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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6

문화노트/2021년

길위의 토요일, 이희우, 3월 31일 완독

올해 첫 독서가 너무 늦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책을 골랐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진행도 너무 잔잔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극적이지도 않고. 어떤 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정신분열에 빠져나오지 못한 주인고의 모습에 크게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시시한 세상이라며 냉소하던 머릿속의 누군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끝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 시시해져 버리고 말아버린 것만 같다.

그러나, 내가 군대생활을 겪으면서 거의 우울증에 다다를 만치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에, '그녀' 라고 하는 구체적이지 않은 한 대상을 만들어 내 마음을 토로했던 적이 있었다. 선임이 괴롭힐때, 논리적이지 못한 지시들 속에서 괴로워 하고 있을때 마다, 누군가에게 힘을 달라고, 내게 와서 내 마음을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할 대상이 있었고, 그것을 나는 '그녀'라고 지칭했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서 그녀는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면서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루를 겨우 견뎌나갈 수 있었던 적이 있었고, 실제로 내가 군 생활에서 썼던 일기에 이런 심정들을 남겨두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 세상이 시시하기는 커녕, 거대했던 나머지 너무 역동적인 파도로 나를 감싸고, 나는 그 파도를 작은 나무뗏목으로 건너가고 있다고 느꼈다. 가수 김동률의 '고독한 노래'에 나오는 화자가 내 모습같다고 생각하면서, 파도에 떠밀리지 않고 노를 저어 '전역'이라는 육지에 다다르기를 하루하루 바라며 살았었고, 그리고 육지에 다와서 두 발로 다시 걷게 될적에 '그녀'의 힘을 빌어 마음을 다독이는 일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결국 여러 유형의 인간들을 만나고, 거기서 사회화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지만, 그것은 진짜 노력이 아니라 '그녀'를 만나기 위한 위선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고, 최대한 빠르게 나가기 위해 타인에게 가면을 쓰고 행동했을 뿐, 실제로는 진짜로 세상을 시시하게 생각하며 하루 빨리 그녀에게 가기 위해 애를 썼던 것 같다.

글의 길이가 길었고, 대부분의 내용이 정신병원에서 있었던 일들과 그것에 대한 느낀점에 대해 서술되어 있었는데, 이것을 주인공 입장에서 공감하며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앞서 말했던 이유로 내가 이런 상태의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4월 17일 완독

앞선 책이 내용의 어려움과는 별개로 읽는데 너무 오래걸렸기 때문에, 집중력을 되살리고자 비교적 읽기 쉬운 에세이를 골랐다.

대학생활을 지내고 타인과 어울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내가 스스로에게 세운 인생 철학은 '기소불욕 물시어인' 이었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철학을 세우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느끼며 내가 최근에 하고 있는 생각은 '철학 없이 살아야 한다' 는 것이다.

장기하의 자연스러움, 지나치게 고집하지 않는 모습,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지금 자신에게 떠오른 생각을 존중하는 것에 멋짐을 느낀다. i30을 타고 있다는 점에서도 괜한 내적 친밀감을 느낀다. 내가 내뜻대로 살겠노라 생각하면서도… 예를 들면 남에게 오피스텔에서 대충 살겠다 할 때마다 이잔소리 저잔소리 듣는것에 빡쳐하면서 정말로 내가 바보같은 것인가 생각하는 일도 있었는데, 이 책에서 나타나 있는 이 사람 사는 모습을 보니, 그냥 상관없이 그렇게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사는 모습이 한층 더 안심되는 느낌이 들었다.

2인조, 이석원, 7월 25일 완독

이래저래 한 권을 다시 읽기 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랜만에 다시 읽는 이석원 작가의 책.

읽고 나니, 앞서 읽었던 장기하의 에세이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장기하 보다 건강과 자아가 훨씬 병약한. 그리고 그 모습에서, 나와의 '불쾌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뭔가 이 사람은, 타인의 조언으로 부터 비판적인 자기 수용을 거쳐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데, 과거의 자신이 만들었던 그 규칙의 이유를 잊어버림으로 인해 규칙을 부수어냄으로써 해방감을 느끼고, 그러한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예를들어, 걸을 수 조차 없었던 자신의 상태를 타개해 나가기 위해 옷을 사들이는 일을 했는데, 그것이 자신의 정신을 회복하는데 크게 성공했다. 그런데 그러던중, 누군가 '그렇게 옷을 사면 옷을 물들이는데 쓰는 물로 인해 환경오염이 발생해요' 하는 말을 듣고 이것저것 찾아보더니 죄책감에 휩싸이고는, 또 새로운 자신의 규칙을 만들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자신을 사랑하겠다며 다시 옷을 이따금씩 사들이는 식이다.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작가의 사고방식은 여전하다. 다만, 처음 읽었던 '보통의 존재'때와 비교하면, 이제 내가 생각했던 이 작가분의 정서와는 내가 결이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보통의 존재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프리즘, 손원평, 11월 3일 완독

또 한권을 다 읽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렸다. 손원평 작가의 책은 전에 '아몬드' 로 읽었던 적이있었다. 인물의 내면을 따뜻하게 조명해주는 면이 이전 책에서 느껴졌는데 이 책 역시도 같다. 미숙한 아이 '호계' 라는 인물의 모습은 '아몬드'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등장인물 '재인', '도원', '예진', '호계'가 소설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만나고 헤어지면서 자기 자신도 모르던 마음의 상태를 알아간다. '예진'은 소설 안에서 가장 밝고 화사한 사람. 그 밝음으로 인해 '도원'과는 맞지 않게 되어 처음 마음을 품었지만 다시 멀어지게 되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해 별 마음도 없이 '한철'과 사귀기도 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헤어진다. 혼자인 시간을 오래 두지 않고 섣불리 사랑하기도 했으나, 사람들과 만나면서 불분명 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미성숙했던 자신의 모습을 사과하기도 한다.

'도원'은 가장 어두운 사람이다. 결혼했었으나, 부인과 암으로 인해 겨우 2년만에 사별하였고, 그로 인해 항상 인연의 끝을 생각하며 제대로 인연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재인'과 과거에 관계를 맺었던 적 있었고, 다시 '재인'과 만나게 되었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고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는 절연을 선언한다. 이후 그 절연을 선언 했던 것이, 그녀의 과거를 알게됨으로 인해 다시 '끝'을 생각하게 만들고 그녀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시키려 했던 것을 깨닫고 '재인'에게 사과하며 어긋나있던 인연을 매듭짓는다.

'재인' 전 남편과 아직도 관계를 맺고 있고, 아픈 어머니를 모시는 복잡한 사람이다.

'호계' 는 불우한 유년기로 인해 인해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등장인물이 마치 네 개의 계절을 상징하듯이 제목처럼 다양한 빛을 내고 있기도 하지만, 그 등장인물들이 다른 인물들과 만날 때 마다 다른 이면들을 보여주는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도 타인들을 만나면서 스스로가 갖게되는 다양한 마음들,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눈치채지 못했던 어수선했던 감정들을 분명하게 만들고 돌이켜 보는 모습 역시도 재미있다. 사람이 갖고 있는 감정이 한 곳에 웅크려 있으면 마치 빛이 한곳에 모여 흰 빛이 되어 아무 색깔도 없어보이나, 프리즘에 비추어 보면 분광되어 다양한 색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12월 19일 완독

소라, 나나, 나기 라는 세명의 등장인물이 한 장소에서 성장하며 각자의 자아를 갖고 성인이 되어 내면을 풀어나간다.

등장인물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행동들이 논리적인 인과간계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혼란스럽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인생이 대부분 그런게 아닐까, 특별히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아니라 대부분의 일들은 우연으로 점철되거나, 여러가지 환경때문에 내 의지가 아닌 다른 요인으로 선택되어 흐르는 삶을 사는.

소설의 내용과 별개로, 가족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폭력으로 인해 자아가 파괴된 등장인물들이 그 상처를 다루는 소설들을 몇권 읽으니 읽을 때 마다 심적으로 조금 지친다. 내년에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을 읽고 싶다.

문화노트6.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1/12/26 16:24 저자 221.163.14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