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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혁_2019년

이민혁 / 2019년

새로운 국면.

올해는 나를 채우는 감정이 작년 보다는 다양할 수 있었으면 한다.

1월 6일

심란하다. 무엇때문인걸까.

발전하지 않는 내모습. 다가갈수 없는 사람.

1월 8일

열정을 적출당한 나.

원래 나는 조용한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가. 예전의 내 모습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

1월 22일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는걸까, 그냥 번져 버리는걸까를 고민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슬픔은 그냥 잘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내 내면을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허상이다.

명심해, 민혁아.

1월 27일

피천득 작가의 수필 '인연'은 수필문학의 정수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 문체와 작법은 어떤 느낌인 것인지 잘 이해가 되었지만,

옛날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정서를 아직 받아들지 못했다.

나는 어느덧 여유를 갖고 무언가를 지긋이 바라보고 스스로 생각한 바를 결정짓거나, '무엇은 무엇이다' 라고 단정적으로 비유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잘 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점점 비대해 지는 몸과는 다르게 마음은 점점 비루해져만 가는가.

1월 29일

틀려먹었다.

시스템을 잘 알고 있다고 팀장직으로 승진시킨게 아니라, 그냥 개발을 못하니까 관리직을 하라고 좌천시킨 것이다.

슬프다, 어릴적 맹목적으로 좋아해오던 전산이라는 분야가, 내게 다가와 너는 사실 이것이 적성이 아니었다며 귀에 오싹하게 속삭이는것만 같았다.

2월 6일

또 틀려먹었다.

연휴는 너무도 빠르고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나는 지금 있는 일들을 잘할 자신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잘하고 싶은 마음조차도 없다. 마음이 떠나버렸다.

2월 17일

이대로 학습을 거부한채 뻣뻣해져서는 안된다. 너는 네 마음을 그렇게 함부로 닫아버려서는 안된다. 너는 운동과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육신 뿐 아니라 정신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3월 8일

회사는 나를 붙잡는데,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냉정하게 보면 나는 이 회사에서 올바른 생산성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어째서. 내가 토로한 문제들은 해결될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남아있어달라 하면서도 내가 토로한것이 개선될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남는자의 댓가는 꾸준한 월급일 것이다. 떠나는 자의 마음이 편할리 없다.

3월 10일

나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내가 찾음을 반가워 하는 이도 없었다. 슬프다.

나는 철저하게 잘못살았고, 이걸 관심가져주는 이 역시도 아무도 없었다.

3월 17일

선배의 결혼식. 오랜만에 대학때의 선후배들을 만났고, 반가웠다. 정말로 반가웠다.

나를 둘러싼 것이 변한다. 완벽한 파괴를 통해 새로운 질서는 정립되는가.

서점을 갈껄 그랬지. 엉덩이 붙이고 앉은 이제 와서 다시 일어나 가기도 그렇고.

3월 18일

저도 당신에게 제 가진 감정들을 털어놓고 싶습니다. 그런데, 보통 그렇게 감정을 털어놓는것은 지금의 감정 상태로는 '토로'가 되어버릴것만 같더군요.

당신은 언젠가 감정을 토하듯이 말하는게 싫다고 말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감정도 능히 당신에게는 토사물처럼 느껴질 것이잖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좋지 않는 모습으로 비쳐지는게 두렵습니다. 이런 감정 역시 털어놓을 수가 없고, 마음은 썩어 문들어져만 갑니다.

3월 20일

네네, 누가 저한테 관심이나 있겠어요.

4월 2일

하고싶은 일을 하고자 뛰쳐나온게 아니라, 하기싫은 일을 피하려고 뛰쳐나온 것이었다

4월 7일

정녕 싸움으로 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건가. 부모님이 오랜만에 또 싸우셨다. 두분의 의사소통방법은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다. 두분은 조금도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싸움이 만들어낸 공기가 싫어서 집을 나와 카페로 향했는데, 카페엔 나와 다른 두분의 손님이 있었고, 그 둘은 또 싸우고 있었다. 정녕 싸움으로 부터 벗어날 수는 없단 말인가.

4월 10일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만 한다면 나는 그자리에서 울어버릴 것만 같다.

4월 18일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질투가 나의 힘이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나는 혼자라는게 좋다면서 도망쳐왔다는 것을. 그렇게 말해놓고도 항상 카페에 나와서는 옆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그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쓸데없이 자존심을 내세워 왔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4월 25일

살찐다. 라면을 그렇게 줄이고 간식을 잘 먹지도 않는데, 늘어난 체중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입었던 셔츠마다 겨드랑이에서 비명을 질렀고, 옆모습을 봐도 허리선이 더이상 잘록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도 건강해지는 것인가? 그런거면 좋겠다.

4월 27일

영등포의 카페에 잠시 앉아 있어보니 서울을 다니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 상관없이 저마다 멋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마저도 곁눈질 하며 바라만 보았다.

5월 8일

장군이가 쇠약해짐을 느낀다. 잠도 더 많아지고, 밥도 전보다 덜먹는다.

내가 휴직을 시작한 4월 초의 모습보다도 묘하게 더 쇠약한 느낌이 드는것은 그냥 나의 기분 뿐인 것일까.

슬프다. 엄마는 장군이 모습에서 예전에 떠나간 꼬맹이를 보았다.

모든것은 천천히 나를 떠나가려 하고 있고, 나는 그걸 슬퍼하며 어쩔줄 몰라 하고 있다.

성숙이란게 계속 잃어가는 것을 두고 의연해 지는 것이라면, 아직 나는 성숙하기에 한참 멀은 듯 하다.

장군아 2년만 더 살자. 아니, 1년만이라도 더 살자. 나를 떠나지 말아.

5월 13일

그녀는 내게 관심이 없는데다가,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주는것 마저도 바라지 않는 것 처럼 느껴졌다.

나는 안맞는 퍼즐조각을 억지로 맞추려다가 손을 다치는 어리석은 아이인 것만 같다.

5월 21일

수염을 삭제했다. 사람들은 수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잘 못알아 본것 같다.

당신을 보아도 이제 예전같이 마음이 크게 일렁이지는 않으나 다만 슬픔을 느낀다.

다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예전과 다르다고 일관성 없다며 혼자 규정짓고 슬퍼해서는 안된다.

5월 23일

사람들이 내게 기대치나 관심같은게 없다라고 생각을 하니 미묘하게 마음이 편안해 지기는 하는구나.

근데 그 등가만큼의 슬픔이 채워진다.

5월 25일

겨우 하루 장군이랑 집에 묶여 있었다고 하루를 유린당했다고 생각하는 내가 레전드다.

왜 이토록 마음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초조한걸까.

6월 12일

멀어지면, 손흔들고 인사하면 된다.

바짓가랑이 붙잡고 가지말라고 하는게 아니라.

6월 27일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지 한달쯤 되니까, 정신상태도 다시 휴직 이전으로만 돌아간 듯 하다. 나는 언어능력이 더욱더 퇴화했고, 사람들이 부를 때마다 깜짝 놀랐고, 높은 사람 앞에서 주눅 들었다.

대화를 통해 어떠한 일이 해결되는게 아니라, 대화로 인해 새로운 일이 생겨나는 기분이 잔뜩 들었다. 나는 더욱 더 밤의 침묵을 찾았다. 사람들은 더욱 멀어진다.

6월 29일

노트북을 새로 샀다. 애플의 생태계에 완전히 빠져있던것은 아니었으나, 이것을 계기로 아예 빠져나오게 되었다.

소파에 앉아 맥북을 보고 과제를 수행하는 미국의 대학생들을 힙하다고 느꼈던 나는, 모 프로젝트의 장비 지원금이 나왔을 적에 망설임 없이 맥북을 샀었다.

스티브잡스를 동경하기도 했었다. 보통 스티브 잡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2007년에 발표한 아이폰의 발표를 가장 좋아하지만, 나는 사실 그가 NeXTStep 에서 자신의 OS와 함께 복귀했을 때 부터의 발표를 찾아다 봤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Mac OS X 의 발표를 주도하면서 OS X 가 애플을 이끌어갈 멋진 OS라는 설명을 기술적인 측면부터 누누이 해왔고, 결국에는 현실화 되고 아이폰에도 이식되면서 꽃을 피웠다.

하지만 맥북은 냉정하게 보면 나와 어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애플의 응용프로그램 설치 방식에 여전히 익숙하지 못했고, 우리나라와 회사의 컴퓨팅 환경은 여전히 윈도우를 요구했다. OS X가 스티브 잡스시대를 지나 팀쿡의 시대에 와서는 큰 변화를 보여주진 못했(다고생각했)고, 그 사이 윈도우는 닫혀있던 문을 열면서 리눅스를 자신의 시스템에 가져오고 깃허브를 사들이고 VSCode를 만들어 쓸수 있게 했다.

여전히 지금 갖고 있는 맥북의 컴퓨팅 파워는 강력하지만,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할 때인 듯 하다. 그리고 30대의 컴퓨팅은 아마 이 컴퓨터와 꽤 오래 함께 할 것 같다.

편히 쉬시길, 스티브 잡스씨.

7월 6일

24시 카페 내가 앉은 자리 건너편의 두 남자는 임용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동시에, 티볼리의 가격표를 들고 어떤 티볼리를 살지를 고민하고 잇다.

그… 저라면 티볼리 안살거 같아요.

누가 나한테 잘지내느냐고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인스타에 멋진 사진들을 올리는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잘 지내고 있는것 같아보여서, 달리 내가 먼저 무어라 말을 걸기가 애매하기만 하다. 으레 인스타에는 좋은 부분만을 골라내어 올린다고들 말하지만, 나의 요즘을 보면, 그렇게 골라낼 수 있는것 조차도 없고, 그나마 가끔씩 올리는 장군이의 얼굴같은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전에도 봤던 그 얼굴일 것이다.

7월 17일

꼬맹이 떠난지 3년이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자라나는게 멈춘듯 하다. 그가 나를 좋아해준 만큼 그에게 돌려주지 못함은 죄책감이 되었고, 어느것도 이제 함부로 좋아할 수 없게 된 데다가, 누구도 나를 좋아 해주지를 않는다.

7월 22일

트랙데이로 강원도에 다녀온 피로가 온전히 풀리질 않는다.

서울은 가는곳마다 너무도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어서, 어느것이 서울의 특징이라고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같이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간 후배의 눈에 총기가 어려있다.

나의 총기는 다 어디로 간걸까. 후배에게 말한 '얻는것과 잃어버리는 것을 잘 살펴서 덜 잃도록 노력한다'라는 말을 나는 정말로 실천하고 있는 걸까.

나는 또 내 스스로를 거짓으로 포장한것만 같다.

7월 24일

개발자 직함을 단지가 어느덧 3년이다. 이 모습은 정말로 내가 꿈꾸던 모습인가.

7월 31일

가끔 인스타그램에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남자의 다정한 답변, 올바른 도덕관, 또는 포용하는 마음의 여유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썰같은 것들이 올라온다. 그런 글들을 보노라면, 마치 '네가 만약 연애를 하면 저런 답변들로 여친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느냐' 라고 내게 묻는 것 만 같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좋은남자' 가 될 자신이 없다. 나는 그저 지금의 비루한 나일 뿐인걸.

그래서 나는 호감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조급하게 내 단점이건 장점이건 있는 모습 그대로를 허겁지겁 드러내기 바빴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질려 하거나, 혐오하거나, 또는 귀찮아 하면서 떠나가고 말았다.

남들 앞에서 함부로 옷을 발가벗을 필요가 없다. 늘 그걸 잊지 마라 민혁아.

8월 6일

솔직히 유튜브나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 사람들을 보고 박탈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을 이해하질 못하겠다. 그들이 우리가 가진 무엇을 박탈했길래?

8월 15일

나는 무엇으로 독립해야 되는 걸까. 타인의 의존적인 생각들을 끊어버리고 나면, 남들이 나를 알아주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끊으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왜, 나를 불쾌해 하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9월 3일

지난주에 만나자던 모임이 이번주로 번복되었다가, 이번주도 번복됐다.

단톡방에 친구는 번복을 통보했고, 나는 갈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못간다는 내말에 외계인이라 고향을 간다며 조롱했다.

이런 일 있으면 나만 아쉽나?

타인들은 친구가 많아서 이렇게 번복되어도 그냥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만인가보다.

9월 7일

요즘은 생각에 지친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불규칙한 수많은 일들과, 요즘 듣고 있는 글쓰기 수업과, 회사일에 이어서 내가 고쳐야하는 코드들은 머리를 너무 복잡하게 만든다. 거기에 더해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는 요즘의 삶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사람들도 누군가 결론 내려주지 않은 채 내 머릿속을 무한루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고 있노라면 생각에 지쳐버려서 과제나 프로그래밍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일하는 시간이 아닌 주말같은 때엔, 생각하는 일을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아버리게 되고 만다.

9월 15일

엄마는 아버지가 힘들다고 말했다. 두분은 서로 다른데, 같이 산다. 그리고 그게 나를 포함한 모든 나머지를 힘들게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이름을 내려놓은채 될대로 되라는 식의 사람이 된 것 처럼 보이고, 엄마는 그 문맥을 이해하지 못한채 아버지의 모든 것을 싫어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두 분이 같이 살고 있는 이 상태가 너무 불안하게 다가왔다. 어떡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9월 18일

인터넷 세상은 여전히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에 종교도, 인종도, 학벌도, 국경도 없다던 작가의 말은 완전히 틀렸음이 증명되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이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음에도, 그것이 마치 자신을 욕하는것마냥 반응 하고 뺨을 후리고 아구창을 날렸다. 예를들면, 특정한 한 소설

솔직히 웃긴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소속된 어떤 집단을 대표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으려고 노력하는것 같아 보였다. 내가 저녁에 고기를 먹는데, 고기를 먹는것은 동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라며, 당장 육식을 중단하고 채식주의로 돌아가야 된다는 식이다. 내가 친구들의 단톡방에 조국 임명자가 청문회에서 해명해야 한다고 말하자 마자 친구는 언론세력과 정치세력을 언급하며 화를 냈다. 조국을 욕한 것이 마치 자신을 욕했다는 것 마냥 듣고는, 내가 마치 그 정치세력이나 언론세력의 일부이거나, 또는 그 세력에게 선동당한 인물처럼 반응했다. 그 친구와는 잘 지내지만, 솔직히 아직도 화가 잘 가라앉지 않는다.

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10월 16일

11월 3일

달리기는 58분 56초를 기록했다. 통산기록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

뛰는 동안에 정신이 쉬는 게 아니라, '페이스를 조금 더 올려'와 '그만 뛰고 싶다' 가 끊임없이 싸웠다. 그러는 사이에 코스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서 힘들었다.

회사 임원진들이 참전한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주치지 않았다. 회사 생활로 부터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서 달리기를 신청한건데 회사사람을 만나버리면 곤란하잖아.

하지만, 돌아오면서 서로 축하해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역시 같이 뛰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옛날 통학로로 다니던 길을 버스로 타고 돌아오고는, 집에 와서 밥 먹고 낮잠을 자니, 기분이 정말 좋아졌다.

12월 1일

최근들어 몸에 피로감이 많이 늘었다. 등에서 어깨로부터 뻗어올라오는 피로감이 슬슬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 아침에 못일어나는 일이 몇번 있었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소화기능도 꽤 나빠졌다. 내 몸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이젠 회사에 대해 나쁜 생각을 차라리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는 회사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는지, 분노가 많이 느껴졌는데, 요즘도 이따금씩은 분노하지만, 꽤 많이 잦아들은듯 하다. 오히려 내 처신을 잘하고 개인역량을 늘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집중력은 아직 잘 끌어올려지지 않는다.

지난 금요일의 회사 티맥스데이 행사는 너무도 외로운 행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눈을 마주쳐도 이제는 더이상 예의상의 반가움도 내비치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 잘못을 하고 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소문으로 돌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를 않는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두렵다는 이야기를 친구 몇에게 한적이 있었는데, 그 의지대로 올 한해에 새로운 인간관계는 거의 맺지 않은듯 했다. 80년대 산아제한 정책을 내세웠던 대한민국은, 근래에 들어 성공적인 출생률 수치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민혁 너는 행복해졌는가. 그래서 대한민국은 행복해 졌는가.

12월 4일

모든 인간관계가 피로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얻어지는 고양감을 뛰어넘을 정도로 피로하다. 내일 휴가를 낸 김에, 저녁에 동네 친구를 만날까 하여 카카오톡에서 친구 이름을 검색하고 말을 붙이려다가 끝끝내 그만두었다. 언제나 말을 먼저 붙이는 것은 나였고, 아쉬운 입장 역시 나였다. 그래, 항상 나만 아쉽지.

12월 5일

보려고 골랐던 전시가 하필이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려서, 주차 자리를 찾아본 끝에 남산 주차장에 세우고 남대문을 따라 천천히 걸어내려가본다. 남대문에서 시청까지 이어지는 서울의 모습은, 신논현과 강남사이에서 보여주는 서울과는 또다른 모습인데, 묘하게 강남보다 시청을 걷는것이 더 즐겁다. 남산까지 뻗어올라가는 거리의 형세를 닮아 그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묘하게 더 역동적이라고 느낀다. 기분탓인가.

전시 내용 자체는 아쉬웠으나, 전시를 보고 있는 순간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 즐겁다.

12월 15일

당신을 존경했던 적도 있었다. 당신의 에너지가 부럽고, 그걸로 만들어내는 왕성한 사회생활능력이 부럽고, 당신이 예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도 부러웠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표현했던 존경심과 관심만큼 내게 돌려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당신에게 주었던 것은, 당신이 원하던게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구체적으로는, 나는 당신이 보낸 질문을 답하는 것이 너무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당신이 내게 돌려준 관심은, 멋진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만들기 위함이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것이 아니라는것이 너무 느껴진다.

당신은 내가 표현하거나 건네주지 않아도 여전히 즐겁게 사회생활 하고 있다.

이제는 존경심을 거두어도 될 것 같다.


내 인간성의 한계를 경험해본 것 만큼 절망적인 경험이 또 있을까.

대학생 시절만 해도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당장은 내성적이고, 아는것도 많지 않고, 때로는 옹졸하지만, 이런 저런 일들을 경험하고 나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학생 시절을 마치고 나니 내가 변해야 하는 상황에 던져질 일이 많았다. 팀장을 맡아서 많은 의사소통을 강요당하고, 원하지 않는 출장을 가며 친구들과의 여행을 취소했다. 생애 처음해본 소개팅에 회의감을 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 줄거라는 주변의 말에 귀가 얇게도 참고 견뎌보긴 했지만, 못참고 욕지거리를 내뱉은 끝에 휴직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지금은 무얼 하더라도 내가 지금의 모습에서 잘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작지만 꾸준하게 절망스럽다.

12월 16일

주사바늘 맞는 일은 늘 꺼림직 하다. 프로포폴도 꺼림직하다. 지난번에 처음 맞았을 적에는 다 맞고 나서는 몸이 개운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주사맞기 전의 피곤한 상태가 되었다.

충동적으로 산정호수에 다녀와 물을 보고 왔으나, 크게 역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 충동적인 방랑은 늘 이런식이다.

12월 22일

인연이 멀어지는건 나만 아쉬운것 같다. 늘 나만 아쉽다.

총평

퇴보의 이민혁

6주의 휴직이 회복하기 충분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손상 자체가 비 가역적이었던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분명 인격적으로 파괴되었다. 순발력, 집중력, 언어 독해력, 사회생활능력 모든 면에서 2018년의 이민혁보다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나는 어느새 타인의 말을 1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고, 글을 읽으면 글자가 부서지고, 직원들의 인터럽트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휴직이 시작하자마자 집안에서 발생한 부부싸움, 부부싸움이 마치고 난 다음에 체감한 가족 구성원 사이의 미묘한 갈등은 내게 온전한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이민혁_2019년.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0/01/23 22:56 저자 183.99.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