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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혁_2018년

이민혁 / 2018년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조금 멋이 깃들지 모를 내 인생을 기대해보자.

2월 2일

대답이 없는 것 역시 대답의 하나겠지요. 외면하는 것도, 끌어안는 것도, 뿌리치는 것도, 모든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2월 9일

지난 일요일 아침에는 친구 할머니가 돌아가시어, 그 관을 운구차에 옮기는 일을 하게되었다. 지난 화요일에는 할머니 제사가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는 동생과 나의 유치원까지 휴원하면서 할머니를 간병하셨고, 그 고생은 엄마의 허리와 손과 가슴에 사무쳤다. 내가 이제와서 할머니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주름진 그 손으로 꽃모양으로 까주신 귤 한개 뿐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아버지는 술에 의지했고, 지금도 그렇다. 오랜만에 할머니의 후손들은 한자리에 모여 할머니를 잃어버릴 그 당시의 조각들을 다시 모아서 퍼즐을 맞추려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친척들의 기억에 퍼즐 한조각을 던져 놓고는, 자리에 멍하니 앉아서 앞으로 이렇게 잃어버릴 것들을 생각했다. 잠깐 얻는것 같아 보여도 결국은 잃게 될 것이다. 아마도.

2월 11일

일요일 아침에는 가벼운 스포츠 드라이빙을 하겠노라 속으로 다짐했으나, 언제나 속으로만 다짐하는게 문제다. 어김없이 늦잠을 자고 겨우 씻고 밖을 나선다. 공부를 하겠노라 속으로 다짐했으나, 이것도 속으로만 다짐한 것이 문제다. 페이지를 몇장 넘기고 모든 의욕을 빼앗겨 버리고는, 의자를 뒤로 제끼고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바깥에서는 호감을 가지고, 호감을 받았다가, 때를 놓치고 이유도 모른채 멀어짐 당하는 것을 반복했다. 가까워 지고 싶어하는 마음은 언제나 혼자만의 마음이었고, 예의를 차려 거리를 두었던 것을 거두기에는 언제나 항상 늦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때에 와서 손을 뻗어봤자. 그 손을 보고 상대방은 질려하며 더 멀리 떠나버리고 만다.

2월 15일

마음껏 늦잠을 잤지만 쉽게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피로하니 운동하지 않고, 운동하니 몸은 피로를 견디질 못한다. 간만에 부천 집에는 부침꽃이 폈다. 우리는 따뜻할때 맛있는 음식을 한 껏 만들어 놓고는 모든 그 일이 끝나고 다 식어버린 다음에나 그 음식을 먹는다. 그 따뜻함이 조상님의 몫이라면서 말이다.

2월 18일

약속 하나가 어긋나고 말았다. 결국 그와의 만남은 불발이 되었다. 약속이 불발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건넨 말들을 복기해봐도 도저히 나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보낸 카톡엔 1이 사라지지 않은채 세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어째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나혼자만 아쉬운 일이 되어버리는 걸까. 그래놓고 왜 사람들은 내게 왜 연락하지 않느냐며 타박하는 걸까. 군자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하였으나 나는 끝끝내 군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2월 21일

사람에게 내 모습을 전부 드러낸 그때에 그 사람이 날 싫어해 버리면 어떡하지. 그러면 나는 정말 내 모습이 누구라도 싫어하는 모습이라고 단정짓게 되어버리고 말것만 같다. 그럼 가면을 쓸까? 그러면 나는 가면의 모습을 싫어하며 살것만 같다.

팀회식이 있었고 운동을 점심에 했다.

2월 23일

때에 맞추어 피로가 엄습한 것일까, 그 때를 알고 그냥 내가 긴장을 풀어버린걸까. 오후에 접어들며 생산성은 0에 수렴했다. 때마침 월급이 들어왔다.

2월 27일

회사 단톡방에 폐를 잘라낸 SI 개발자 이야기를 했다.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누구도 그 처럼 될수 있을 지도 모른다. 소식은 여전히 함흥차사고, 나 좋다는 사람은 없다.

3월 1일

대청호 / 현암정에 드라이브를 갔다. 나는 정말로 그곳에 가고 싶어서 갔던 것일까, 아무것도 안하는 내가 싫어서 도망치듯 간 걸까. 차분하게 차를 돌려 돌아온다. 내차는 도장이 너무 약해서 실기스가 이제 눈에 잘 들어온다. 차가 기특하고 아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또 자신들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시간을 잠시 들러 내 생각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사하다.

3월 4일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외로움을 이겨낼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니라고. 내가 외롭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3인칭의 시선으로 무책임하게 내게 괜찮을거라며 위로하지만 그런건 전혀 의미가 없어. 보고만 있지 말고 나를 보듬어달란 말야. 외롭다. 이성을 잃어버릴것만 같다.

대학 선배의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가는길에 대학 친구들이 차를 탔다. 모두 이성친구가 있었다. 나는 나만 안되는 연애라며 나지막이 푸념했다. 그러자 뒤에 탔던 친구가 어깨를 토닥였으나,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위로는 3인칭이었다. 내 모습은 혀를 차거나 어깨를 토닥이거나 잔소리를 할수 있는 좋은 먹이감 그 이상은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는 누구의 외로움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그들은 내 손길을 뿌리치기 바빴다. 과거의 내가 무엇을 잘못한걸까. 사람들에게 했던 말과 태도를 또 복기해본다.

카페에 앉아있다보니 다시 비가 온다.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 우산을 가져다달라고 누구에게도 말할수 없다. 아, 가엾은 내인생.

3월 9일

민혁아 너의 앞길엔 파멸과 지독한 고독 뿐이란다

3월 10일

여주 아울렛에서 별다른 고민없이 처음 들어간 상점에서 바로 옷을 골랐다. 서점에서도 별다른 고민 없이 몇가지 책을 골라버렸다. 고민하지 않는 소비에 조금이나마 즐거웠다. 같이 할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여튼 이것으로 경기권의 아울렛을 일단 한번씩은 가보게 되었다.

3월 11일

그동안 밤에만 가보왔던 남한산성 도로의 모습과는 다르게 낮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재미있었다. 저녁 먹자는 말은 또 우주로 도망갔다. 갈곳이 없어진 나는 카페에서 책만 읽었다. 본업이 글쓰는 사람이 아니면서 글을 잘쓰는 사람의 글을 읽었다. 그의 디테일한 표현과 거시적인 서사구조에 감동했지만, 그의 글을 읽고 내가 써내려간 독후감은 형편없기만 했다.

3월 16일

용건을 알려주지 않은 친구의 부름에 나갔다. 친구는 취직을 했다. 그가 졸업하던 3년전에 임용고시를 준비하겠다고 친구들에게 천명했던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를 응원하고, 그 다음에는 충고했다가, 그다음에는 조롱했고, 그 다음엔 관심을 끊었다. 그게 놈을 위한 일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묻어두고 있었는데, 놈은 그간에 억눌렸던 모습을 모두 떨쳐내고, 다시 밝아졌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그가 임용고시를 포기하는 순간의 일렁임을 생각했다.

3월 18일

작년과 같이 10km 달리기를 했다, 기록은 1시간 2분. 작년의 이민혁에게는 크게 패배했다. 작년기록은 55분 17초.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달리기로 마음을 어느정도는 고쳐잡을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이 쓸쓸하긴 하였으나, 그 쓸쓸함을 견뎌낼 자신을 다시 만들어나가는 것이겠지.

3월 20일

이어폰을 충전해야 한다고 했다, 집가는 길에 같이 걸을 땐 이어폰을 끼지 않을 텐데도.

아침시간에 커피를 권할땐 이슈가 바쁘다 그랬다, 그리고는 점심시간엔 30분 늦게 들어왔다.

나도 이정도의 눈치는 있다. 내가 정말 이토록 찌질해질줄이야.

3월 24일

슬퍼하지 않아도 될 일 마저도 슬퍼했던것 같다. 그러지 않아도 되었는데. 나는 마치 내가 가져본적도 없던것을 가졌다가 잃어버린 듯이 굴었다.

4월 1일

다시 그 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갈적에, 고속 버스에 같이 탈 파트너를 정할때. 내가 같이 타자고 말한 사람들의 눈빛에는 언제나 망설임이 있었지.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면 수학여행이 더 재밌었을 텐데.”

당신들의 눈엔 내가 그토록 매력이 없는 거니.

책이 잘 안읽힌다. 집중력이 잘 안나온다. 이럴땐 책을 탓해야 하나 낮은 집중력을 가진 나를 탓해야 하는 건가.

4월 2일

이래서는 코드 품질을 담보할 수가 없다. 그 어떤 CI 시스템, 테스팅 툴, 진보된 IDE보다도 중요한것은 심리적인 여유인 것이다.

4월 8일

최근 나를 다시 돌아보고 긍정적인 생각을 다시금 할수 있는 여유가 생기려고 하자 마자, 나를 그러지 못하게 야근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

뭐? “맛있는거 사줄께” 라고? 나는 먹는것에 미련을 두며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솔직히 차 할부금 못갚는 내 모습보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내모습이 더 걱정스럽네요.

4월 18일

잘못했다, 나는 또 은연중에 내 내면의 것을 또 간접적으로나마 토해내고 말았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았음에도 내가 잘못하고 있음을 대번에 직감할수있었다.

4월 19일

친구가 내게 겁쟁이라고 말했다. 사리는 모습이 바보같다면서. 그말을 듣고 조금은 가벼워 진 듯도 하다.

4월 22일

아니, 나는 하나도 가벼워지지 못했다.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필요 이상으로 깜짝깜짝 놀랬다.

4월 26일

심리적인 여유가 있냐 없느냐는, 내가 감당하고 있는 일이 크게 느껴지냐, 작게 느껴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것만 같았다. 동료에게, 시간은 느리게 가는데, 날짜는 빠르게 가는것만 같다며 푸념했다. 발전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머리를 했다. 회사사람들이 칭찬해주었다. 나는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5월 5일

일전에, “어떤 사람이 무심코 말하는 것을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며 잊어버리라는 말을 믿으라는건가, 사람은 그 모든 순간 모든 말이 진심인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쁜 말을 하면 그게 자신의 마음을 잘 포장하지 못해서 나오는 말인 것이 아니라, 그것대로 그냥 진심인 것이라고.

결국 나도 그런것인가, 나도 나쁜 생각과 나쁜 마음을 가진걸까. 절대로 고쳐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그런마음이 되어버리는 걸까.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결국 나도 내가 나쁘다는게 사람들에게 드러나 버리고 마는 것일까. 너무 무섭다. 사람들은 또 떠나가고 있다.

전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나절 동안 두통이 가시질 않는다. 집에서 자면 편하다고 생각 했는데 실상 그렇지 않았다. 저녁에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5월 9일

집중력이 조금은 살아난 것도 같다. 이슈를 좀더 담백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나는 아직도 깜짝깜짝 놀랐다. 운동을 다시 해야 한다. 이대로 퇴보할수는 없다. 사람들이 나의 부재를 아쉬워 하지 않는다.

5월 14일

어머니가 아팠다. 자궁 근종 제거술. 다행히 바로 퇴원하시고 기운도 금방 되찾으셨다. 이제 엄마도, 아버지도 언제까지나 건강할것이라는 믿음은 안일한 생각이라고 세상이 말하는 것만 같았다. 주말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5월 17일

차를 산지가 1년이 다되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차를 좋아한데다가, 그 차를 이니셜-디 와 같은 만화로 배웠기 때문에, 나는 내가 차에 이것저것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고, 차 높이를 낮추고, 시끄러운 머플러를 달고 다닐줄만 알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의 내 차는 몇 군데의 까진 도장면을 제외하면 순정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 안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유중에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되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간절한데도.

늘 좋아해도 어쩔줄 몰라 하다가 떠나버리곤 했다. 이 녀석 마저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5월 18일

그토록 소외되어 왔음에도 전혀 익숙해지지 못했다.

차라리 그대 닮은 그림자로 숨어서, 그대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리 하겠소.

5월 22일

그토록 좋아하는 빨간날이 와도 정작 하는 거라곤 못자는 늦잠을 자는것 정도인 뿐인걸까. 생각이 많아지는 때일 수록 아무생각도 하고싶지 않게 된다. 가령, 옷을 사더라도 어떤 옷을 사야되나 고민하느라 매장을 한바퀴 돌고나면 고민에 지쳐서는 고민의 근원이 된 쇼핑센터를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생겨나는 것이다.

다시 운동에 관성이 붙었다. 이제 다시 오래 유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6월 4일

조금 이르게 퇴근을 했다, 아홉시 반. 뭘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율동공원의 24시 커피집에 오고야 말았다. 밀크티가 두잔째. 여덟시 반쯤에 퇴근했다면 큰 고민 없이 사택 근처의 커피집에 갔을텐데, 아홉시 반이라며 애매한 시간이라 생각하고는, 이윽고 일부러 차를 몰아서 먼곳에 있는 카페에 오고야 만다. 열두시 쯤 문닫는 커피숍은 항상 열한시 반쯤 부터 매장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슬슬 정리할 때인데 아직도 집에 안가세요?' 하고 내게 시위하는 것 같은 느낌이 괜히 들곤 해서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때때로 24시 카페를 찾고는 하지만, 정작 나 또한 책을 읽다가 피로에 지쳐서 열두시 언저리에 다했다고 집에 가버리고는 한다.

매장 거울에 비친 내모습이 썩 나쁘지 않다. 머리도 묘하게 예쁘고, 요즘 운동 효과가 보이는 것도 같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것 역시 거울 속에 비친 나 뿐이었다.

6월 8일

가끔 술자리에 끼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내가 내 속에 말할만한 컨텐츠가 너무 부족해서 스스로 듣고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사람들과 있는 가운데, 말을 많이 하기보단 듣고 있는것이 좋다는 덕담이 많지만, 스스로 내가 이토록 사람들과 공통분모도 없고 공허한 사람이던가 하고 느껴지는것은 어떤 덕담으로도 극복하기가 어렵다. 나는 술자리에서 벗어나고 나서 조차도, 오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그 가운데 내 공통분모는 왜 없었으며,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지 복기하고 반성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 없는 술자리에서조차, 나는 당장 그 자리에서의 존재감을 잃을 뿐만 아니라, 다음 술자리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져 버리고야 만다.

6월 14일

과음을 했다. 병신 이민혁.

6월 20일

지난 술자리와는 다르게 이번엔 쓸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했다. 내 스스로 컨텐츠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말만 많아진다면 그 말은 공허하기만 하다. 말과 술을 자중하자.

6월 21일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고 싶어졌다. 무엇이라도 좋겠다.

6월 24일

일할 시간에는 딴 생각을 하고, 주말에는 일생각을 하는 멍청한 이민혁.

예전에 읽었던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라는 책에서, <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 가까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허상이다 > 라는 말을 교훈 삼아 입을 다물은 것은 정말 괜찮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나를 털어놓지 않음을 통해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불쾌함을 사지 않아도 되었다. 이해해 달라고 말하며 길거리에서 발가벗어봤자 사람들이 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는 걸 왜 이제서야 깨달은 걸까.

6월 30일

주간 회의 시간에, ' 이번주에 정신이 없었는데, 뭐때문에 정신이 없었는지 잘 모르겠다' 라고 말했다. 뭔가 이런저런 이유로 화가 났는데, 왜 화가 났는지 잘 모르겠다.

7월 3일

Tmax Day 발표는 조금 덜부끄러운 발표가 되었긴 했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혁신'이라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혁신'과 '완벽'이라는 단어는, 담백한 발표 이후에 듣는 사람이 붙여주는 수식어가 되어야지, 자신들이 함부로 붙일수 있는 수식어가 아니다. 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7월 8일

나의 어른들이, 내가 싫어하던 어른의 모습으로 자꾸 변해만 가는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사람들은 나의 지금모습이 별로라며 내게 지금의 모습을 버리고 변하라고 말한다. 내가 그렇게 안좋은걸까. 내가 사람들에게 일관성을 바라는 것이 그토록 나쁜거란 말인가.

7월 13일

딱히 목포가 아니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나는 여행지에서 뭔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준치회무침이 매콤하면 매콤한대로 좋고, 유달산이 가파르면 가파른대로 올라가서 목포를 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고 나면 목포를 기억해내고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나는 떠나온 것이 더 좋았던것 같다.

날씨가 좋고 목포앞바다의 일렁임은 마음의 파도보다 잔잔했다. 격랑을 이겨낼 수 있을까.

7월 20일

무엇을 위한 분노였을까. 왜 내 존재가 옅어질거라고 그렇게 지레 겁먹고 생떼를 썼던걸까. 왜 내가 고통을 호소하고 벗어나려 노력하면, 그 고통이 곧바로 타인에게 전이되는 걸까.

다시 입을 다물어야만 한다. 아, 나는 정말로 입을 다물어야만 한다.

7월 22일

하자, 이직 준비.

7월 28일

아직도 거울에 비쳐지는 아저씨의 모습에 흠칫 놀라고는 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아저씨라는 사실을 그토록 부정했었나 보다. 단순히 눈가의 주름, 수염자국, 어두운 피부톤만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듯 하다. 나는 내 목소리를 내어본적도 없어서 다음 기회에는 꼭 내 목소리를 내겠노라 다짐했으나, 점점 그 기회는 사라져만 가는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는 곁에 그나마 있어주는 것들을 돌아보면서 내가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될 이유를 악착 같이 수집해왔다.

그런데, 그럴수록 사람들이 점점 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너, 그렇다면 이정도도 버틸수 있느냐고. 그 다음에는 또 더 가혹한 질문을 던져서 이정도도 버틸수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 나는 그 대답을 올곧게 하지 못한 댓가로 조금 더 가혹한 삶을 산다. 사람들 눈에는 고민이 없어보여서 일견 무던하게 살아가는것 처럼 보이겠으나.

7월 31일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했다. 나는 당신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미국, 인도네시아에 이어서 개인 통산 세번째 방문국가는 인도가 되었다.

개인 통산 첫 비 보잉계 비행기 탑승 (에어버스 A320, 그 전까지는 계속 보잉 777). 개인 통산 첫 아시아나 항공 이용. 개인 통산 첫 환승 항로 이용 (인천→ 뉴델리 → 푸네). 개인 통산 최장기간 해외체류.

출장은 9월 8일까지.

8월 3일

혼란스럽다. 고객은 자신들이 잘 모르는 것 조차도 우리가 원인이라며 날을 세웠다. 우리는 날카로운 혓날에 귀가 베여 고막에선 줄줄 피가 흘렀다. 혓날은 고막을 파고들어 머리 속까지 후벼 팠고 우린 그대로 쓰러졌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이 국면은 나아질 수 있을까.

8월 6일

아직 행동에 옮겨본적은 없으나, 사람들이 스스로 죽는 이유는 아마도,

어떤 것도 스스로의 의지로 할수 없을 적에, 의지대로 선택할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지가 죽음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8월 9일

너무 외롭다. 어렵다. 교통사고와도 같은일은 계속 일어났다.

철학에 반하는 일을 동료에게 설득하고 사역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하소연 할수 없으며, 내가 바로 불만의 종착역이다.

너무 역겹고, 토할것 같다.

8월 10일

출장중의 있던 회의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는,

우리 연구소 측과의 어떤 협의도 없이 고객에게 개발 납기 일정을 전달하고 우리에게 통보했다.

그리고 자리에 있던 상부의 모든 관리자는 이에 대해 아무도 토달지 않았다.

그 업무가 끝난 저녁에 정말로 이런 업무프로세스가 맞는 것인지 관리자에게 찾아가 물었다.

정말로 이런 프로세스가 공식적인 업무 프로세스인가요?

제가 정말로 팀 내의 연구원 분들께 '고객이 이 날까지 달라고 했으니 코드를 만들라'고 전달해야 되나요?

혹시 그 분께서 연구원을 다루는 방식으로 이런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게 아닌가요?

그는 납기일의 실패는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일정 수정도 못할일이 아니니,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라 했다.

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고객일정이 이러하니 이해해 달라고 미리 이야기만 해주었어도 이렇게 까지 생각이 깊어지진 않았을 테지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그 자리의 분위기와, 같이 고생하는 연구원 분들의 모습이 나의 모든것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난 자리에 돌아와 울음을 터트릴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영업 방침은 계속 '저희는 다 됩니다' 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의 제품은 다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 되도록, 또 다시, 연구소측과의 어떤 협의도 없이 고객에게 개발 납기 일정을 전달하고 우리에게 통보할 것이다.

그리고 상부의 모든 관리자는 이에 대해 아무도 토달지 않을 것이다.

8월 16일

나는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그들은 내게 손가락을 가리키면 그만이었다.

“약속하기로 한 일은 왜 못했니?” “쟤들이 일정이 늦어져서 그랬어요”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뭔가를 잘못한 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연신 떼를 써댔고, 또 어떤 이는 그것을 받아적기만 할 뿐이었다.

떠나고 싶다. 이 고객 회사를, 이 숙소를, 인도를, 이 회사를, 이 세상을.

8월 18일

봄을 낭비 했고, 여름을 빼앗겼다. 가을이 짧으니, 겨울이 더욱 춥겠다.

8월 27일

분노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 모든것에 화가났다. 음악을 들어도 감흥이 없다, 책에 집중할 수도 없다. 어디에도 하소연 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나쁜 회사에 좋은 사람들이 곁에 모였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리고 그 좋은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잃고 무너지고 있다. 이건 지속가능하지 않다. 머리속에서 몇번을 생각해봤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

회사는 모두에게 솔직하지 않다. 그 문화는 회사 전체에 퍼져있다. 2008년 티맥스 윈도우가 실패한 후, 그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다. 여전히 운영체제 사업은 정밀한 사업계획에 의해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개인의 꿈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희생하고 있을 뿐 이었다.

'티맥스데이'라고 하는, 아마도 애플의 WWDC를 베껴 만든 행사에서 어떤 제품을 발표하던지 간에, 그들이 전달하는 주된 내용은 “다 됩니다” 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다 되지 않는다. 그들은 듣는 사람에게 솔직하지 못하게 먼저 말해놓고는, 그 거짓말이 진실이 되도록 내부자들에게 채찍을 휘두른다.

운영체제 사업에만 그런것이 아니라, 회사 전체에 솔직하지 못한 기조가 퍼져있다. 영업자들은 고객에게 모든것이 다 된다고 우선 홍보한다. 엔지니어는 되지 않는 기능을 프로젝트 시한이 되고서야 보고한다. 개발자들은 일정에 쫓기어 미성숙한 코드를 내보낸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고객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악순환을 더 견디기 힘들다. 피드백을 그들에게 던진들 먹힐리없다. 그들은 회식자리에서 과거의 힘든 프로젝트 진행의 무용담을 말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일말의 의식도 없고, 프로젝트는 말로는 모두 자신이 다 노력해서 해낸것들이다.

결심을 해야겠다.

8월 31일

술이 마취제지, 치료제겠습니까.

마취같은건 맞을땐 몰라도 풀리고 나면 고통만 더 선명해질 뿐입니다.

9월 8일

내가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당신에게는 내가 이렇게 멀어지고 나서야 발현되는 간사한 마음인것 처럼 비쳐질까봐.

9월 10일

이 회사는 타인의 일상을 빼앗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9월 23일

고국으로 돌아온다고 마음의 폭풍 잦아들지 않았다.

현재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과거의 내 모습을 함부로 미화해서는 안된단다 민혁아. 예를들면, 그래도 '내가 옛날에는 좀 더 좋았었는데' 같은 태도들.

너는 여전히 너를 객관적으로, 조금은 비판적으로 너를 바라봐야만 한단다.

9월 30일

사람 만나기 어렵다. 오랜시간 떨어져있는것을 의식하고 있는것은 나혼자 뿐이었다.

10월 13일

지속 가능하지 않다. 히스테리컬 해지는 내 모습을 1인칭으로, 3인칭으로 느낀다.

10월 17일

보고싶다고 말은 하지만, 좀체 잡히지 않는 시간과, 사라지지 않는 숫자들.

조금 잔인하지만 이제는 시간나면 보고싶은것과, 시간내서 보고싶은 것은, 구분해야 할것 같다. 구분해서,

시간나면 보고싶은 것은 그냥 보고싶지 않은것으로 하자.

10월 19일

바쁨의 빈자리는 외로움이 채운다.

10월 28일

내가 알던 어른들이 자꾸 흉물 스럽게 변해가는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은 내 지금 모습과 내가 가진것들을 너무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다. 다들 자신의 뜻에만 움직여주길 바라고 있고, 내 뜻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누구라도 만나고 싶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

맥북을 4년째 써오고 있다. 좁쌀같은 마음을 가진 스티브 좁스씨가 그나마 자비를 베푼것이 있다면, 감히 신성한 맥북에 부트캠프같은것으로라도 윈도우를 설치할 수 있게끔 해줬다는 것이다. 꼭 윈도우가 필요한 상황에서만 윈도우로 부팅하겠노라 마음먹었건만 이제는 MacOS로 부팅하지 못한지가 어느덧 두달이 넘어가고 있는것이, 왜 지금 내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걸까.

11월 4일

이영은님이 빌려준 책 Axt에는 '정영문'이라는 작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사람은 인터뷰 내내 일상이 부여하는 권태로움과 지루함을 논한다. 지루함과 권태로움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지만 스스로 그것을 거부할수 없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11월 10일

'보고싶다'고 말만 해주는 사람보다, 직접 만나 보고싶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것 같아. 시간 내서 같은 곳에서 만나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그리고 다음을 기약할수 있다면, 더더욱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11월 13일

이러한 한편에 또 다른 당신은 점점 멀어지고 있네요. 멀리 멀리. 이제는 손을 흔들어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12월 18일

구인 공고를 살짝 봤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역량을 내가 가지고 있지를 못하다. 나는 새로움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 그들에게 보여줄수 있을까? 그 역량을 이 속에서 키워낼 수 있을까? 뛰쳐나오면, 나는 자생할 수 있을까?

12월 20일

슬프다. 나라는 들꽃은 아무리 씨앗을 길거리 널리 퍼트려도 자생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예를 들면 아무리 회식자리에서 내 시골생활이나 사고방식에 대해서 읊어 봤자 2차에서 나를 찾아봐주는 사람 같은것 따위는 없고, 결국에는 나는 사람들을 등지는 척 빠른 걸음으로 집까지 걸어온 다음에 술기운이 얼근한 채로 카페에 들어가 술을 깬답시고 차가운 커피를 시키고서는 책을 읽는다던지 고상한척을 하면서 사람에 대해 그리워 하지 않는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12월 23일

비현실적이면서도 충격적인 꿈을 꿔서, 그모습이 너무 잊혀지질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앞에서 다른 사람과 입맞춤을 하는 그런꿈, 그 다른 사람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고, 마치 내가 들어갈 빈틈같은것은 조금도 없다고 말하는것 마냥 보란듯이 내 앞에서. 깨어날때에 이렇게 숨차 하면서 일어났던적이 실로 오랜만이었던것 같다. 나는 또 내것인적도 없던것을 내것이라고 주장하며 혼자만 억울해 하고 있었다.

꿈의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차마 여기에 적을수가 없다. 아예 이런 기록을 남기질 않아서 잊혀졌으면 싶을 정도로.

12월 25일

'오늘은 그래도 다른 사람들 못지 않게 크리스마스를 보낼꺼야' 하고 전시회와 쇼핑몰을 갔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과 차들을 핑계로 단념하고 그냥 시간만 버린채 돌아오고 말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 계획이 너무 즉흥적이었던걸까, 혹은 누군가와 같이 갔다면 조금 오래걸리더라도 진득하게 기다릴수 있었을까? 나를 조급하게 한 것이 어떤 것이었을까?

돌아오면서 생각해봤다. 결국 정말로 뭔가 하고싶어서 하는 일이었다기 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자 지리멸렬해지는 것이 싫어서 억지부리듯이 뛰쳐나온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스스로에게 엄청난 실망을 했다.

번외의 글

분노

올 한해를 돌이켜볼 적에 나를 지배했던 대부분의 감정은 '분노'였다.

나는 분노를 삭이려고 애쓰지 않았고, 대신 이 분노를 정당화 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것 같다. 정당화했던 이유들을 대자면,

1. 이러한 분노를 유발 시켰던 여러가지 요인에게 책임을 돌렸다. 실제로, 보통의 경우에는 이렇게 분노가 발생할 상황까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 분노의 감정도 역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에, 분노의 근원에 책임을 돌리고는 했었다. 가령, 회식이 잡힌날 회식 출발 10분전에 갑자기 일을 시킨다거나, 사실상 출장을 강제하여 친구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게 만든다거나.

2. 행복감, 슬픔, 유머와 더불어 분노 역시도 내가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내가 분노하고 있단 사실을 크게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들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분노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 당장의 분노는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 수그러들게 되지만, 그 다음의 분노가 더 빠르고 쉽게 찾아오게 되어버린다는 거다.

이민혁_2018년.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8/12/25 22:27 저자 116.120.12.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