호 아저씨를 스크린에서 오랜만에 본것 같아서 아주아주 반가웠다. 그것도 카리스마 넘치는 배역이 아니라, IMF로 고통받는 서민 노동자를 연기한 것이 매우매우 새롭게 느껴졌다.

전람회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 특별전, 3월 28일, 한가람 미술관.

마냥 아름답다 말할수 없는 전시였다.

작가는 화목한 가정, 특히 미술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재능이넘치는 미술가로 성장하는데, 자신이 가장 약하다고 생각하는 '조각'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견딜수가 없단다. 와…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거지.

걷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서늘함을 느낀다. 작가는 살아있는 사람을 보며 멈춰있는 조각상에도 살아있음을 불어 넣기 위해 평생의 열정을 쏟았다. 우리는 정말로 걷고 있음에도 아무생각 없이 죽은듯 걷는듯 했다.

아드만 애니메이션 전, 6월 6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보는 내내 유쾌하고, 좋아하는 디자인의 캐릭터들이 넘쳐나서 아주 좋았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영국의 아드만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 그 과정을 설명해주는 전시회.

'월레스와 그로밋'하면 생각나는 것은 엉뚱한 월레스 아저씨와 똑똑한 강아지 그로밋을 떠올리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제작자들의 노고들이 너무 좋았다.

전시 중간중간에 캐릭터 디자인 뿐 아니라, 사용된 세트장 자체를 보여주는데, 미니어처 세트를 제작하기 위해서 수개월을 고민하고, 다시 수개월을 만들어낸다. 제작진들이 자신들이 창조한 캐릭터를 정말로 좋아하지 않으면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마르크 샤갈 특별전 - '영혼의 정원', 6월 24일, M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어두운 것에서 밝은 모습으로 나오는 전시의 배치. 마지막으로 갈수록 강렬해지다가도 평온해지는 색깔, 다양한 표현, 고전 벽화를 보는듯 한 상징적인 표현법.

에칭 판화로 표현해내는 동화 삽화와 성경이야기들에서는 보편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밝은 동화의 느낌이나 마냥 성스러운 것 만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여 표현하고 싶어했고, 보는 사람들은 그림만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봐야만 했다.

붓을 이용해 표현한 그림도 물론 있었지만 제일 많았던건 아무래도 판화였다. 수많은 판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나귀와, 파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연인과 중력을 거스르는 사람들, 그리고 광대였다. 따뜻함과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당장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를 상징화 해서 그림에 집어넣었다. 원하는 것이 있는 채로 잠들어 꿈을 꾸면 그 판화들과 같은 그림들이 보여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매진 존 레논 전 , 12월 9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사실 이걸 보려고 한것은 아니고,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을 보고자 하였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쪽으로 선회. 선회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아니고, 종합 예술인 존 레논을 되돌아 보는 전시. 비틀즈와 존 레논이 유명한 줄은 아는데, 왜 유명한지는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보면 정말 좋은 전시.

단순히 작곡된 노래를 불렀던 아이돌이 아니고, 자신의 메시지를 노래로 만들어서 부를줄 알았고 사람들을 대변할줄 알았던 예술가. 나는 여태 이런것을 잘 모르고 있엇다.

그러나 오노요코를 만난이후 비틀즈가 해체되면서 사람들이 그를 미워했던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은 결국 그가 일관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목소리만을 고집하려 했던것 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를 오랫동안 지켜볼수 없었다면 그가 말하는 '평화'라는 표현이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었을거라 생각한다.

서적

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권남희 옮김. 1월 1일 완독

왜 묘하게 하루키의 소설에서 풍기는 나른함에 중독되어 가는걸까.

다음의 단편이 모인 소설이다.

  • 빵가게 재습격
  • 빵가게 습격
  • 코끼리의 소멸
  • 하이네켄 맥주 빈 깡통을 밟는 코끼리에 관한 단문
  • 패밀리 어페어
  •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 로마제국의 붕괴 / 1881년의 인디언 봉기 /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 / 그리고 강풍세계
  •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 식인 고양이

이 역시 빌려주신 이영은님께 감사를.

만약은 없다, 남궁인. 1월 14일 완독

다들 어떻게 그리도 치열하게 사나요. 나태에 빠진 자의 최후는 죽음 뿐인가요.

지독한 하루, 남궁인. 3월 11일 완독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 이 사람의 책을 고르면 안된다. 책에 써있는 대로 내 마음마저 지독해지는 느낌이 든다. 반복되는 지독한 일 속에서 보통은 그 방어기제로 충격으로 부터 무뎌지고 객관적으로 느끼게끔 방어기제가 작용하건만, 글쓴이는 그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계속 고뇌하고 외로워지는 것을 택한것 처럼 느껴진다.

읽으면서 느낀건,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글쓴이와, '칼의 노래'에서 묘사된 이순신의 모습도 그렇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은 '의사로서의 소명의식,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우국충정' 같은 것이 아니고, 그저 극한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처절함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느낌이 잊혀지지 않게 기록 같은 것으로 남겨놓고 나면 그 뒤에 피어나는 작은 느낌들, 그게 아픔일 수도 있고 반성일 수도 있고, 체제에의 비판일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검사 내전, 김웅. 3월 24일 완독

“검사 뭐 그리 대단한거 아닙니다. 그러니 국민여러분도 법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으시되, 법이 나아갈 길과 여러분의 권력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생각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듯한 책. 우리가 미디어에서 비쳐지는 검사, 그리고 검사출신 국회의원들을 보며 느꼈던 철저한 엘리트주의에 반대편 쯤에 있는 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보통검사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말하는 듯 하면서도, 이 사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검사들과는 많이 이질적인것처럼 느껴진다. 이 사람은, 사기를 잘 당하는 보통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질문을 던진다. 아직 사기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가벼운 문체로 글을 쓰고는, 자신이 법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마라' 로 드러낸다.

여러가지 형사 사건을 취급하며, 이 사람이 법에게 바라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도, 피해자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보상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분노가 들끓게 되어 어느 때 보다도 법을 많이 요구하게 된 때에 이사람은 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 날카롭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범죄자와 공권력 사이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 법을 다루는 모든 국민이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피력한다.

나는 평소에, 법을 적극적으로 고치는 일 보다는 지금 있는 법부터 제대로 지킴으로써 사회가 올바르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글을 읽을 적에, 그 법이 결국에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을 받고는, 내 생각을 어떻게 관철할, 또는 지켜야 할지 심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 책 너무 좋아. 가벼운 필체 속에 무거운 담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는 책이 정말 좋다. 내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지노라면, 당신은 '그걸 네가 알아서 뭐하게'라는 말이 돌아올 것만 같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 3월 28일 완독.

너무 늦게 읽은 고전 명작.

잘못된 자에게 권력을 손에 쥐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고통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기서의 개/돼지는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개/돼지와는 조금 다른 의미라고 생각. 본질적으로는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가 정말 나쁜 사람이지만, 그 밑에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고 핍박받은 동물들을 그냥 마냥 불쌍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똑똑하지 못하면서도, 끝끝내 연대하지는 못했던것 같다. 보편적으로는 외부의 권력에 맞서서 연대한 것 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차지한 자유 이후에 자신들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귀기울이지 못한 결과가 어떻게 자신들에게 작용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어버린다.

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흥규 외 5인, 4월 22일 완독.

다음의 중/단편 소설로 구성되어있다:

  •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손흥규 (대상)
  • 정읍에서 울다 - 손흥규
  •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 구병모
  • 내 마지막 공랭식 포르쉐 - 방현희
  • 존재의 증명 - 정지아
  • 새의 시선 - 정찬
  • 파종하는 밤 - 조해진

사실 '공랭식 포르쉐'라는 제목에 이끌려서 집어든 책. 그러나 읽고서 다른 글들도 흥미 있고 만족 스러웠다.

제일 감명깊었던 소설은 '정읍에서 울다'. 겉으로 보기에 잘 이해되지 않는 모습을 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항상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숨어있는 법인것 같다. 그리고 그 상처를 꺼내어 살피려면, 정말 오랜시간 바라보아야만 할 것 같다.

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양운옥 옮김. 4월 28일 완독.

마지막의 결말마저 고개가 갸웃해진다. 추리소설을 잘 쓰는 사람은 연애 마저도 인연과 사건과 반전으로 써내려간다. 살인만 나지 않았을 뿐, 사건과 반전으로 이루어진 글에서 섬세한 감정선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연애를 잘 못하는 나지만, 자꾸 이벤트로 반전을 노리려고만 한다면 상대방도 그리 좋아하지 않을것 같은데, 일본사람들의 정서는 좀 다른걸까?

솔직히, 좋아하는 방향의 글이 아니어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글이었다.

검은 꽃, 김영하. 5월 17일 완독.

아무것도 모른채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그 자신의 근원 마저 잃어버리러 가는 이야기. 결국 마지막에 멀고먼 타지에 자리잡아 살아남은 사람은 김이정의 연인이었다. 그녀는 결국 살아남아 경제적으로 꽤 큰 힘을 얻기는 했지만, 그게 과연 해피엔딩이었을까. 처음 그녀는 '이제 세상이 뒤집혀 여자던, 남자던 상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시대가 열릴것이다' 라며 기대했지만, 결국 사라져버린 조국과 마찬가지로 유혈 혁명이중인 머나먼 멕시코 땅의 격한 흐름에 무릎을 꿇어버리는 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기대했던 신 세계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야 말았다.

여러모로 예전에 읽었던 덕혜옹주가 생각났던 책. 시대의 흐름을 거부할수 없었던 개인들의 처절한 파멸이라고 해야되나…

이것도 역시 빌려주신 이영은님께 감사를.

흰, 한강. 5월 19일 완독.

죽음과 삶 사이에 모든 하얀것이 있는 것처럼 읽혀지는 소설. 정말로 작가가 경험한 일들을 쓴것인것 처럼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누이가 될수도 있었으나 유산된 아이를 계속 쫓아가면서 보여지는 하얀 이미지들을 통해 계속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간다.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양억관 역. 6월 6일 완독.

앞선 책 처럼 죽음과 삶을 논하는 책. 죽음과 삶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있다고 말하는 책.

이 책은 매우 감명 깊으니까, 글을 조금 정리해서 써보자. 글감이 될만한 느낀점을 아래에 정리해보자.

1. 주인공 와타나베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특히, 나오코는 주인공에게 죽음을 논하는, 반대로 미도리는 주인공에게 삶과 생동감을 말해주는 존재로 느껴진다. 나오코는 죽은 자신의 남자친구의 죽음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채 현재의 생에 허무감을 느낀다.

2. 시대배경은 일본의 1960년대로, 당시의 사회활동, 특히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활발한 가운데, 주인공과 그 등장인물은 그들이 주도하는 사회활동에 잘 참여하기는 커녕, 오히려 허울뿐인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고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그들이 가진 선민의식, 행동하지 않는 모습 등).

3. 반면 주인공은 오히려 '좋은말맨'이라고 할 정도로 주변의 상황에 다소 둔감하다. 관심에 두고 있는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으로, 나오코를 위로 하기위해 편지도 쓰고 찾아가기도 하지만, 그녀를 결정적으로 보듬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런 자신을 잘 알기에 그녀의 죽음 후에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에서 주인공은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현재의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면서,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을 찾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 길은 나오코의 보호자인 레이코가 이끌어준다.

4. 그렇게 야한건 아닌데 야할때는 많이 야하다. 마지막에 많이 야했다.

5. 내 삶도 틀린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나도 많이 보고 내 마음대로 느끼고 마지막에 가서 깨달을 때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수 있으면 좋겠다.

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권남희 역. 6월 28일 완독.

'편지의 대필' - 타인의 뜻을 전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 편지에 담아낼 어조, 그 어조를 표현할 편지지와 우표의 선택에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만들어지는 하나의 편지는 단순히 안의 글귀 뿐이 아니고 편지를 이루어내는 모든 요소가 메시지를 담은 하나의 일관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나는 나의 뜻을 전하는데에도 끝없이 서툴렀던 순간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들을 '담백했던'이나, '그때의 풋풋한' 이라는 말들로 정당화 하려 애썼다. 그 옛날의 일들이 떠올라서 읽는 내내 부끄러워졌다.

따뜻한 이웃사람과 평화롭고 활력이 있는 주인공의 마을도 읽는 내내 '가마쿠라' 마을을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즐거웠다. 마지막에 이웃집의 수국이 시들었음에도 그대로 잘라내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 하는 것이라고 책에서 말했다. 마을에서 아름다운 모습들을 만드는 것도, 비뚤어졌던 생각을 거두고 오랫동안 바라보니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에 마을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그려졌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냥 주인공이 마을안에서 행복하게만 지내는 것 처럼 소설이 그려지지만, 읽고 나니 뭔가 아프다.

내용과 별개로 번역이 아쉽다. 우리말로 대체할수 있는 표현이 있음에도 원문의 내용을 살리는 방향으로 번역된 듯한 느낌이 든다. 나막신이라 하지 않고 '게다' 라고 그대로 옮겼고, 편지글에서 '최근에는…'으로 시작하는 표현도 '요즈음에는…' 이라고 할 법도 한데 다듬어지지 않았다. 낯설게 느껴지는 한자 어휘들이 꽤 많아서 가독성이 약간 떨어졌던 것이 아쉽다.

빌려주신 이영은님께 감사를.

개인 주의자 선언, 문유석, 9월 6일 완독

처음에는 개인주의자로써 살아가야될 자세와 덕목, 그리고 우리나라를 지배해왔던 집단주의의 폐해를 논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가 개인주의자로써 살아가면서도 그 개인들이 만들어낼 공동체 의식을 주문했다. 그러니까, 전체 책을 아우르는 기운을 보자면, 집단을 위해서 희생되는 개인의 개념으로써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걸어왔다면, 이제는 합리적인 사고를 해내는 개인이 동일한 사고를 하는 타인을 존중함으로써 형성하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했다.

책을 읽기 까지 너무 오랜시간이 걸렸다.

빛의 제국, 김영하, 10월 28일 완독

왜 제목이 빛의 제국인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북한과 달리 남한만이 밤에도 환하게 빛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인공적인 빛이 밤을 낮처럼 보이게 하는 거짓됨이어서 그런것이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인걸까.

자신이 사람들을 잘 속이며 살아가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모든것을 정리하려 했지만, 사실은 자신 역시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짓 속에서 연극당하며 살아온 것이라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요모한 감정이 들게 될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토록 자신들이 필요할 때에 거짓속에 숨어버리고는, 타인이 거짓말을 했다면서 피해자인 척을 하는 것일까.

메인테마가 '거짓' 이 아닌가 하고 속으로 생각.

법 앞에서,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옮김, 11월 30일 완독

너무 어려운 책

마치 이 사람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생각들을 모두 문장으로 옮기려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굴'에서 실체화 되지 않은 위협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깊게 굴을 파는, 그리고 그 굴이 좀더 복잡해지면서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줬다.

작가는 어떠한 관념이 존재하는 이유를 집요하게 질문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그 본질에 다가가는 순간 너무도 쉽게 사라져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 처럼 보였다.

이 사람의 여러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너무도 궁금해졌다. 아직은 한번 읽은 것 가지고는 쉽게 무언가를 판단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이 사람에게는 너무 불경스러운 일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12월 23일 완독

보통의 존재,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 이어서 세번째 읽는 이사람의 책.

책에서 써내려가는 이사람의 어조가 바뀌었다. 나는 '보통의 존재'에서 그가 드러낸 우울함의 색채를 좋아했는데, 이번 글을 쓰면서 그는, '어쩔수 없는것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이사람이 늘 말해주는 관계의 소중함, 그리고 서로간에 필요한 존중과 예절에는 여전히 공감하고, 그가 어른과 엄마를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역시 여전히 공감하지만, 이렇게 바뀌고말아버린 정서에 일견 배신감도 느껴졌다.

왜냐면 나는 이사람이 전작에서 말했던 자신의 불안정성을 끌어안은채, 아파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공감했고, 내 자신도 혹시 그러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내려놓아버리고 나면, 저는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공감하며 살아가야 하나요.

문화노트3.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8/12/23 23:49 저자 183.99.7.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