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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혁_2017년

이민혁/2017년

1월

무소불위의 내것이 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지분 같은건 전혀 섞여 들어가지 않은 나만의 것.

2월

의욕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사실 뭐하러 나는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한달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드리운 사람에 대한 그림자는 생각보다 더욱 짙었던 것이었다. 그들에게 안부를 물어도 '네가 그런걸 알아서 뭐할건데?'하는 대답이 튀어나와버릴것만 같아 걱정스럽다.

3월

이달 안에는 무조건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자.

당신은 바쁠거잖아. 독서모임을 하느라, 가족 모임이 있느라, 다이어트 하느라고 식단을 조절해서 같이 먹을게 없는지라, 무엇보다, 나에게 그 다음을 기약하지 않을거잖아. 나한테 그런 빈틈 같은거 안줄거잖아. 보고싶다고 말이라도 하지마. 내가 보고싶어도 너의 일상패턴을 꺾으면서 까지 보고싶은건 아니잖아. 솔직하게 말해줘, 내가 그정도는 아니라고 말이야.

타인에게 건네는 좋은 말들과 위로의 말들에 알맹이 같은게 없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쁜 나머지 마음에도 없는 좋은 허황된 위로를 건네어 버리면 어떡하지.

8월

이제서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9월

미국 출장기간 ( 시카고 ).

시카고에서 한달간 지내면서 가졌던 단편적인 느낌을 적어보자.

1. 미국인들은 더 싸늘한 곳에서도 반팔을 입으면서 지내는 것만 같다. 그 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몸에서 열이 많이 나는 걸까.

2. 그리고 콜라도 너무 좋아한다. 음식점을 파는곳에서도, 안파는 곳에서도 모두 콜라를 팔고 있다. 정말로 콜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3. 음식값이 비싸다. 팁도 더 줘야 한다. 그런데 그게, 식료품점에서 파는 음식들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사람이 사람들을 대하는 비용까지도 계량해서 책정한 것으로 보인다. 고객센터로 들어오는 무분별한 컴플레인과, 음식의 원가를 공개하며 바가지라고 욕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해보면 '이걸 마냥 비싸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돈에 대해서 철저한 미국다운 모습이란 생각도 들었다.

4. UBER 서비스로 교통을 많이 이용했는데 (약 8회), 한번도 같은 차를 타본적이 없다. 나열 해보면,

기아 옵티마(K5), 도요타 프리우스, 미쯔비시 갤랑, 혼다 시빅, 도요타 코롤라, 혼다 CR-V, 닷지 그랜드 캐러밴, 마쯔다 마쯔다3, 닛산 센트라.

가격이 비싸다. (차로 40분 가량 이동하는 거리에 약 30달러 내외 - UberX 서비스 기준).

5.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의 우승이 107년만에 이루어진 탓에, 모든 기념품 가게에서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판다. 그리고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다닌다. 신기한건 같은 연고지의 시카고 화이트삭스 유니폼이나, NBA의 시카고 불스 유니폼은 한번도 못본것 같다. 잊혀진 걸까.

6. 시카고라는 도시는 걸어서 30분이면 모든 중심지를 걸어다닐 수 있을정도로 밀도가 높다고 느꼈다. 그 모든 밀도는 건물들이 가지고 있는데, 수십여층의 건물들이 넓지 않은 도로와 골목 사이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마음이 쉽게 밀려온다. 그런데, 그러지 말라는 의미인지 공원과 미시건 호수 변두리의 시야는 매우 좋고, 잘 다듬어져 있다.

7. 하물며 미국인들은 약간 바보같은 질문을 내가 던져도, 비꼬는 듯한 답을 하진 않는다. 적어도 공적인 것과 관련한 질문에서는. 즉, 우리나라 처럼 “당연하지 바보야”라든가, “그럼 A지, B겠냐?” 라던가, 너무도 당연해서 무시한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건 오래 지내지 못해서 내가 모르는걸까.

10월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 중 네번째 단편소설인 '한지와 영주'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 그는 언제나 내가 자신을 '만나주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 말은 나를 당황하게 했고, 그를 조금 경멸하게 했으며,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편안함을 느끼게 해줬다. …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했고, 겸손을 넘어서 가혹할 정도로 자신에게 인색했다. …”

12월

사람들에게 두루뭉술하게, '사람들과 잘지내고 싶다'라고 말한적이 있다. 이걸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누군가가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당신의 인사가 예의가 아니고 호의였으면 좋겠다. 내가 먼저 말붙이고 싶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려면 내가 어쩌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 나도 누군가에게는 매력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걸 어찌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아냐 넌 충분히 매력있어' 하는 그런 3인칭의 무책임한 위로 말고,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

총평

한심했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 나는 다시 내모습을 찾아야 한다.

이민혁_2017년.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8/01/01 17:30 저자 116.120.12.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