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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혁_2022년

이민혁 / 2022년

1월

1월 2일

운동량도 현저히 줄어 피곤할 이유가 없는데도, 신체밸런스는 무너져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늦게 일어났다.

무너진 몸을 일으켜 겨우 씻고 밥과 커피를 해결하러 나간다.

면접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아서 면접때 물어볼걸로 예상되는 몇가지를 정리한다.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으는 과정이라 집중력이 좀체 살아나지를 않는다. 지난 면접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괜히 또 부끄러워진다.

회사를 떠나던 그분은 혹시 스터디 프로젝트 할 생각이 있으면 연말까지 연락을 달라는 단서를 내게 달아준 적이 있었다. 스터디를 위해 한주에 한번 시간을 빼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작은 사회에 던져져서 사람들과 투쟁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분과 선을 그어두며 감정을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그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아니하는, 의식하면서도 의식하지 않아야 하는 중간 균형을 찾기가 너무 어려울 것 만 같았다. 그리고 그 거절의 뜻을 구태여 연락해 전하는 것이 맞을지 어떨지도 알 수가 없었다.

시선은 또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사람을 만나 대화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새해가 되었는데 내 자신은 점점 굳어져만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마음이 헛헛해 겉잡을 수가 없다.

1월 5일

화상면접이 오늘 점심에 있어 휴가를 내었다. 전자인사시스템상 아직 휴가가 배정되지 않아 팀장님께 선 보고 후에 휴가를 쓰기로 했다. 휴가를 쓰면서는 집에 가정사가 있다고 팀장님에게 둘러댔었다. 1분 짜리 자기소개 스크립트를 썼다. 영어로 된 자기소개도 준비하라 하여 번역기의 힘을 빌려 써내려갔다. 국문,영문 합쳐 읽는데 3분 남짓이었는데, 나는 한번만 읽었는데도 뭔가 역한 기운때문인지, 낮아진 집중력 때문인지, 도저히 연속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한번 읽고 몇분 쉬었다가, 한번 읽고 또 몇분을 쉬었다.

면접 볼 회사측으로 부터 예고된 시간보다 조금 빨리 시작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 탓에, 20분 일찍 면접이 시작되었다. 나는 내가 써둔 자기소개를 다 외우지 못했기에 스크립트를 좀 참고해서 읽어내려갔고, 면접관 분들의 질문에 답하기도, 답을 못하기도 했다.

면접 전에는 긴장감 때문에 속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면접이 끝나고도 몸에 역한 기운이 꽤 오래 남는다. 면접을 보기위해 팀장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도, 면접 질문에 대답하겠다고 평소 잊고 있었던 전산 상식을 다시 찾아 공부했던것도, 내가 겪었던 일들을 마치 대단한 일인것처럼 포장해 사람들 앞에서 말했던것도 다 모두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구역질이 났다.

면접이 끝나고 오래지않아 나를 추천해준 후배분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면접에 대비해서 제공해준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면접 느낌은 그냥 그랬다고, 그러나 있는 그대로 말을 해서 큰 후회는 없었노라고 후기를 전했다. 지난 면접때는 그래도 영양가가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해 기분이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는데, 오늘 면접은 그때보다는 조금 나은 내용으로 면접을 한것 같은데도 기분이 영 좋지가 않다.

1월 7일

회사 일은 진전이 없다. 설계와 구현을 중단하고 다른 구현 방안을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검토 결과를 회의때 말했더니 또다른 방향을 검토해달라고 했다. 모든 대화를 중단하고 귀막고 코딩해보고 싶다. 그러면 내가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생산성을 내기는 글러먹었다.

대화가 길어지니 회사 밥을 가져다 먹을 때도 놓쳤다. 영양관리를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더니, 마치 깨진 유리창 이론마냥 운동을 할 의욕도 어느새 사라졌다.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퇴근해 사라지고 코드도 치는둥 마는둥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어떤 의미있는 일도 하지 않았다. 유튜브 짧은 동영상을 손가락으로 힘없이 넘겨가며 감상했다. 폰 화면을 끄고 나니 봤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폰도 집어 던지니 내가 다가갈수 있는 사람도, 내게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사회성이 있는 사람인양 굴기 위해서 실용적이고 해가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정도 성공한 것 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약간의 독성은 있으면서 특별한 맛이 났었다.

1월 10일

지난주의 면접은 또 불합격 통보로 돌아왔다. 또 겸허함이 강요되었다. 이번 이직 도전을 주선한 후배도 역시 아쉬웠던 마음이 있는듯, 내게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준 질문지는 리뷰했는지 내게 추궁했다. 나는 지나가버린 것을 또 붙잡고 싶지 않았다. 깊게 한숨을 내쉰다.

동생은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회사의 미래에 의문을 표하면서, 개인적으로 코딩 수업을 찾아다가 공부하겠노라고 내게 천명했다. 더이상 공부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고 모두가 내게 말하는 듯 했다.

1월 11일

뭔가 답답하고, 공허한 느낌이 올해가 시작한 이래 꽤 오래 지속되고 있다. 근데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 콕 집어내기가 애매하다.

1월 16일

아버지는 점심에도 소주를 드셨다. 용인으로 내려갈적에 분리수거를 겸하고자 엄마, 아버지, 장군이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장군이는 유독 추울때 아장아장 잘 걸어다녔다. 장군이가 동네 한바퀴를 돌고 만족스러울 즈음에 동네 카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크게 머릿속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은 없었지만 카페의 공기, 대화의 분위기가 꽤 노곤노곤하여 엉덩이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흡연을 가시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전하고 주차장에서 장군이와 엄마가 나를 배웅한다.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매번 이야기 하지만 엄마는 괜시리 내가 차를 움직여 떠나기 전까지 입구에서 넌지시 나를 보고 있다. 그게 괜히 마음에 걸려 사진을 한장 남기고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스티어링을 돌린다.

1월 17일

단순한 친분이라고 마음먹고 연락을 드리는 것과, 친구 만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하자고 마음 먹고 가는 소개팅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을까. 그저 혼자만의 찝쩍임이다. 자기객관화를 처절하게, 철저하게 해야한다.

1월 20일

또다시, 집중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자꾸 다른 일이 끼어들어 집중력을 해친다.

내게 이직을 권했던 회사 전 동료가 연락하여 기술적인 질문을 했다. 내가 직접 다루는 기술은 아니었기에(PostgreSQL), 내 환경에서의 동작과 원론적인 이야기만을 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힌트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동료는 문제를 잡아내었다. 회사에서 타이핑한 몇줄의 코드보다 이런 이야기가 더 보람차게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인가.

1월 25일

새해가 되어 아직 한달이 채 안되었는데도 내 스스로를 바꿀 수 없다는 절망에 벌써부터 빠진다.

2월

2월 1일

설날을 보내는데 필요한 모든 일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눈이 많이와 돌아오는 길이 걱정스러웠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빨리 집에 도착했다.

동생은 집에 돌아가면 무엇이든 먹겠노라 했으나 들어오자마자 지쳐 쓰러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피곤했지만 설을 보낸 다른 가족들을 위로하고자 늦게나마 치킨을 배달시킨다. 아버지는 자신의 먹을것은 왜 챙겨주지 않느냐며 엄마에게 반쯤 농을던져 볼멘소리를 하셨으나, 피로에 지친 엄마가 조금은 짜증을 부리시며 국수를 삶는다.

다행히 치킨은 제때 배달이왔고 동생도 방에서 나오며 가족은 한 테이블에 앉았다. 다들 컵에 맥주를 따르고 오늘 고생했다고 한마디 하니까 각자 마음에 들고 있었던 피로와 짜증들이 누그러진다. 아버지도 나도 엄마도 동생도 오늘 있었던 일들과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에 한마디씩 거든다.

우리는 모두다 대화가 서툴러서 자신의 답답한 마음들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치킨을 먹는 자리에 자신도 껴달라고 국수를 삶아달라 하셨었고, 동생도 집에 돌아와 가라앉은 분위기에 토라져 방문을 닫았던 것이었고, 엄마도 집에 돌아와 아직 남아있는 집안일들에 화가 났었던 것이다. 직접 그 근원들을 다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먹고 말하면서 그것을 작은 일로 만들 수는 있다.

2월 2일

올해 설날의 절묘한 포지셔닝때문에 휴일이 5일이 되었지만, 화요일이었던 탓에 연휴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연휴가 아쉬우니 집가는 길을 꼬아서 오늘은 지는 해를 보겠노라 해본다. 대부도를 넘어 영흥도라는 곳이 있어 꽤 흥미가 느껴진다. 목적지로 정하고 슬슬 가본다.

2월 5일

오늘은 등산을 가겠노라 어제부터 다짐했었는데, 또 늦잠을 잤다. 밍기적 대느라 출발은 열한시에야 하고 말았다. 체온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가볍게 입고 나갔다. 올라가는 길에는 명절때 왔던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올라가기에 무리는 없지만 조심스럽게 발을 딛는다. 길 주변에 쌓인 눈과 맑은 날씨 덕분에 길을 올라가는 동안에 눈이 즐겁다. 마스크를 쓰며 올라가야 하는 탓에, 숨이 거칠어질 수록 언덕보다도 안경에 끼는 김이 시야를 방해해서 등산을 어렵게 한다. 올라가는 내내 라식을 해야 하나 하는 잡생각이 등산의 상쾌함을 방해한다.

한시간 남짓 부지런히 걸으니 정상에 금방 오른다. 날씨가 좋아 시야가 푸르렀으나, 정상에서 부는 바람은 쉽게 체온을 빼앗는다. 올라갔다는 증거만 몇 남기고 내려가려 했으나, 나처럼 혼자오신 분들이 사진을 부탁하여 두번 사진촬영을 도와드린다. 그리 오랜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몸에 온기가 금방 빠져나간다. 내려가는 동안의 등산로가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이라,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니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집 방향의 기슭으로 내려가는 길이 되서야 겨우 바람을 피하고 내려올 수 있었다.

추웠지만 결국 마음먹은대로 등산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봄이 빨리 오면 좋겠다 싶다.

2월 9일

퇴근 무렵, 작년에 팀을 떠났던 선배가 카톡으로 이직을 제의해왔다. 스토리지 컨트롤러를 다루는 하드웨어 회사. 만약 가게 된다면 소프트웨어 기술과는 멀어지고, C와 임베디드 세계에 몸담게 될 것이다. 제안에 마음이 망설여져서, 월요일까지 답을 드리겠노라 말씀드렸다. 속으로는, 면접은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의 면접처럼, 내가 선택받을 수 있다는 보장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선택은 오롯이 내가 해야만 한다.

2월 10일

자전거 출퇴근을 하면 체질상 몸에서 땀이 많이 난다. 이것이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날이 추워 심박수는 좀체 오르지 않는데, 몸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배출한다. 그런데 이 땀이 식으면서 추위는 그대로 느낀다.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2월 13일

집에서 오후 카페 농땡이를 즐기고 있던 와중, 친구가 결혼 준비가 빡세다는 이야기 거리를 한아름 들고 동네에 놀러온다. 점심도 못먹었는지 뭘 저녁으로 먹어야 할지 나도 모르는 음식점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근처의 라멘집으로 향해 저녁을 먹고, 코인노래방을 찾아 한곡조 부른다. 코인노래방을 부르고 나서야 라멘집에서 가방을 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라멘집을 다시 찾아 매우 부끄러워 하며 가방을 되찾는다.

친구와 파 하고 저녁을 드신 부모님이 카페에 있다 하여 카페로 찾아갔다. 내 몫의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키오스크에 카드가 그대로 꽂혀있었다며 점원분이 카드를 돌려주셨다.

오늘 벌써 두번이나. 뭔가 정신이 나가있는 듯 하다.

2월 16일

어제는 몸이 석연치 않아 집에 있던 자가진단 키트를 사용해 음성임을 확인하고 출근을 했다. 몸이 점차 나빠지던 그날 저녁에, 토요일에 만났던 친구가 자가키트상 양성이 나왔다고 하여 불길함이 점차 쌓였다.

오늘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늘은 휴가를 내었다가, 오후에 이비인후과에 들러 신속항원을 했는데, 음성을 기대했건만 양성이란다. 그러니까, 대충 나는 거의 80% 이상의 확률로 코로나 환자가 되었다. 참 의아하게도, 내가 잠재적인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고, 이렇게 양성 판정을 받는 사람들이 계속 병원에 드나들텐데,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리 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았고, 약국에 들러 약을 타가라고 내게 처방전도 주었다. 정말로 이제는 알아서 조심해야 되는가 보다 싶다.

집과 회사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 이상이 있을시 빠른 조치를 취해달라 전했다. 회사에서 붙어다니는 사람 없이 지낸 것이 이럴때는 득이 되는듯 하지만, 또 언제 어떻게 환자가 발생할지는 모를 일이다. 혹시 내가 숙주좀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다.

2월 18일

어제 받았던 PCR 검사의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양성이었다. 집에 23일까지 격리되어있어야 한다. 집에서 잘 해먹지도 않는 편이라 뭘먹어야 할지도 고민스럽다. 피자를 시킴으로써 벌써 이번주만 세번째 배달음식을 먹는다.

첫 증상이었던 몸살은 그래도 지나가는 듯 했으나 문제는 인후통이다. 아침에 일어날 적 마다 목의 따가운 느낌이 매우 끔찍하다.

2월 22일

이직을 제안해주신 회사의 전 선배는, 회사가 면접에 앞서서 연봉수준을 먼저 맞출 예정이라며, 연봉을 알려달라고 했다. 마침 지금 소속한 회사와의 연봉계약이 오늘 딱 마치게 되었으므로, 새로 변경된 연봉을 전 선배를 통해 전달하였다.

제안받은 새로운 회사의 일부터도 현재의 일과는 많이 달라서 이직이 고민스러운데, 이직을 위해 진행되는 프로세스도 뭔가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면접에 앞서서 뭔가 대리인을 통해 연봉 협상부터 진행되는 듯하여 매우 어색하다.

연봉에 관해 말씀드린지 얼마 되지 않아 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역시 아무래도 새롭게 일을 바꾸어서 들어오는 사람에게 현직자와 같은 수준의 연봉을 제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던것 같다. 일을 바꾸는 부담감에 더하여 연봉의 변경까지 감수하기는 쉽지 않아 고사의 뜻을 선배에게 전했다.

이직을 제안해준 선배의 회사를 겉핥기로 살펴본 바, 회사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하는 내 미래가 어떤지 그려지지 않았다. 제안을 받아 면접을 보겠다고 답했던 이래로 갈등은 계속되었고. 결국 갈등은 의외로 쉽게 현실적인 조건 앞에서 사그러들었다.

2월 23일

어느덧 격리 마지막날이 되었다. 집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으나, 막상 아무데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것은 꽤 답답한 일이었다. 그래도 처방받은 약과 배달음식을 먹으며 몸은 꽤 많이 호전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몸에서 다 박멸된 것일지도 모른다.

1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며 모든 루틴은 다시 또 망가졌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영양가 있는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태한 나는 또 그러지 못했다. 내일 부터 다시 새로운 관성을 쌓아야만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2월 26일

동생이 모처럼 전화하여 주말에 가족과 저녁이나 먹자 하였다. 코로나에 걸렸다가 격리도 이제 해제되었으나, 오늘 만나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다들 좋아할만한 도넛을 한가득 사갖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마침 임플란트 치료도 막바지 단계라, 아랫니를 심으셨다. 새로 심은 이가 어색하지만 드시는데 이제 크게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평소에 크게 내색하지 않으셨으나, 아무래도 평소에 못드셨던 음식들이 아쉽기는 하셨던 것 같다.

오늘은 엄마가 생고기도 사오셨다. 치맛살, 등심, 항정살로 종류도 다양하다. 구워지는 족족 아버지도 적극적으로 집어 드셨다. 장군이도 밥그릇에 간식이 두둑하다. 오늘은 모두가 죄책감도 부담감도 없이 음식을 즐긴다. 즐거운 생일 주간.

2월 27일

간만에 연락해온 친구가 자신의 아픔을 고백했다. 나는 함부로 위로 할 수 없었다. 그저 듣는것 말고는 할수 있는게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

나는 인연을 맺고자 타인에게 무해함을 증명하면서 온갖 눈치, 온갖 예의 범절을 익혀야 했는데, 누군가는 사랑을 핑계로 패악질을 부려도 길게 인연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불공평함을 느낀다.

자꾸 불특정한 누군가가 그립다. 내가 운동을 하던지, 코로나로 집에 갖혀있다가 나오던지 궁금하고 관심있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항상 외통수에 걸려있다. 내가 관심을 갖고자 하면 타인은 불쾌해 하며 떠나버리고, 내게는 관심을 가져줄만한 매력이나 이벤트나 이슈 같은 것이 없었다.

3월

3월 1일

이미 주말에 가족들과 그럴듯한 생일 주간을 보냈다. 오늘은 조용히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드라이브를 할 생각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휴일만 되면 잠이 몰려와 오전시간을 삭제한다. 할일이 많지 않음에도 해가 떠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나직이 한탄한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친구 둘이 영상통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전해왔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마치 인터넷 방송인이 도네이션에 리액션으로 답 하듯이 몸짓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두 친구는 혹시 미술관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 넌지시 제안 해왔지만, 거리가 멀어 시간적으로 애매하다는 생각과 내가 오늘 끼어들기에는 애매 하겠다는 생각이 더해져 제안을 고사했다.

중국집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릴적에 오늘 밥먹고 할일을 머릿속에 그려봤는데, 잘 그려지지 않았다. 앞서 받았던 제안을 거절했던것이 조금 후회스러웠다. 그 친구 둘이 혹시 이번을 끝으로 내게 다시 그런 제안을 안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메신저로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앞선 제안을 거절한게 후회됐다는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했지만, 그것이 내 모습을 더 구차하게 만드는 것만 같아 생각을 접는다.

앞서 인사해준 친구 중 하나가 메신저를 통해서도 선물을 전했다. 홍삼영양제 세트였다. 며칠전 이 친구와 대화할 적에, 홍삼이 몸에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친구가 느끼고 있는 애환의 무게와, 그 사이에 전달된 내 말의 무게가 어느정도 였는지를 생각했다.

3월 4일

이틀 전 퇴근시간을 앞두고 은행으로 부터 전화가 와서는, 내가 전세로 들어간 주택의 현황에 대해 물어왔다. 나는 작년에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읊어주고 통화를 마쳤는데, 몇분 지나서 다시 전화가 오더니, 이렇게 되면 전세계약이 종료된 것이기 때문에 전세대출을 상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당장에 상환할 수 없으며 담보 대출 등을 통해 상환할 예정이라고 전했고, 은행측에서는 필요한 서류 목록을 문자로 전해왔다.

집에 돌아와 은행의 대출상품 설명을 읽어보니, 정말로 전세계약이 모종의 이유로 종료되면 대출도 상환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유없는 독촉은 아니었던 셈이었다. 아무래도 은행측에서 전세대출의 현황같은것을 분기나 반기별로 조사하면서 전화를 하면서 이런일이 벌어지게 된 듯 했다.

몇가지 서류를 구비하고 오전 반차를 내어 은행을 찾았다. 막상 은행에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던것 만치 급한일은 아니었고, 내가 가진 부동산의 카테고리가 애매해서 담보대출의 한도가 크게 나오지 않았는데, 신용대출이 이율과 한도가 담보대출보다 좋아서 써먹을만 했다. 결국 지금 가진 돈과 신용대출을 합쳐서 전세대출을 상환했다. 은행에 왔는데도 은행원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신용대출을 실행할 것을 권한 것이 대출 상환 진행과 별개로 신기했다. 더 이상 오프라인 은행업무를 스마트폰 앱이 보조해주는 형태가 아니라, 오프라인 은행업무가 할 수 있는 일과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동등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이 일을 처리하는데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오전 반차를 신청했던것을 조금 후회하면서 털레털레 집으로 걸어왔다.

3월 5일

생일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전해주신 분들의 안무 물음에, 평소에는 일상이 너무도 시시해 딱히 전할만한 안부가 없었는데, 며칠전 걸렸던 코로나가 사소하나마 대화를 열어볼 만한 해프닝이 되어버려서, 생각했던 것보다도 조금 더 길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있었다.

오늘은 인사와 함께 보내주신 선물들이 도착하여 답장 인사를 전했다. 인사를 메신저로 전해드릴 때에는 또 붙일만한 말이 크게 떠오르지 않아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다. 사람들과 대화 할 때마다 외통수에 빠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내 일상을 타인은 궁금해하지 않고, 타인의 일상은 궁금해하면 그걸 왜 네가 궁금해하냐며 불쾌해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타인들과 교점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평행선을 긋는 것 뿐이었다.

3월 6일

날씨가 연이어 좋은 주말인데, 계속 늦잠을자서 괜한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어제 마음먹었던 대로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를 하나 보기로 한다. 게티이미지 회사가 가지고 있는 사진들을 전시하는 행사였다.

정오가 조금 지나 전시를 보러 들어갈 즘 선물을 했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생일에 영상통화를 전했던 그 친구였다. 그 날에 만나지 못했던 것이 떠올라 저녁을 먹자고 제안해봤는데, 흔쾌히 수락받았다.

사진전이다 보니 사진을 통해 미국과 영국 등 서양사를 관통하는 사진들이 주로 전시되었다. 구도, 색감, 피사체가 멋있는 사진들도 있기는 했지만, 주로 그 사진이 말해주는 메세지, 그 사진의 앞뒤 서사가 어떤지가 중요한 경우가 많았다. 역사, 특히 서양사에 밝지 못했던 나는 사진이 말해주는 디테일을 모두 잡아내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재밌고 생각해 볼만한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 영양가를 다 소화하지 못한듯 하여 전시가 끝나고 못내 아쉽다.

전시를 마치고 친구에게 연락하는데, 연락이 드문드문하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듯한 사진을 보내준 뒤, 연락을 주지 않았다. 그 친구와 친한 다른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아 오늘의 밥약속을 공유하고, 각자의 장소에서 이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사이에, 압구정의 현대모터스튜디오에 들러서 새로운 차들을 구경했으나, 별로 구경할만한 흥미로운 차는 없었다. 조금 걸어가서 쉑쉑버거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맞은 편의 스타벅스에서 농땡이를 피웠다. 계속 친구로 부터 연락이 되지 않아, 다른 친구에게 '연락이 7시 반까지 없다면 다음에 먹기로 하자'고 전했다. 연락이 계속 없다보니 혹시 무슨일이 있는가 싶어서 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았는데, 방금 병원에서 나왔으며 약국에 들르고 그 친구를 데리러 가겠다 하였다. 연락이 닿아서 안도했다. 압구정에서 그리 멀지않은 신사역 근처의 갈비집에서 만나 드디어 저녁을 먹기로 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봤던 전시에 대해서 말을 전했다. 매번 감상들을 개인적인 공간에 글로만 정리해봤지, 이렇게 말로 다른 사람에게 감상을 말하는게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라는걸 깨달았으나, 호들갑을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에 걸렸던 일, 키우고 있는 강아지와 고양이에 대한 생각, 아키텍쳐 과정을 준비하는 친구, 증오를 하면서도 생각나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3월 9일

미리 사전투표를 했기에 이번 선거일은 그대로 휴일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회사 헬스장을 쓰고 돌아온다. 날씨가 꽤나 따스해져서 곧 자전거 시즌을 열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3월 13일

부모님과 관련된 일에는 적극 나서는 편이지만, 할아버지와 관련된 행사에는 부모님이 나서시기에 내가 잘 참여하지 않는 편이었으나, 이번 주말에는 시간을 내어 직접 엄마와 아버지의 손을 거들어 드리기로 해본다.

아버지는 유년기를 거의 한 곳에서 보내셨었고, 그 한곳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기에, '고향친구' 분들이 아직도 고향에 모이시는데, 이번 주말에 아버지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친구분들도 들으셨는지, 자리에서 한잔 하자며 부름을 받으셨다. 다음날에는 증조할아버지의 제사로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산소에서 절을 올린다. 3대가 함께 절을 올리는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개발되어 사라져버린 옛 동네를 천천히 걷기도 했다.

3월 17일

이번 한주동안은 팀장이 코로나에 걸렸으므로 높으신 분들과 만나는 회의는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별로 중요한 말을 나눌 일도 없는데도 내가 팀장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자리가 불편하기만 하다. 중간에 실장님이 나를 찾아서는 팀장에게 물어볼만한 업무들을 물어보았고, 나는 제대로된 답을 할 수 없었다.

3월 20일

사람들이 나와 친하게 지내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을까.

3월 27일

코드 하나가 미치도록 안풀린다. 토요일도 투자하고 일요일도 투자했는데 안풀린다. 자전거 타고 와서도 안풀리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안풀린다. 화가나서 잠이 안온다.

4월

4월 4일

친구가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부탁했다. 조금 급하게. 그는 급하게 여행을 계획했다고 했다. 그가 겪고 있는 상황을 납득할 수 있었기에, 조금 걱정은 있었지만, 맡아주기로 했다. 사람을 좋아해 무릎에 얼굴을 비비는 이 고양이는, 앞으로 8일간 내 집에서 지낸다. 점심을 먹으면서, 친구의 퇴직후 이직 계획, 한달 정도의 휴직,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해야 하는 일, 건강문제 등을 이야기 했다.

퇴근을 하는데 집에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은 매우 낯설다. 운동의 페이스는 조금 더 오르고 퇴근길 발걸음은 빨라졌다. 집에 돌아오니 까미는 잘 지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현관앞에 앉아 문을 바라보고는 했다. 제 집사가 그립기는 한 모양이었다. 나는 까미의 행동에 잠깐 어쩔줄 몰랐지만, 까미가 나를 적대하지는 않는듯 하여 이내 마음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4월 5일

고양이 까미의 집사 직무대행을 하면서 알게 된 것.

1. 고양이의 응가 냄새는 꽤 지독해서 배변하면 바로 치워줘야만 한다.

2. 고양이의 털은 약간 억세서 요즘 같은 계절에 정전기가 잘 든다. 그래서 까미 자신조차도 가끔 깜짝 놀라고, 나도 괜히 쇠붙이를 만지다가 깜짝깜짝 놀란다.

3. 고양이는 모래를 이용해 적당하게 화장실을 잘 만들어주면 처음 온 집이라고 하더라도 화장실에서 용변을 잘 해결한다.

4. 고양이는 사막에서 살던 습성 때문에 물을 잘 먹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주는 사료는 대부분 뻣뻣하게 마른 사료라서, 은근히 물을 주는데 신경을 잘 써야 한다.

5. 고양이는 자신의 체취를 묻히고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 얼굴을 부빈다.

6. 고양이는 츄르를 잘 먹는다.

4월 7일

나를 입문 시켜준 자전거를 중고거래를 통해 떠나보냈다. 매입했을 때 70만원, 판매가는 50만원. 책정되는 시세에 비하면 조금 싸게 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전거와 함께 1년을 잘 보내었기에 크게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전거를 떠나보내고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다가 자전거 사진들을 보았는데, 자전거를 탔던 그 때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유독 투박했던 그 디자인이 다시금 멋져보였다.

4월 8일

결혼을 앞둔 동갑인 후배가 오랜만에 연락을 했고, 자리를 열어 나를 포함한 동기 셋, 후배가 모여 사당역 근처에서 술을 마신다. 물론 나는 차를 가지고 왔기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 자리는 숙성회집에서 열렸는데, 첫 메뉴로 선택했던 모듬회가 모두의 입맛에 잘 맞고, 그 맛이 고소해 좋은 기분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그 중 풍채가 있는 한 친구는 기분이 많이 좋아지고, 그 기분에 비례해 술이 많이 들어가고, 그에 따라 점차 목소리가 커져갔다.

자리는 양꼬치 집에서 이어졌다. 친구의 목소리 크기는 정점에 이르렀다. 대화도 잡음이 섞이면서 주제의식을 잃어버렸다. 그 때에 맞추어 자리가 파했고, 친구들을 집에 바래다 주는 것은 내 몫이 되었다. 친구들을 차에 태우니 차 안은 금세 지옥이 되었다. 창문을 열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아이스크림을 사올 테니 차를 세우라 조르고, 이 길은 내가 아는 길이니 내 말을 따르라 명령한다. 너도 나도 나서서 무례를 경연하니 운전이 몇배는 힘들다. 장한평, 산본과 안산을 차례로 들러 무례들을 쫓아내고, 겨우 나만의 운전을 잠시 즐기며 집에 도착한다.

까미가 너무 오랫동안 집에 혼자 있었던것 같아 부채의식이 쌓였다. 급한대로 간식을 주며 까미의 마음과 내 마음을 달래본다.

4월 13일

까미를 맡으며 새롭게 알게된 사실, 이어서.

1. 일견 고양이는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동물 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인간이 곁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까미는 집에서 지낸지 일주일이 지난 무렵부터는 아침 출근을 위해 씻고 로션을 바를적에 앞발을 뻗어 내 팔을 끌어안고 손등을 핥는다. 이제는 떠난지 오래된 꼬맹이 생각이 나서 조금 서글퍼진다. 아침에 문을 나설적에 마음을 아프게 한다.

2. 고양이는 은근히 물 마시는 취향이 까다롭다. 처음 맡겼던 집사가 두고간 물그릇의 물은 잘 먹지 않는 것 같아서 집에 있는 얇은 물그릇으로 바꾸어서 물을 주었더니 많이는 아니지만 곧잘 마셨다. 까미는 얇은 물그릇과 수돗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인다.

3. 맡겼던 집사가 두고간 물건 중에는 끝에 털이 달린 막대기가 있는데, 이것을 그냥 흔들어서는 까미의 주의를 끌수 없다. 공중에서 흔들면 전혀 반응하지 않으며, 마치 쥐가 움직이듯이 까미 눈 앞의 바닥에서 진심으로 흔들어야 앞발을 뻗어 사냥하는 시늉을 한다. 까미는 나이 때문인지 5분이상 사냥놀이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찾아본 바로는, 사냥놀이를 마친 다음에는 간식을 줘서 격려를 하는 것이 좋다더라.

4. 가끔 호다닥 거리며 재빠르게 침대위로 뛰어오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사냥 본능에 따른 것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거를 집사들의 세계에서는 '우다다' 한다고 하더라. 표현이 귀엽다.

5. 까미는 가끔 질감이 거친 옷감이나 러그를 손톱으로 긁거나 내 방의 구석구석을 요리조리 뛰어넘어다니기도 하지만, 절대 나를 다치게 하거나,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옷감이나 물건의 표면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다. 까미는 성숙하다.

4월 15일

고양이를 맡겼던 친구가 오늘은 되찾으러 다시 온다. 그 사이에 집을 서울로 옮겼기에, 친구가 오는길은 먼 길이 되었다. 오늘 찾아오기 전, 두번의 일정 번복이 있었기에, 심적으로 조금 부담이 있었다. 두번째 번복의사를 알릴적에는 나도 그 부담감과 서운함을 친구에게 글로 담아 전하기도 했다. 오는 길이라고 하기에, 그때 썼던 글이 독촉을 하는 듯한 의미로 느껴져셔 약간의 미안함은 있었다.

저녁으로 동네의 중국집을 먹으며 근황이야기를 했다. 이직과 이사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기에, 친구의 삶의 밀도는 높을대로 높아져 있었고, 주변은 커녕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는 항상 멈추어 서버릴지도 모르는 자신의 삶이 무서워 언제나 자신의 삶에 관성모멘트를 부여하고 위태로운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세운다. 이 친구의 모습을 보고 예전에는 경외와 존경을 담아 그에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넘어 연민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까미는 다시 이동장에 담기고, 집에서 지냈을 때 보다는 큰 소리로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것이 내게 보내는 인사였으면 했다.

친구를 보내고 돌아온 집 안은 아직 까미의 흔적이 많이 있었다. 그것을 치워내고 다시 집을 정리하는데 두시간 정도를 썼다. 청소를 마치고 의자를 보는데, 청소하려고 벗어두었던 검은색 티셔츠가 아무렇게 걸려있었다. 그것을 보고 까미가 있는 듯 느껴져 잠시 흠칫했다. 까미가 있었다는 사실이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을 것이다.

4월 16일

포르쉐에서 자동차를 주제로 동대문에 전시를 하나 열었다. 대충 서울 구경하고 점심 먹고 본가에 들를 생각으로 전시를 예매했다.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결혼을 앞둔 한 친구가 동대문에 들르겠노라 말했다. 오는거야 말리지 않겠다마는 전시도 안볼 터인데 별다른 용건없이 서울을…?

주말이지만 부지런을 떨어 DDP에 일찌감치 차를 세우고 전시를 보러간다. 전시는 포르쉐의 모터스포츠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차들을 시간순으로 배열해서 자신들의 모터스포츠 히스토리를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그 역사는 356으로 시작해 911로 꽃피우고, 919로 현재에 이르면서 찬란한 성공의 역사가 되었다. 성공만큼의 숱한 실패의 역사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포르쉐가 주최한 전시라 그런지 그런 재미있는 실패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포르쉐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상징적인 차들이 전시되어서 매우 눈이 즐거웠다. '이게 한국에 왔어? 이걸 어떻게 독일에서 데리고 왔지?' 싶은 차들이 있었다. 카레라 GT의 비율과 디테일은 2000대에 만들어졌다고 믿기 힘들 정도였고, 그 뒤를 이어 10년후 만들어진 918에서는 카레라 GT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면서도 당대 포르쉐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모두 녹여내어 자신들의 가치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전시가 끝나는 때에 맞추어 친구도 도착했다. 근처 쉑쉑버거에서 점심을 먹고 DDP 주변을 흐느적대듯이 거닐었는데, 좋은 날씨와 행인들과 구불거리는 도로를 눈에 담으며 평온한 주말을 온몸으로 느낀다.

용건없이 들른 서울을 그냥 떠나기 아쉬웠는지, 친구는 용산구청에 차를 세우고 이태원을 가보자고 제안했다. 흔쾌히 수락해 용산구청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이 주차장은 10시에 문을 닫아 클러버들이 잘 찾지 않는 주차장이라 주말에도 수월하게 차를 세울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진실이었다. 앞으로도 서울에 용건이 있을 때 애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결혼을 위해 새로 집을 마련한 친구는 평소 생각해두었던 축음기를 새 집에다가 세워두었다. 그래서 바이닐을 사다가 듣는 취미를 새로 삼을 수 있었는데, 이태원에는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레코드 가게가 있어서 그곳에 들러 음반을 고르기로 한다. 나는 새집마련과 결혼을 축하할 용건으로, 친구가 고른 바이닐 하나를 사주었다. 친구가 감사를 표한다.

이태원을 걷기만 해도 어느덧 시간이 저녁이 되어, 이제 친구 집이 있는 청라로 향한다. 청라로 가는 길은 복잡하지 않아서 서울에서도 금방 갈수 있어보였지만, 마지막 고속화 도로에서 빠져나가는 톨게이트가 불합리한 구조로 되어있어 의외로 정체가 있다.

인테리어까지 마친 친구의 집은 화사하고 깔끔하다. 마냥 좋다는것 말고는 크게 드는 생각이 없었다. 친구는 아직 정돈되지 않아 분주함이 서려있는 집 풍경을 설명내지는 자랑했다. 집을 꾸미느라 힘들었다는 점을 자꾸 어필하는데 사실 그렇게 공감되지는 않았다. 힘들면… 좀 쉽고 단순하게 꾸미면 되는것 아니었던가…? 아니면 조금 쉬었다가 천천히 꾸며도 되는것 아니었던가… 라고생각했다. 도착 후 잠시 쉬었다가 커튼치는 것만 도와주었는데도 시간은 어느덧 아홉시다. 배달 음식을시켜 저녁을 먹었더니 어느덧 열한시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친구는 바쁜 가운데 찾아온 여유로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조금은 초조한듯 해 보였다.

저녁까지 다 먹고 동네를 조금 거닐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조용하면서도 정돈된 동네의 풍경과 서늘한 공기가 괜히 기분이 좋다. 이 친구는 이제 이 동네에서 자리잡으면서, 자취하며 지냈던 지난 시간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주차장에서 인사를 건네며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하기로 한다.

4월 21일

거리두기 조치가 끝나니 회사에서는 신났다고 워크숍이니 회식이니 체육대회니 하며 날짜를 잡으려 한다. 소식을 듣고 더욱 피로감을 느꼈다. 팀도 예외가 아니어서 오늘이 바로 그 회식날이 되었다. 다들 벼르고 벼르던 회식날이라며 좋아라 한다. 속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삼겹살도 가격이 많이 올라 이제는 소고기와 비교해도 맛으로나 가격으로나 손색이 없다. 이제는 '나는 돼지고기를 소고기와 동격으로 놓고 좋아한다' 라는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기를 먹는 동안에도 회사이야기가 이어졌다. 회사에 찾아오는 변화와, 팀원들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우리는 아무래도 '회사' 말고 공통 분모를 그리 많이 가지고 있는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나를 소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팀에서 나 빼고는 사람들이 모일때 그렇게 마나를 소비하지 않는 모양이다.

고깃집에서의 1차 회식이 끝나고 나는 집에 돌아가겠노라 말했다. 내가 팀에서 나이가 꽤 있는 편이라 이런 거절이 먹혔지, 그게 아니었다면 또 거절이 거절되며 남은 마나를 모두 소모했을 것이다. 거절 할 적에 사람들이 나를 한번 붙잡았는데, 그것이 예의에 의한 것인지 진심이었던건지 알길이 없다. 어느쪽이든 내 의사가 바뀌지는 않았겠으나, 이제는 저 제안의 의미를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나는 그나마도 별로 없었던 사회성을 이제 모두 소모해버리고, 독야청청할 일만 남아있는 가보다.

4월 22일

친구가 자신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탁할 수 없게 되었다며 미안함을 전했다. 처음 제안 했을 때 부터 부탁할 수 없을 가능성에 대해 알려 주었기 때문에, 별로 미안할 일은 아니었다. 설령 그러지 아니하고 번복했다 하더라도 내가 아쉬워 할 수도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다만 뭔가 삶의 흐름속에서 해볼만한 도전이라는 생각을 했었으나 그것이 사라진 것이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아쉽다. 이것 말고도 다른 곳에서 찾아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내가 찾을 의지와 의욕이 있느냐가 문제다. 처음 축가를 친구가 제안 했을 때에도 내 스스로 하겠다는 것 보다는 반은 이 친구가 등떠밀어주기를 바랬던 것이었으니까.

4월 24일

이래저래 때가 맞지 않아 3주만에 본가에 다녀왔다. 꽤 오랜만에 갔다 오는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아버지와 엄마, 장군이 모두 그대로 있다. 다만 장군이가 사용하는 약의 종류가 한종류 늘어서 마음이 조금 아프다. 그래도 장군이는 어디든 잘 걸어다니고, 엄마나 아버지가 현관문을 나서려 준비할 적에 같이 나가자고 보채는것도 여전하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3주간 집에 가지 않았던 사이 엄마의 생일이 다가왔다. 엄마가 쓰던 아이패드가 꽤 오래되어 새로운것을 사다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해 샵에 들러 하나 사온다. 가장 저렴한 모델이지만, 엄마에게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저렴한 모델인데도 가격이 좀 된다. 작은 족발을 사서 같이 가니 아버지도 좋아하신다. 이내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어 한잔 드신다. 3주동안 이야기가 꽤 쌓여서 음식이 많지 않아도 식탁이 풍성하다.

4월 27일

그란폰도 일정들이 공개되고, 일부는 이미 접수를 마친 상태다. 설악그란폰도가 아직 기회가 있어보여, 아침에 입금공지가 올라오자 마자 바로 입금을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저녁까지 기다리니, 접수가 성립했다는 연락이 돌아왔다. 대회는 6월 17일. 100km정도 길이에, 누적상승고도는 1500m가 되는 메디오폰도 코스다. 여태 누적상승고도 1000m 넘는 코스를 자전거로 가본적이 없었기에, 두달 남짓의 시간동안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함은 분명해보인다.

5월

5월 1일

지난번 이수역 근처에서 술을 마셨던 친구의 결혼식 날이다. 산본에서 술버릇이 안좋았던 친구를 데리고 결혼식에 향한다. 결혼식은 별다른 오글거리는 연출 없이, 그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나도 잘 알고 있는 동아리 후배가 결혼식 사회를 본 것이 이채로웠다.

무엇보다, 결혼한 그 후배는 동아리의 바로 아래학번 후배였기 때문에, 반가운 얼굴도 결혼식 장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2학년때 동아리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그 후배들과 대학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결혼식 뒷풀이 티타임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차편이 불편한 친구들을 내 차에 태우고 모처럼 서울 드라이브를 나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두시간이 넘었으나, 그 시간이 심심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반가움의 그림자가 외로움이 되어 짙게 드리운다.

5월 7일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 평소에 똑같이 타던 자전거 코스였으나 계측기록이 꽤 나빠져 있었다. 심폐능력에 비해 근력이 많이 떨어져서, 평지에서 역풍을 쉽게 이겨낼 수 없었다. 내가 제대로 운동을 하고 있는것일까 하는 의구심에, 메디오폰도를 완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힘껏 페달을 밟아도 역풍에 밀려 속도를 못내고 있는 모습이, 힘껏 운동을 해도 내 능력의 한계로 근력, 체지방율 어느것도 발전을 이뤄내지 못하는 모습과 겹쳐 운동의 즐거움을 앗아간다.

5월 11일

문득 아마존에 다니는 친구가 아마존 발표를 위한 영상을 촬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게 생각이 나서, 그 영상을 보고 친구에게 연락했다. 많이 절었으나 봐줘서 고맙다는 말이 돌아왔다. 요즘은 대화를 나눠도 좀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그 친구에게는 며칠전, 부천 본가에서 돌아가는길에 들러 커피를 하지 않겠느냐 연락했으나, 답은 없었고, 다음날에 요즘 카톡을 잘 안본다고 해명했다.

그 친구는 며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이 타던 차를 중고차로 팔겠다고 내게 말해주었으나, 이후에 내가 신차를 살 것이냐는 질문을 해왔을 때에는 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갖는 관심을 불쾌해 하고,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

또다시 느낀다. 내가 눈치가 없었다.

5월 13일

점심 회사 샐러드가 품절되어 밖으로 나가 밥을 먹으려던 중에 퇴사했던 옆팀의 동료분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서 재택근무를 하며 행복한 회사생활을 하고 계셨다. 예전 팀동료분들과 점심약속이 있어 들렀다 하셨는데, 그분들이 회사앞에 나오시면서 내게 점심을 같이먹자 제안해주셔서 감사히도 같이 먹을 수 있었다.

회사 근처의 수제 피자집에서 여섯명이 모여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눴다. 회사에서 오랜만에 사람들과 대화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감사히도 팀장님께서 점심값을 부담하였다. 언젠가 보답을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부채의식이 마음위에 한겹 포개어진다.

5월 18일

자전거 실력이 좀체 잘 늘지 않아 조바심이 쌓인다. 대회를 앞두고 피팅이나 로라방을 등록하기에는 예약이 꽉차거나 너무 먼 곳에 있는 등 나의 현실적 조건에 맞지가 않다.

중고나라에 올라와있는 여러가지 자전거 로라들이 나를 현혹시킨다. 바퀴를 매번 탈착하는게 불편하다 싶으면 고정로라가 좋다고 하는데, 고정로라를 쓰면 타이어에서 먼지가 발생해 집 안에서 쓰기 그렇게 좋지 않다고들 하고, 평로라는 집의 공간이 나오지를 않아 조금은 위험한데, 밸런스 운동을 하기 좋고 저렴하고, 스마트로라는 바퀴를 탈착하기 불편하고 비싸긴 하지만 운동능력을 계측하고 개선하는데 제일 좋아보이고 무엇보다 즈위프트에 친화적이다.

그래서 고정로라, 평로라, 스마트로라가 위,촉,오를 이루며 무한한 나선을 그리며 군웅할거 하고 있던 와중에, 내가 스마트로라의 가격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50만원에, 이태리제 스마트로라 중고가 매물로 올라왔다. 스마트 로라를 잘 쓸것인지 못쓸것인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 고민을 오래하는 사이에 매물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그만 판매자에게 문자를 보내고 한달음에 달려가고 말았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하남으로 달려가 묵직한 물건을 손에 넣는다. 돌아오면서 내가 자전거를 어떤식으로 즐기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는데, 단순히 '수레를 굴리는 것이 좋고 풍경을 구경하기 좋아서' 라는 처음의 목적과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5월 19일

클릿슈즈, 편한복장과 자전거로 출근을 해본다. 클릿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탄천 자전거 도로에서 빠져나오는 통로 언덕에서 클빠링을 했던것을 빼면 괜찮았다.

복장도 운동하기에 괜찮았기에, 오늘은 퇴근을 반대방향으로 해본다. 잠실 한강공원에 앉아 강변을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어릴적에 상자로 사다가 하나씩 까먹던 엑셀런트가 이제는 콘으로도 나온다. 맛이 나쁘지 않다.

다시 용인 방향으로 달리는 길은 매우 힘들었다. 어제 웨이트 때문이었는지, 가방을 메고 있어서 그랬는지.

5월 21일

플레이스테이션을 수령하러 들렀던 용산은 내가 알고 있던 예전의 용산 느낌이 잘 안났다.

어릴적엔 용산에 갈일이 생기면, 뭔가를 사러가는 일이 아니었는데도, 좋은 컴퓨터 부품 하나쯤은 구경하거나 사올것만 같은 별천지 같아서, 지나가기만 해도 잠깐 들러 구경하고 싶어지고, 신기한 부품 하나만 봐도 아는척 해보고 싶어질 만큼 설레는 장소였다. 특히, 고등학생때 용돈을 모아 컴퓨터를 한대 조립하러 용산에 가면, 그 설레임은 정말 형언하기가 어려웠었다.

그렇게 부품을 발로 뛰며 구해다녔던 선인상가쪽 근처에 주차하고 상가를 둘러보니 모양새가 뭔가 흉흉하다. 상가가 정비되어 전자랜드와 새로운 터미널 상가 건물이 생기기는 했지만, 내 마음의 궤적과 시대흐름의 궤적과 용산의 변화 궤적은 더이상 교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모든 곳을 구경한 것은 아니었으나, 선인상가는 거의 공단이 되어버린 듯 하다.

가게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수령하고, 터미널 상가의 식당가에서 돈까스를 하나 시켜다 먹고 본가로 향한다.

5월 25일

플레이스테이션의 구성을 대충 마치고 그란투리스모 7을 해본다.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의 그란투리스모 시리즈와 엑스박스 진영의 포르자 모터스포츠는, 똑같이 서킷 레이싱과 모터스포츠를 다루는 게임이지만, 지향하는 바가 꽤 많이 다르다.

포르자 모터스포츠는 사용자에게 최소한의 정보만을 부여하고 바로 레이싱 경기에 플레이어를 던져 넣는다. 사용자가 바로 체험하고 반복 숙달하여 레이싱 기술을 터득하는 것을 바란다. 레이싱 테크닉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세부적인 난이도 설정과 되감기 기능을 통해 쉽게 반복 숙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란 투리스모는 조금 더 자상한 편이라, 레이싱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별도의 컨텐츠를 구성해놓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사용자를 독려한다. 사용자에게 새로운 자동차가 나타날 때마다 스크립트를 통해 소개한다. 자동차 브랜드별로 역사를 볼 수 있는 메뉴를 구성해놓고, 이를 시간 순으로 소개한다.

자동차 좋아하는 오타쿠 친구가 자상하게 자동차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만 같다. 단순히 빠르게 달리고 기록을 내는 방법 뿐 아니라, 자동차의 디자인, 역사, 사용목적, 실용성, 문화까지도 모두 아우르고 세심하게 설명한다.

이 게임 꽤 재밌다.

5월 29일

작년에 단 한번 100k를 자전거로 뛰어본 적이 있었다. 대회 연습을 위해 오늘 한번 해봤다. 바람을 이겨내는 연습, 체력을 안배하는 연습, 업힐 연습이 아직 더 필요한 것 같다. 몸을 조금 더 끌어올려야 한다.

6월

6월 1일

6월 3일

할아버지 생신에 찾아뵙기 전에, 신발을 선물해드릴 마음을 먹었다. 아무래도 휘발성이 있는 용돈 보다는 의미가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께 발사이즈를 여쭤보았는데, 집에 신발이 많아 선물 필요없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265라고 답하셨다. 퇴근하여 신발매장에 들러서, 가장 푹신하고 생김새가 유난 스럽지 않은 녀석을 하나 골라 집으로 향한다.

6월 5일

이번 할아버지 생신을 맞아 모처럼 온가족이 다 모였다. 동생도 시간을 내어 조치원에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잘 지내시는지 안부도 묻고, 생신을 이유로 준비한 선물도 전해드리고, 밥도 같이 먹는다.

할아버지가 만족을 하실지 안하실지 속내를 크게 드러내지 않으신다. 할아버지는 평소 신으시던 신발이 이미 있기는 하셨지만, 나는 내가 선물해드린 신발로 편하게 막 신고다니시기를 바란다. 다음에 할아버지 찾아뵐 적에 신발이 깨끗하면 내가 삐져있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6월 11일

친구의 집들이 날이라 느지막히 일어나 짐을 꾸린다. 스티어링 컨트롤러와 엑스박스 게임기를 챙기기로 했었다. 막상 가져가려니 짐이 꽤 무거와 가져가지 말까 고민스러워서 단톡방에 짐이 무겁다는 글을 썼는데, 재밌겠다는 친구들의 반응이 있어서 이제와서 안가져 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찾아본 것이었지만, 집들이 때가 되면 이걸 가져가겠다고 쓴 게 올해 1월이었기에, 이제와서 안가져갈 수는 없었다. 별 수 없이 짐을 챙긴다.

친하게 지내던 08학번 6인이 모처럼 완전체가 모였다. 나는 양재에 사는 친구 한명을 데리고 4시에 도착, 아버지가 되어 얼굴보기 힘들어진 친구도 이어서 도착하여, 아직 저녁도 안되었는데 저녁식사를 벌써부터 해치운다. 치킨과 족발과 막국수가 있었는데, 없었다.

새로운 집, 새로운 TV에 내 게임기를 연결해서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겼다. 내가 가져온것은 한번에 한사람만 할수 있었고,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장르인 레이싱 게임만 즐길 수 있었기에 걱정이 앞섰는데, 누가 운전하느냐를 가리지 않고 친구들이 재밌게 즐긴다. 큼지막한 화면과 괜찮은 그래픽, 그리고 처참한 운전실력과 친구들의 조롱이 게임의 재미를 더한다.

이어서 오늘 집들이의 주인공이자 곧 결혼할 친구의 여자친구분이 도착하여 게임을 같이 즐기고 본격적으로 저녁을 먹었다. 참 신기하게도, 집에대한 이야기,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우리가 만난것 부터도 굉장히 오랜만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서로의 근황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벌써 늦은 밤이 되었다.

모여서 모든 회포를 풀기에는 너무 시간이 짧다. 돌아가는 길 내가 가져온 짐들을 다시 차에 싣는 것은, 내가 실어왔을 때에 비해 그리 무겁지 않았다. 곧 결혼식에서 모두 다시 만날것이다.

6월 12일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경우가 많았던 부천의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번엔 모처럼 먼저 연락을 해왔기에 기쁜 마음으로 약속을 잡았다. 오늘은 부천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만나기 전에 머리를 했다고 했는데, 머리스타일이 꽤 산뜻해보였다.

꽤 더운 날이었으므로 금방 근처의 카페로 들어가 커피를 한잔 하며 근황을 나눴다.

6월 17일

휴가를 내어 바쁘지 않게, 너무 느긋하지도 않게 그란폰도 출전 준비를 했다. 충분히 잠을 자고,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가볍게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 갈아입을 옷들과 소지품을 챙긴다. 자전거 가게에 들러 자전거도 정비한다. 사소한 브레이크 트러블이 해소되었고, 나머지 부분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받는다. 소모품 교환에 대비해 타이어와 체인을 준비했는데, 아직도 수명이 반쯤 남아 충분히 탈 수 있다고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바꿀까 잠시 고민했으나 그냥 타기로 한다. 그간의 라이딩을 견뎌냈으나, 이번 라이딩도 충분히 그러하리라. 이것저것 챙겨 출발하니 어느덧 오후 세시에 가까워졌다.

내비게이션이 멍청해 고속도로가 아니라 하남 시내를 가로지르게 만들었던 것을 빼면, 금방 인제에 도착할 수 있다. 예전에 인제 스피디움을 자주 드나들었기에 가는길이 익숙하다. 맛있는 것이 먹고 싶었으나, 함부로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기에, 인제 휴게소에서 소고기 버섯 덮밥을 시켜서 먹는다. 마냥 마음에 가는 선택이 아니었는데 의외로 맛이 괜찮다.

예약한 숙소에 들러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봐야 충전기와 편하게 입을 옷 정도 밖에는 안되었다. 혼자쓰기에도, 그냥 잠만 자기에도 너무 과분한 방이었다. 이런 공간에서 잠만 자는 것이 뭔가 아쉬운데, 그 잠 마저도 잘 들지 않는다. 난 내일 완주 할 수 있을까.

6월 18일

평소 2시에 자던 놈이 유난을 떤다고 일찍 잠들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또 두시에 잠들어 두 시간 밖에 잘 수가 없었다. 부랴부랴 씻고 짐을 챙겨 대회장으로 향하니 여섯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월하게 주차자리를 찾고, 출발을 위한 나머지 것들을 준비했다.

출발 지역으로 이동하니 정말 많은 사람이 운집해서 출발선의 정확한 지점을 알수 없을 정도였다. 일곱시 출발신호가 울리고 몇분이 지나고서야, 정체가 해소되어 나도 출발할 수 있었다.

출발하자마자, 사람들의 페이스가 엄청나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에어터널은 평지에서 힘을 아끼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동네에서 나 혼자 서울에 가려고 탄천의 평지를 달릴때에는 엄두조차 낼수 없는 속도를 이 곳에서 너무도 손쉽게 내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룹라이딩의 쾌감을 느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내 왼편에서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나를 추월해갔다.

금방 업힐이 나타나서 열심히 페달을 굴려야만 했다. 아까 나를 앞질렀던 사람들 중 몇몇을 업힐에서 만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업힐이 나타나기 전, 작은 업힐과 다운힐이 반복되었는데, 그 때 마다 다운힐과 평지에서 나를 앞질렀던 사람들을 업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라이딩 스타일을 비교하자면, 나는 아무래도 그나마 업힐에 강점이 있는 유형이었나 보다.

첫 주요 업힐로 구룡령을 만났다. 6k 길이에 6퍼센트 내외의 평균 경사도를 가졌다. 저단기어로 꾸준하게 페달을 밟으니,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올라가는 동안에 그 누구도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사람이 없었다. 꾸준한 페달링에 보상이라도 하듯이, 정상에 보급소가 있어서 단 것과 음료수를 보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따라 겪어본적 없는 무시무시한 다운힐을 경험했다.

문제는 조침령이었다. 동네에 있는 1k, 10퍼센트의 여우고개도 겨우 오르는 나로서는, 4k, 10.9퍼센트의 이 업힐은 출발 전부터 겁을 먹게 했다. 구룡령의 긴 다운힐 구간 이후에 좌회전을 하면서 바로 나타나는 업힐이라,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같은 것은 없었다. 바로 기어를 낮추고 밟아나갈 수 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내려서 쉬거나,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오후들어 소나기가 내릴것이라는 기상예보도 들어맞지 않고, 오히려 구름이 개어 뜨거운 태양빛이 느껴진다. 케이던스를 늦추고, 절대 내려서 끌바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오기로 페달링 하니, 중간쯤 지나 아래를 내려다 보니 구불거리는 아스팔트 스파게티가 꽤 멋들어졌다. 케이던스를 늦춘게 그나마 도움이 되었는지, 내리지 않고 업힐을 마칠 수 있었다. 메디오폰도 코스에 있는 주요한 두 업힐을 마치니 이제 완주하는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구룡령과 달리 조침령의 내리막은 꽤 완만했고, 맞바람이 불어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출발때와는 다르게 사람들도 저마다의 페이스로 흩어져서 펠로톤에 묻어갈 수도 없었다. 남은 구간은 사실상 독주를 하며 꾸준하게 페달을 밟아나갔다. 가는길에 내가 묵었던 숙소가 나타났기에 굉장히 신기해하며 발을 굴렀다. 이제는 정말로 완주가 머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막바지 구간이 업힐로 마무리되어 얼마 남지 않았던 체력을 뽑아갔다. 마지막 업힐인 오미재도 1.5k, 9퍼센트의 절대 만만하지 않은 업힐이었고, 성남시에 있는 웬만한 업힐보다도 강력했다. 그나마 이 업힐은 새롭게 뚫린 터널 옆에 있는 옛길이어서 차가 거의 드나들지 않았기에, 힘들 때 마다 경사로의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피로를 덜었다. 메디오폰도 막바지에 나타난 업힐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업힐을 마치며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주변에 외치듯 말했다. 같이 올라오시던 한 분이 엉덩이 아프지 않느냐 내게 물어서 웃음으로 답해드렸다. 아무래도 빕이 아닌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모습이 생경해보여서 질문 주셨던 것 같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피니시가 바로 앞에 다가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주차된 차들 사이를 지나 행사장 문을 지나는 것으로 메디오폰도 코스를 끝마칠 수 있었다. 레이스를 마치면서, 마치 스프린트 포인트를 따내는 피터 사간 마냥 두 손을 들어 온갖 오두방정을 다 떨었다. 아마 도착점 주변의 사람들이 미친놈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피니시 하고서 바로 완주증과 기념품을 수령할 수 있었다. 수령하는 순간에도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호들갑을 떠니 자원봉사자 분들이 웃어주셨다. 기록도 4시간 54분 41초.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도 훨씬 좋은 기록이었다. 메디오폰도를 마치고 나서 은근하게 차오르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바로 스트라바 로그를 남겨 이 뿌듯함에 영속성을 부여하고, 몇번이고 들여다본다. 작년에 자전거를 시작해서, 때로는 발전도 없고, 살도 잘 안빠지는듯 하여 자전거를 타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펼쳐지는 주변의 풍경, 그리고 내가 페달을 밟는 만큼 나아가는 자전거의 매력에 빠지며, 그냥 타는 것 자체를 어느정도는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기쁘다.

이것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적고, 이 자랑을 들었을 때 좋아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아무리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라지만, 마치 라이딩 코스 옆에서 화이팅을 외쳐주시던 인제군의 주민분들 처럼 그 길의 옆에서 박수라도 쳐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은데. 이벤트가 끝나고 스트라바 로그와 인스타그램을 계속 들여다보는건 완주의 뿌듯함에 더해 외로움 섞인 아쉬움이 섞여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짐을 정리해두고 시작점 근처의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어온 그 어느 중국집 볶음밥보다도 맛있었다. 이것때문에라도 다음에 그란폰도 한번 더 하러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6월 19일

그란폰도를 마치고 아직도 혼자 나지막히 뿌듯해 하고 있다.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은은하게 조금씩 완주 후기들을 전했으나 흥미로운 이야기일리 없었다. 메디오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운전하는 길이 힘들었고, 그 다음에는 잔잔하게 밀려오는 쓸쓸함이 힘들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일을 했는지 모른다. 나는 아직도 외로움의 언덕을 넘어갈 방법을 모른다. 끝 모를 외로움의 언덕을 넘어 내리막을 만날 수 있을까.

6월 21일

운동에 관심이 많은 친구와 모처럼 연락이 닿았었는데, 그란폰도 완주 소식을 듣고 축하해 주면서 서울 라이딩 코스를 하나 소개시켜 달라했다. 자전거를 내게 먼저 소개해주었으나 정작 자전거는 내가 더 열심히 타게 되었는데, 한강 자전거 도로를 반바퀴쯤 도는 '옷걸이코스'를 소개시켜주면서 야경을 구경하기 좋은 코스라고 덧붙였더니, 같이 타러가자고 제안해왔다. 그리고 덥썩 물었다.

옷걸이 코스 자체는 그리 어려운 코스가 아니지만, 성남에서 부터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전체 길이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제안했던 친구가 자전거를 올해 많이 타지 않았기에 내가 선두에서 저녁먹을 장소까지 먼저 이끌었다. 저녁먹으러 가는 길은 잠실철교를 지나게 되는데, 퇴근후에 바로 출발했기에 괜찮은 저녁노을 풍경을 볼 수 있었고, 친구는 좋아했다.

스몰토크를 나누며 저녁을 먹고는, 바로 응봉산에 야경을 보러 갔는데, 이 길부터는 나도 초행길이었기에 중랑천과, 강변북로 자전거길이 보여주는 밤 풍경을 보며 눈이 즐거웠다. 응봉산에 올라 야경을 보는데 친구와 나 둘다 야경을 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내일이 출근이고 뭐고, 그 순간은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나를 격리시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밥먹는 시간과 야경을 감상한 시간을 합치니, 페달을 부지런히 밟았는데도 성남에 열두시가 다 되어야 다다랐다. 나는 처음으로 해본 다른사람과의 라이딩에 괜히 고무되어, 친구와의 대화에서 다음을 기약했다. 친구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나는 긍정인지 부정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6월 26일

비예보가 있었기에 자전거를 조금 무리해서 어제 탄거였는데, 오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비가 오지 않고, 그저 불쾌하리만치 습하기만 했다. 어제 장을 보면서 사본 스타벅스 콜드브루는 디카페인이 아니었고 벤티사이즈였기에 각성효과가 굉장했다. 그 전날에 하체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는데도, 서울 방향 탄천 자전거 도로의 개인 구간기록을 대부분 경신했고, 4시간에 걸쳐 자전거를 타고 자정에 가깝게 집에 돌아왔음에도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카페인의 효과는 아침 6시가 되어 소진되어 겨우 잠에 들었고, 열한시가 되어 깨어났다. 컨디션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어제 5k를 남기고 펑크가 나서 꽤 오랜시간을 걸어왔는데도 그랬다.

꽤 무게감 있는 라이딩을 마쳤는데도 아직 자전거 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단순히 뭔가를 이뤄내기 위해 자전거를 탔던건 아니었나보다. 다만 컨디션관리를 실패해서 토요일도 일요일도 몸으로는 좀 힘든 주말이 되는듯 하여 괜히 억울한 생각도 든다.

7월

7월 10일

코로나, 미묘하게 맞지 않는 시간 등으로 외할아버지 댁에는 잘 찾아뵙지 못했다. 이번에 그 부채의식을 털어내야 겠다고 생각해 모처럼 시간을 냈다. 웬일로, 동생도 시간을 내었기에 같이 갈 수 있었다.

원주에 있는 외가에 오랜만에 가보니 예전과 다르게 마당과 정원이 비교적 잘 정돈되었다. 못가본 사이에 아버지가 몇번 다녀가실 적에, 아버지의 손길이 닿았던 것이었다. 외가에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아버지가 직접 찾아뵈어 손을 거들 일이 많았다. 아버지는 그것을 항상 자랑스러워 하셨고, 엄마도 겉으로는 외가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충청도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전혀 솔직하지 않은 말이었다.

우리가 조금 일찍 왔기에, 점심을 작은이모댁과 같이 할 수 있었고, 오랜만에 먹어보는 외가의 밥은 입에 잘 맞았다.

저녁이 되면서 다른 친척분들도 오셨고, 오랜만에 봬었는데도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상에 술이 빠지지 않았기에, 오랜만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 흥이 나신 아버지는 많이 드셨고, 엄마도 간만에 보는 자매들과 맥주를 곁들이며 회포를 나누셨다.

7월 12일

몇몇 고친 코드들의 시연을 앞두고, 신경은 거세게 날카로워졌다. 우리의 코드는 다른 사람들의 코드와 맞물려 돌아갔기에, 의사소통과 협업이 불가피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것 이외의 것에 잘 모르고, 관심도 가져주지를 않았다. 기어가 잘 연마되지도 않아 삐걱거리는데, 윤활유 조차도 준비되지 않은듯 했다. 나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아 시연을 앞두고 이 사태를 다시 목도하며, 윤활유가 되겠노라 생각했다. 그리고 역정을 내고 소리치고 한숨을 쉬었다. 그랬더니 시연때는 자잘한 문제는 있었지만 그런대로 지나가게 되었다.

윤활유를 뿌린 기어가 돌아가면서 마찰열이 일어나고 있을 때, 나는 아직도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어떻게든 어휘는 숨기고 있지만, 어조와 표정은 숨기지 못했다.

7월 14일

대학 동기가 단톡방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소식을 전해주고 한동은 그 친구는 말이 없어서 다른 친구들이 걱정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뇌출혈이었다며, 수술을 시작했으나 좋아질지 알 수 없다는 말을 전했다.

친구는 그저 답답한 마음을 토로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도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매우 슬펐다. 시간이 조금 지나 수술이 다행스럽게 잘 끝났다는 말을 전했지만, 그 시간 동안 친구가 침묵했던 것에서, 친구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우리가 그저 당연하게 생각한, 아니 당연하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을정도로 그저 자연스럽게 무언가 존재하는 것이 어느날 그렇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의연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점점 당연한것이 당연해지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말 슬프게도.

7월 20일

오랜만에 생일을 축하할겸 이 직장을 다녔던 지인 분에게 연락을 했었다. 그 분은 축하에 감사하며, 자신은 잊히고 싶은 사람이니 지금 하고 있는 이 대화는 비밀로 해달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리고 이 분의 소식을 다른 분으로 부터 전해들었다. 그 다른 분들과 다르게 나의 연락은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었나보다. 나는 아쉬워할 자격이 없었다.

7월 28일

연락이 없던 친구가 모처럼 전화를 걸어왔다. 근황을 말해주었다. 자살을 할 뻔했고. 그 이유는 인성이 나빴던 이성친구를 다시 만났다가 그 만남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며, 자신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가운데 집에 가기 위해 운전을 하려면 누군가 계속 말을 걸어줘야 하기 때문에 내 대화가 필요하다며 전화했다. 그가 보여줬던 소셜미디어의 모습과는 많이 괴리감이 있었다.

그의 소셜미디어는 그의 지금 모습에 대한 대표성이 없었다.

그가 집에 다다르기에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집에 다다르고 나서 그는 약을 먹어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세상에는 나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없고, 나는 유틸리티가 되었다.

지인의 전화가 와서 받았음에도 나는 왜 절망했는가.

7월 29일

같이 일하던 분이 떠나신지 1년정도가 지났다. 나는 개발자였고, 그 분은 QA였기에, 팀은 달랐으되 같은 업무영역을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그 분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었다. 그리고 느꼈음에도 나는 연락을 드리지 못했었다.

오늘 그 분이 모처럼 회사를 다시 찾았다. 근처에 교육이 있었다면서 개발부서 층에도 인사를 돌면서 밝게 인사해주셨다. 나는 반가워했고, 그 분이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내가 연락드리지 못한 것을 변명했다.

짧은 인사가 끝나고 그 분은 다른 곳에 인사하러 자리를 떠났다. 나는 털썩 주저 앉아 앞선 변명을 부끄러워했다.

8월

8월 3일

일기를 쓴지가 꽤 오래 된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면에 떠오르는 말들을 바로 잡아다가 써내려가지 않으면, 내 일상은 크게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을 정도로 재밌지 않기 때문에 글을 풀어내기 쉽지가 않다. 나는 예전에 사람들로 부터 말을 글쓰듯이 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는데, 실은 그 글을 쓰는 것 조차도 잘 못하는 인간이었던 거다.

일상에 재밌는 일이 생기지 않게 된, 그리고 내 신변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은 것이 꽤 오래된 일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인사하려고 말을 붙이고 싶어도, 재미있게 풀어낼만한 내 근황이나 이벤트 같은게 없어 말을 붙이기 쉽지 않다. 타인에게 '뭐해' 하고 말을 붙여 보는 것도 내 프라이버시 공개 없이 타인의 프라이버시만 얻어내려는 것 같은 뉘앙스가 강해서 함부로 물어보지를 못하겠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뭐하느냐 물어보면 내게 니가 그걸 알아서 뭐할거냐고 답할 것만 같이 두렵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일이 내게는 불공정 거래를 강요당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일상의 가치는 그들에게 수요가 없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도, 3대 중량 400을 넘어도, 게임기를 사서 진득하게 플레이해도 그랬다. 그들과 동등하고 공평한 관계를 가지는 방법이라고는 서로 무관심한 것 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절망케 한다.

8월 5일

정신 건강을 되찾기 위해 시작했던 운동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운동으로 잠깐 도피할 뿐, 정신건강에는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오히려, 정신건강과 운동능력에 반비례 관계가 형성되려 하는 것만 같다.

스쿼트 1rm pr 160kg에 성공했다. 이제 pr로만 놓고 보면 SQ 160, DL 145, BP 100으로 도합 405kg를 달성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것을 달성하기 까지 있었던 일들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3대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다. 아니다, 애초에 내 주변에는 사람이 잘 없다.

8월 6일

장군이는 잠이 많이 늘었다. 예전 처럼 잔병은 조금 있지만 더 아프는 일은 조금 줄어들고, 다만 잠은 많이 늘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 나가려고 할때, 산책때 걸어다닐때, 내가 사진을 찍으며 귀찮게 굴때, 밥먹고 있을 때는 눈을 꿈뻑 뜨면서 아는 체, 귀찮은 체, 배고픈 체 한다.

우리는 장군이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안다. 장군이도 안다.

그래서 장군이는 잠을 자면서 그것을 아껴서 사용하려 하는 것 같다. 얼마든지 아껴서 쓰며 우리 곁에 있어주었으면. 아끼며 잠드는 시간, 눈뜨고 아는체 하는 시간 동안 우리가 같이 있는게 좋은 시간이었으면.

8월 14일

비는 오지 않았지만, 불과 며칠전에 계속해서 큰비가 내려 도로가 정비되지 않았을것이 분명했다. 이번달은 아무래도 가상 라이딩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어제는 몸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휴식일로 삼았으니, 오늘은 그런대로 힘이 나올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평소보다 좀체 페달이 밟히지 않아 고생했다. 기어도 한단 낮은것을 쓰며 40k를 겨우 완주했다. 파워는 처참했다. 직업을 가지며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누구는 250w, 300w를 넘게 한시간 동안 낸다는데, 나는 어째서 하루를 쉬었음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까. 겨우 운동을 마치고 상쾌함과 억울함을 동시에 느낀다.

운동을 꽤 오래 했다고 생각했으나, 내 잠재력이 높지 않은 탓에 발전은 미미하기만 하다. 시간이 흐르며 나이가 차오를 수록 퇴보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겠으나, 그래도 가끔은, 핑계대지 않는 명백한 발전을 바라기도 한다.

8월 28일

집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주말에 날씨가 좋을때 집에만 있으면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러 나가본다. 전날에 배탈이 났던것과, 그럼에도 어제 오늘 잘 먹어두었던 것이 상쇄되어 체력 상태는 보통이었다. 하지만 근력은 좋지 못했다. 자전거를 꾸준하게 타고 있음에도 자전거 실력이 쉬이 늘어나지 않아 억울하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고 바닥보다는 앞을 보면서 자전거를 타기로 한다.

비가 오고 도로에 상처가 많이 남았다. 한강에 이르기 전까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반복되었다. 고개를 계속 들어야 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노면을 신경쓰며 속도를 줄이고, 펑크가 나지 않도록 요리조리 피해다녀야 하는 것도 역시 신경쓰이는 일이다. 조금씩 조금씩 체력을 깎아 먹는다.

다만 속도가 높지 않았으므로 체력을 그렇게 많이 쓰지 않아서, 오늘은 반포한강공원에 갔다가 남산에 가볼까 싶었는데, 잠수교에는 뭔가 벼룩시장 같은 행사를 하고 있었고, 그때문에 자전거의 통행을 통제하고 있었으며, 흥을 다 깨버렸기에 행사나 대충 구경하다가 돌아가기로 한다.

사람들은 맛있는것을 사다가 자리를 만들어 수다를 나누기에 바빴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모여있어서 나는 이 인구밀도를 견디기 힘들었다. 그만 되돌아가기로 한다.

9월

9월 3일

머리를 해야겠다 싶어서 이번엔 이례적으로 토요일이 아닌 금요일에 부천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길, 엄마가 전화를 받으며 지나가는 말로 '..데려갈까' 라는 말을 했는데, 집에 와서 알고보니 이모의 포도밭에 갈일이 있다며 강아지를 봐주거나 아침에 포도밭에 같이 가자는 미션을 주셨다. 포도밭엔 아직 가본적이 없었으므로, 엄마를 데리고 포도밭에 가보기로 한다.

이모의 포도밭에는 이모 내외, 매형, 외종 사촌 형을 오랜만에 만나뵈었다. 내가 포도밭에서 일하는 손재주는 없었으므로, 단순 노동을 했어야 했는데, 엄마는 장군이를 보라는 미션만 부여하며 내 죄책감이 쌓이도록 했다. 포도를 따다가 쌓아놓은 남자 일꾼과, 포도를 다듬어 상자에 담는 여자 일꾼들 사이로, 장군이 억제기는 뻘쭘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우두커니 있는다.

점심쯤 모든 일이 끝나고 일꾼들은 각자의 용건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다같이 밥을 먹으면 내가 밥값이라도 내면서 부채의식을 털어냈을텐데 그런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

원래 용건이었던 머리를 하고, 저녁을 먹고 저녁에 사람을 만나러 간다. 1년만에 만나는 후배. 말하면 말할 수록 내가 컨텐츠 없고 재미없는 사람이라는게 자꾸 드러난다. 나는 피아노도 그만두고 자전거 페달이나 굴릴줄 아는 재미없는 사람. 긴 하루를 보내 체력적으로도 좋지 못한 상태여서 피로감을 노출했다. 만났던 후배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다음 만남의 시간이 과연 주어질까.

9월 8일

추석 연휴를 앞둔 날에 회사가 모처럼 일찍 집에가라고 한다. 이번엔 심지어 회사의 수장이 전체 메일을 돌려서 집에 가라고 독려한다. 회사 수장씨는 우리회사가 젊은 사고방식, 합리적인 업무 방식을 가진 회사인걸 어지간히도 어필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사람들은 각자 흩어지고 나도 오늘은 일찍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 이유로 운동도 하지 않아 더욱 헛헛하다. 씻지 않고 누워서 OLED만 바라봐도 시간은 잘만 흘렀다.

9월 11일

명절 모든 행사들은 끝이났다. 너무도 시끄러운 명절이었는데, 그 시끄러움의 지분 9할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핑계로 선산과, 제사, 봉분 같은 과거의 것들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 과거의 것들이 아버지에게 제일 적은 몫을 나누어 주었음에도 그랬다.

아버지는 많은 몫을 나누어 받은 사람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것을 매우 서운해했다. 그 서운함을 참다가 참지 못해 모든 사람들에게 성토했다, 이번에도 알콜의 힘을 빌어서 그랬다.

그 사이 아버지 옆의 형제들은 무너지고 있었다. 과거에 명절에라도 만났던 사촌들은 언제부턴가 만나지 못했다. 그들의 부부관계는 손찌검으로 금이갔고 손찌검으로 멀어졌다. 이 일은 여자형제, 남자형제 가리지 않았다. 한산 이씨 공무공파의 피에는 분노의 유전자가 남아있는 것인가.

고민은 아버지의 몫이었고 고민끝에 이른 결론은 결국 술이었다. 답답합은 가족들에게 전가되었다.

명절이 힘들다. 언제까지 힘들것인가.

9월 22일

명절때 무리를 했었는지, 그냥 평소에 좋지 못한 컨디션이 터졌을 뿐인건지, 등에 통증이 있었다. 자전거는 정비 맡겨버리고, 운동도 쉬었다가 오늘 부터 다시 시작한다.

9월 23일

상반기에 드라이빙 아카데미 세션이 열리지 않아 장거리 운전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으나, 현대가 안면도에 센터를 건립하고 드디어 이벤트를 열었다. 조금 더 비싸졌지만 예약을 주저하지 않았다. 안면도의 거리가 인제보다는 가깝고, 세션도 열시에 열리기에 충분히 쉬고 출발할 수 있었다. 다만 차가 막히고 안면도가 인기있는 관광지였으며, 서해안고속도로가 양양고속도로보다는 덜 좋은 도로였기에, 금요일이었다고는 해도 평일 아침이었지만 소요시간은 인제에 갈때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현대는 BMW가 조금 신경쓰였는지, 안면도에 BMW보다 큰 센터를 한국타이어와 손잡고 지었다. 인제때와는 다르게 제대로된 접수 카운터, 카페, 전시공간, 교육공간을 배치했고, 무엇보다 자동차를 교육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들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게 교육때 프로그램 개편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재밌는 이벤트를 해볼 수 있었다. 간단한 급제동 및 슬라럼을 했던 것은 예전과 같지만, 이후에 무려 드래그 레이스가 생겼고, 두명씩 짝을지으며 꼬리잡기 토너먼트를 하고, 독자적인 서킷에서 스포츠 주행 입문 교육을 한다. 비슷한듯하면서도 새로운 구성으로 재밌게 운전할 수 있었다.

전시관에는 여섯대의 차를 전시했는데, 모두 전기차였다. 오늘 배우면서 느꼈던 내연기관의 즐거움을 얼마나 더 느낄 수 있을까.

안면도는 엄마가 나고 자란 곳이었기에, 문득 엄마한테 뭐라도 사갖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면도 스러운 뭔가를 떠올리니, 예전에 외할머니가 안면도 사셨을적, 아나고와 대하를 맛있게 드셨던 기억이 나서 수산시장을 향했다. 흰꼬리새우가 양식이고, 진짜 대하와는 구분되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차 트렁크에 싣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안면도를 가로질러 군산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겠다고 처음에 생각했는데, 군산은 실제로 달려보니 훨씬 멀었다. 대충 서울에서 안면도 갔던것 만치, 안면도에서 가야만 군산에 다다른다. 나는 조금은 급하게 이성당에 들러 빵과 그 주변의 길거리를 짧게 구경하고, 새만금 방조제에서 넘어가는 해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냥 멍하게 있기에는 바닷바람이 거세어서 생각을 모두 지워내기 쉽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구름을 모두 치워낸 해가 서서히 얼굴을 붉히며 수평선 아래로 모습을 감춘다. 텔레토비 친구들,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나는 배때지를 쓰다듬으며 또, 또를 외치는 텔레토비들 마냥 아쉬워했다. 아쉬움이 소용없음을 깨닫고 집으로 향한다.

막히는 도로를 뚫고 겨우 서울에 다다르니 밤 열시다. 아버지도 엄마도 새우를 기다리고 계셨기에 모처럼 식탁에 같이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눈다. 이런거 1kg 에 3만원이면 또 사먹어 볼만하겠다.

9월 24일

대학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모처럼 모여서 점심을 먹는다. 장소를 독특하게 고기리의 음식점으로 정했다.

다섯명이 모여 좋은 음식을 먹어보잔 의도로 생긴 이 모임도 으레 나이를 먹어가는 친구들이 속한 다른 모임들이 그렇듯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단순한 친목을 가지는 자리는 사회 속에서 점점 우선순위를 잃어가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오늘은 한 명이 자리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주 중에 과음을 했기에 여자친구의 눈치를 봐야 해서' 였다. 나로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였는데, 나를 빼고 다른 친구들은 그냥 저냥 넘어가는 분위기였기에 나도 그런 척 하기로 했다. 나는 새로운 만남 같은 것은 잘 못하기에 지금 존재하는 만남들을 나름 최선을 다해서 이어가고 싶었다. 나를 빼고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늘 나만 아쉬운 사람이 되고, 그래서 늘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다.

9월 27일

자전거를 정비하고 오랜만에 다시 안장에 앉아보니 느낌이 꽤 괜찮다. 출퇴근 페달을 밟는 느낌이 마냥 나쁘지는 않아 괜찮다. 돌아오는 길에는 도로도 어느정도 정비가 되어 있었다. 월말까지 잘 훈련한다면 그란폰도 완주도 마냥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10월

10월 3일

개천절의 존재를 잊고 있어서, 월요일이 빨간날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서 뒤늦게 기분이 좋다. 등을 다치고 비가왔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쉬는데, 운동을 좀 길게 쉬니까 몸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관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운동시간이 줄어든 만치 게으름의 시간이 늘어버리고 말았다.

10월 6일

'데스 스트랜딩'이라는 배달게임이 재밌다. 사람과 사람사이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배달' 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난이도가 적절해서 게임으로서의 재미도 충분해보인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설정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해서 재미를 느끼기 쉽지 않았는데 설정이 좀 과한 감은 있지만 게임의 주제의식이 분명한것 같아 이해가 편하고 좋다.

그런데 나의 지금 삶은 어쩌지. 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호의가 되돌아오지 않거나, 그 호의가 부담으로 작용해 거절당하거나, 또는 내가 사람들의 호의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나 역시도 부담스러워 거절하고는 하여 좀처럼 인간관계의 세계가 확대되지 않는다.

나는 오늘 당장의 출근길 회사 엘레베이터의 인구밀도도 견디기가 힘들어 마음속으로 몇번이고 비명을 지른다.

10월 20일

몸상태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특별하게 아픈것은 아니지만, 자전거 타다가 무릎을 다친게 오래가고, 웨이트 트레이닝 무게도 줄어들었다. 나는 오뉴월에 제철이고 추워질수록 겨울잠을 준비하는 몸인 듯 하다. 군인이었을 적에는 겨울에도 열이 많이나서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하고는 했었고, 지금도 그 버릇이 남아 긴팔 셔츠를 입을 적엔 곧 잘 팔을 걷어붙이지만, 내 몸이 가지고 있는 열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래가지고 다음 주에 있을 그란폰도때 잘 달릴 수 있을까. 운동하면서도 걱정이 된다.

10월 23일

모처럼 동생과 내가 비슷한 때에 본가에 왔다. 동생은 토요일에 집에 차를 대 놓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가 자리가 길어져 꽤 돌아오지 않았는데, 다 큰 어른을 넘어 서른이 된 동생이었으나 아버지는 동생이 왜 이렇게 안오느냐며 괜히 엄마를 채근했다. 막상 동생이 집에 들어왔을 적엔 그냥 왔느냐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모두가 모인 일요일 점심에 스시를 시켜다 먹으며 두런두런 수다한다. 크게 기쁜일 같은게 없어도 소소하게 대화를 나눈다. 가족끼리 작은 끈이 있음을 느낀다. 동생에게 에스프레소 프라푸치노를 사주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간다.

자전거 탈 몸이 조금씩 만들어진다. 잘하면, 어쩌면 잘하면 대회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10월 29일

자전거를 타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어제부터 통영으로 달려왔다. 360km을 운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잠을 충분히 자고 운전했기에 큰 피로감 없이 도착했다. 숙소는 개인 화장실도 있고 분위기도 따뜻하여 좋았다. 문제는 대회를 앞둔 긴장감으로 또 잠을 못잤다는 것이다. 그나마 상반기 대회때는 두 시간이라도 잤지만, 이번에는 그 마저도 들지 못해 사실상 밤을 새고 대회를 나간다. 잠을 못잔 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가 잠을 못 이루게 해 악순환을 이뤘다. 대회장에 와서 자전거 페달을 굴려보니 몸 상태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출발 신호를 받고 페달을 구르니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오늘의 코스는 언덕을 오르내리는 난이도 높은 코스다. 고도가 100 미터 넘는 언덕이 하나뿐인데도 누적 상승고도가 1600미터를 넘는 미친 코스. 언덕을 한번 올라갈 때 마다 같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다르다. 평지에서 달릴때 나와 속도가 비슷한 사람 뒤에서 체력을 아끼는 꼼수도 이곳에서는 부릴 수 없다. 이곳에서는 온전히 내 힘으로 타야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첫 휴식지점부터 평소보다는 높은 페이스로 자전거를 탔음을 실감한다. 급히 화장실을 해결하고, 물과 단것을 보충한다. 나는 양갱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살아왔는데 오늘 준 양갱이 그렇게 맛있었던 적이 없었다.

첫 휴식지를 벗어나고 달리는 코스부터 언덕도 점점 많아지고, 풍경도 점점 좋아진다. 바닷바람이 강할 수도 있다고 겁먹었지만 그렇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언덕이 있어도 금방 내려갈 수 있으니 기분도 점점 좋아진다. 통영의 그란폰도 행사는 지역에서도 꽤 의미있는 행사였는지, 마을 곳곳을 지날 적에 지역 주민분들이 응원의 함성을 보내주셨다. 기분이 좋아서 절로 감사합니다 라는 소리가 나왔다.

두번째 휴식지에서 제대로된 간식이 나왔다. 꿀빵과 두유, 양갱을 받았다. 꿀빵에는 '오이소꿀빵' 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내가 꿀빵을 모르고 있었기에 간식을 주신 분께 '이거 오이가 들은 꿀빵인가요? 아니면 이리오세요 하는 의미인가요' 하고 물었고, 주신분께서 후자라며 웃어주셨다. 꿀빵은 맛있고 든든했다. 자전거를 타야해서 오랜시간 음미하지 못한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통영 시장을 지나는길, 잠깐 지나가는 해저터널, 해수욕장 옆 지방도로 등 다양한 코스들이 나왔다. 모든 것이 신이나 노래를 흥얼거리며 페달을 구르는데, 이것이 지나쳤던 나머지 큰 언덕 두개를 앞두고 허벅지와 종아리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종아리에 쥐가 난적은 있어도 허벅지에 쥐가 나는것은 처음 경험해본 일이었고, 페달을 구르면서 온전히 다리를 펼 수가 없었다. 마지막 휴식지에서 다리를 땅에 딛을때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옆에 계셨던 분의 도움으로 다리를 빼서 앉은자세로 스트레칭을 해서 겨우 경련을 풀어낼 수 있었다.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휴식지의 음료수를 여러번 들이켰다.

마지막 언덕때에 이르니 이제는 풍경이나 다른 사람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이제는 이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리를 지배했다. 속으로 욕을 계속 해가며 페달을 구르니 마지막 언덕의 정상에 이를 수 있었고, 그 언덕을 내려가며 머지 않아 도착지에 이르렀다.

기록을 보니 4시간 40분. 91k, 1700m 상승고도를 가진 코스였는데, 5시간 안에만 타면 좋겠다는 목표를 이루어내어 속으로 나즈막이 기뻐했다. 스트라바가 계산해준 평균 파워를 보니 역시 상당한 오버페이스였다. 동네방네 아는 사람들에게 다 소문내고 싶었으나, 호들갑을 떨 수 있는 매체가 내게는 매우 한정되어 있어서, 인스타그램과 몇몇 친구들에게 간단히 소식을 전하는데 그친다. 지인들과 후일담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로 자전거를 정리하니 성취감과 동시에 같이 밀려오는 쓸쓸함에 마음을 추스르기 쉽지 않다. 이제 이런일에 무던해질만도 한데 말이다.

참가 경품을 받고 정리를 하니 엄청난 피로가 쏟아졌다. 대회를 마치고 동네 구경을 해볼까 생각했었으나 엄청난 오만이었다. 숙소 근처의 삼계탕 가게에서 허기를 달래고 체크인 시간이 되자마자 숙소에 들어온다. 몸을 씻고 침대에 누우니 바로 잠들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역시 어제의 불면에 숙소는 잘못이 없었다. 가게문이 닫기 전에 황급히 가까운 곳에서 순대국을 하나 시켜먹고, 다시 숙소로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10월 30일

자전거를 탔던 피로가 겹쳐서, 전날과는 달리 깊은 잠을 잤다. 숙소를 탓할 여지가 없이 깊은 잠을 잘 잤다. 그런데 간밤에는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꺼리고 피하는 나와는 정 반대의 사람들이 모여있다가, 그 사람들이 서로를 악의 없이 해하고 말았다. 안타까움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숙소에는 나만 남아있는지 고요했다. 공용 주방에서 빵을 꺼내고, 커피를 내려다가 마신다. 이제서야 게스트하우스를 게스트하우스답게 묵은 듯 하다. 방을 나름대로 처음 왔을때 모양으로 정리해놓고, 주인분께 숙소의 환경과, 어제 아침의 먹을거리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문을 나섰다. 자전거만 타고 떠나기에 통영은 너무 먼곳이기에, 항구를 마주한 통영 시장동네라도 구경할 참이었다.

동피랑이라는 동네가 사진으로 보기에 꽤 예뻐보였고, 그 앞에 바로 통영 시장이 있었기에 구경해보기로 한다. 차로 금방 당도할 수 있었다. 오늘은 특별히 공짜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동네를 향해 걸어가본다.

동피랑은 분위기가 아주 고즈넉하고 채도가 높아 편안하되 상쾌한 분위기를 낸다. '포카리스웨트' 라는 단어를 가지고 마을로 만들면 이런 마을이 될 것 같다. 바다를 마주한 높은 언덕에 옹기종기 가정집들이 모여있고, 그 마을의 벽에 벽화를 그려서 채도를 높이고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 마을에 벽화를 그리는 일은 어느덧 15년이 되어가기에, '문화'라고 부를만 해졌다. 예전에 나는 마을에 뭔가 새로운 동상, 새로운 그림을 벽면에 그리고 관광객을 모으는일을 보고는, '이런일이 과연 마을사람들을 살리는 지속적인 일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품은적이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니, 그 일 자체가 이곳을 오는 목적이 될 수는 없겠으나 마을을 풍성하게 꾸려나가는 또 하나의 산뜻한 구성요소로서, 그것을 꾸준하게 지속시킴으로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고 마을을 거닐며 생각했다. 오늘의 날씨와 동네 풍경이 너무 아까워 카메라를 들어 피사체가 되어보기도 한다.

통영의 시장은 공연히 해산물이 유명한 곳이었겠지만,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에, 좀 덜 해산물스러운 메뉴를 찾아본다. 마침 새우버거와 굴 튀김을 파는 가게가 있으니 앉아서 먹는다. 브랜드 패스트푸드가 아니고 수제버거집이었기에, 빵도 고기도 갓구워서 나와서 아주 맛있다. 굴 튀김도 새로웠는데, 마냥 맛있다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굴에 거부감이 있는 나도 잘 먹을 수 있었다.

어제 자전거를 타며 보급으로 나왔던 꿀빵을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항구를 배경으로 앉아 마실 수 있는 커피집에 들러서 잠깐 앉아 커피도 마셔본다. 주변을 찾아보는데,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곳이 있어서 흥미가 생겨 들른다.

입장권을 사고 잠시 둘러보며 통제영을 관람한다.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비롯된 이름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초대 통제사는 이순신장군이었으며, 초대 통제사가 엄청난 인물이었기에 이후에도 나라에서 인정한 대단한 인물만이 통제영을 역임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통제영은 알고보면 마치 해군본부와도 같은 곳이어서, 둘러보면서 내가 군생활했던 3군 사령부와 비교해보며 둘러보았다. 옛날의 군대는 물건을 군수품/밀수품을 가리지 않고 만들고, 농민들에게 대민지원을 하기도 하는 등 지역과 훨씬 밀착하며 존재했다는것이 신기했다.

구경을 마치니 오후 세시쯤이었는데, 집에 가는길이 멀어 이제 서울로 출발하기로 한다. 잠은 충분히 잤으니 운전하는일이 마냥 피곤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가는길과 오는길 모두 충분하게 자고 운전을 하니 장거리 운전도 할만 하다. 힘든 여정이었으나 돌아오는길에 다음 여정을 떠올리고 있으니, 이번이 끝은 아닐 것이다.

11월

11월 6일

통영 그란폰도 행사 바로 다음주에 달리기를 신청했었다. 오늘 아침에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과 몸에 스치는 찬 공기, 그리고 무거운 몸을 느끼면서, 조그맣게 후회하고 있었다.

달리기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란폰도를 위한 운동 덕분에 체력과 심폐상태는 괜찮았고, 근력도 생각보다는 괜찮았지만 관절계가 문제였다. 7k를 넘어서면서 왼쪽 무릎이 서서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페이스가 조금씩 떨어졌다. 심폐가 여유있었기에 그래도 쉬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다. 기록은 희망한 것과 달리 한시간을 넘었으나, 작년의 내가 워낙 처참했기에 작년 기록은 여유있게 넘어설 수 있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보고 뛰는 것이 재미있고 매력있다고 생각하며 달리기를 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행사가 끝나고 나면 모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실은 서로 다 알고 있었고, 나만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고야 만다. 지하철 플랫폼으로 걸어가는길 후일담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로 이어버드를 끼며 조용히 오늘 있었던 달리기 기록을 되짚어 본다. 목표했던 것은 해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11월 17일

그란폰도를 뛸 적에도, 달리기를 할 적에도 마음 한켠에 걱정하고 있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회사 세미나 발표였다. 연구소의 인원이 돌아가면서 한번씩, 일주일에 두번 발표를 해서 대략 1년의 로테이션이 있는 세미나 발표인데, 순서를 뽑으면서 내가 팀에서는 가장 빠른 순서에 당첨되었다. 본래 나의 발표일은 11월 10일이었으나, 한주가 미뤄져 11월 17일이 되었고,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도 1주일이 더 길어졌다.

주제를 계속 고민만 해놓은 상태에서 확정을 지은 것이 불과 1주일 전, 그리고 주말부터 내내 자료를 가져오고 책을 뒤지고 테스트코드를 돌리며 슬라이드의 빈칸을 채워나갔다. 주제를 정하면서도 주제가 타당한지 계속 의심하고, 자료를 만들어 채우는 동안에도 스토리와 디테일을 계속 의심했다. 슬라이드를 채우며 글을 쓰는 일은 마치 수채화를 그리는 일과 비슷해서, 완성에 다가가는듯 하면서도 계속 덧칠하고, 덧칠하다가, 나중에 다 칠하고 나서 보면 이상한 것이 만들어져 있는 것과 비슷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렀고 내 차례가 되어, 강당앞의 사람들에게 겨우 운을 떼었다. 대학생부터 발표를 해왔는데도 나는 말을 계속 더듬고, 내가 가진 자료들을 제대로 강조하지도, 불필요한것을 흘리지도 못했다. 준비한 내용을 다 말하고, 경력이 높으신 한분이 내 발표내용의 의표를 찌르는 내용을 질문해주셨다. 나는 다행히 테스트를 통해 알아냈던 내용을 말씀 드릴 수 있었고, 그것이 내 발표시간 동안에 말했던 것보다 영양가 있는 내용이 되었다. 정말로 궁금해서 질문해주셨다기 보단, 내용상 좀더 강조하고 싶다고 판단하신 부분을 일부러 짚어주셨던 게 아닐까 발표가 끝나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스트레스가 가라앉고 차분하게 돌이켜보니, 그냥 남들만치 발표 한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금방 잊고 사무실 자리에 다시 앉을 것이다. 슬픈 일이기는 했으나 그것은 내가 발표하기 전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기 때문에 감내하며 넘어가기로 한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겼을때 지금보다는 더 슬기로운 발표시간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것이 지속성이 있을지 어떨지는 모른다.

11월 19일

후배가 결혼소식을 전하며 사당역에서 식사 약속을 잡았다. 대학 때의 후배들과 친구들 다섯이 모여 맛있는 밥을 먹었다. 한국식 퓨전요리를 하는 식당의 음식들은 그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주 맛있었다. 처음에 나온 '육회 파스타'는 파스타의 이름이 붙었지만, 탄력있는 국수의 질감과 참기름의 풍미가 아주 기가막혔다. 입맛이 살아나 다음에 나오는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한껏 즐거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다 먹고 나서는 근처의 커피숍에서 근황을 나누려는데, 자리가 여의치 않아 커피를 사들고 나와서 근처의 공원에서 근황을 나누었다. 한손에 커피를 들고 밖에서 공원의 적당한 소음과 함께 대화를 나누니 그 분위기와 기분이 주말과 잘 어울려서 마음이 매우 편안했다. 결혼식은 3주 뒤의 일요일이니 그때 다시 만날 것이다.

11월 26일

이상하게도 주말만 되었다 하면 몸이 급격하게 나른해져서, 주말을 그렇게 아까워 하면서도 밍기적 거리는 것만으로 주말의 절반을 보낸다. 아까워 하는 마음이 악순환을 거쳐 커져만 간다.

날씨가 좋으니까 아까운 기분이 더하다. 찬바람 들어 몸 상태는 점점 가라앉아가는데, 날씨가 자꾸 마지막 기회라며 나갔다 오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다. 요즘 자주 못하는 등산을 아침 일찍 일어나 했더라면 어땠을 까. 매일밤 하루가 사라지는 것이 싫어 밤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다음날 아침을 까먹어 버리고 만다.

주말에는 조금이라도 사야겠다 싶은 물건이 있으면 마트에 나가 점심을 먹는데, 백반집, 파스타, 햄버거, 칼국수 집 메뉴들을 매번 들여다보고 고민하다가 결국 백반집에서 제육볶음 정식을 먹는다. 어릴적엔 맛이 중요했다가, 대학와서는 가격이 끼어들고, 사회인이 되고서는 영양가를 따지더니, 이제는 내 소화능력을 생각하게 되었다. 삶에 큰 변화가 없다고 느끼다가도 내 몸은 착실하게 나이들고 있다. 큰일이다.

11월 27일

어제는 몸을 쉬었으니, 오늘은 자전거를 타겠노라 마음먹고 정오도 되기 전에 나와서 발을 구른다. 날씨는 급격하게 추워졌다. 양지와 음지의 차이를 몸으로 느낀다. 몸이 찬바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감기 기운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 오늘은 괜히 나왔다 싶었지만 이미 서울방향 절반을 지나고 있었기에 되돌릴 수는 없다.

광진교 북단에는 이따금씩 들르던 햄버거가게가 있는데, 오늘은 주말 점심이었기에 사람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그 옆에 있는 베이글 가게에서 초코 베이글과 치즈 베이컨 베이글을 골라 따뜻한 커피와 먹었는데 오히려 좋았다. 따뜻한 날에 진즉 들러볼껄 그랬다.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도, 정작 이정도의 찬바람도 이겨내지 못하고 감기기운이 몸에 스미고 있는걸 느낀다. 황급히 발을 굴려 집으로 돌아와 뜨신 물에 몸을 적시고 이불속에 들어가 생각을 멈춘다.

12월

12월 1일

몇 주 전 주말 사당에서 모여 결혼 전 오찬을 즐기던 모임에서 두 명은 결혼식에 갈 수 없을것 같다며 내게 축의금 전달을 부탁했다. 자신의 편의와 바쁜 현대인의 현실, 피치못한 사정은 세상의 테두리와 칼날속에서 믹서기처럼 흔들려 하나의 책임으로 환원되어 내게 와버리고 말았다. 반복되는 지인들의 결혼 속에서 그나마 느낄수 있는 기쁨은 몇 안되는 아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인데, 만남의 기쁨은 줄어들고 책임만 늘어나는 듯 하여 아쉽다. 그러나 이것은 온전히 나만이 느끼는 아쉬움이요,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불합리함이므로 그저 목구녕으로 삼키는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돌아오는 동안 머리속에 질문하나가 계속 맴돈다. '내가 사람들에게 기능적인 의미 말고 다른 의미로써 존재했던 적이 있었을까.' 쓸쓸함의 감정이 증폭되고, 그 이유가 조금씩 분명해지는 듯 하다. 나는 외로움의 언덕을 넘을 수 있을까.

12월 4일

아버지는 내게 요즘 사람만나는 일이 있느냐 넌지시 물어보셨는데, 그때 마시라며 직접 담그신 인삼주를 주셨다. 마침 다음주에는 친구들과 모여 노는 시간이 있어서 괜찮겠다 싶어 가져왔다. 매번 소주만 드시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은근히 비싼 술도 아주 가끔은 드셨다. 양을 줄이고 질 좋은 술을 드시며는 좋겠는데 말이다.

결혼식에서 후배들을 만나고 넘겨받은 책임들을 모두 전달했다. 미션 콤플리트. 반갑지만 어색한 사람들과 근황들을 나누었다. 후배들에게 들어보는 근황에서도 사람들끼리 멀어져가고 있음을 넌지시 느낀다. 마음 한켠이 헛헛해진다.

결혼식을 마친 후배가 연회장에서 인사를 돌린다. 나와 친구가 앉은 테이블에도 찾아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기쁨과 행복이 느껴진다. 두 부부는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는데,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본의 아니게 박치기를 해버리고 말았고 나는 둘을 보며 크게 웃었다. 사랑의 부싯돌이 부딪혀 불꽃을 일으키니 둘은 그 온기로 아마 행복하게 살리라.

12월 11일

다섯명의 친구가 겨우 한 때에 시간을 내어 놀러간다. 때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 여섯명 중에 한명은 때를 맞추지 못하기도 했다. 그 사이 달마다 2만원씩 모았던 곗돈은 기백만원이 되었고, 이제는 털어내야만 했다. 다들 내색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한때 한곳에 모일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라맨이 산본맨을 데리고 나를 태우러 온다. 얼굴이 반갑다. 경기 광주의 마트에서 모두가 집결하고 단체티로 갈아입고 장을 본다. 부끄럼과 소속감은 비례한다. 청라맨의 과자 선택취향이 심상치 않다. 꿀꽈배기, 꼬깔콘이라니. 게다가 이 다음 코스였던 오리고기집 선택도 젊지 않은 코스다. 우리가 이 정도로 올드했던가. 물론 아주 맛있었기에 후회나 불만은 전혀 없다. 친구가 잡아둔 펜션이 굉장히 좋다. 넓고 깔끔하며 편의 시설이 많고 독채였다. 그곳에는 찜질방 시설도 있었기에 저녁까지 두 시간정도를 즐겼는데, 다들 만족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도 나이가 꽤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총무를 담당하는 산본맨이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해왔다. 오랜만에 방어와 소고기와 구운 소세지를 즐긴다. 각자 가져온 술도 즐긴다. 오랜만에 마시는 위스키에서 알콜냄새 대신 과일냄새가 느껴져 반갑다. 오늘만큼은 술도 거부감 없이 넘어간다.

모든것이 과잉이었으되 시간만 모자랐다.

12월 12일

저녁때 서울 서부에 사는 후배가 카톡으로 내게 연락했는데, 대뜸 운전면허를 갱신할때 모바일로 할지, 실물면허로 할지를 내게 묻는다. 나는 면허를 갱신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그저 영양가낮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건네었다. 다만 돌이켜 보면 굳이 내게 물어보지 않아도 될 일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 질문이 그저 반가운 인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나를 그저 실용적인 이유로 찾아도, 그것이 때로는 기뻐서 찾아준 사람에게 실용적인 인간이라도 되기를 희망하고는 했었다. 나는 그것이 마냥 좋다가, 그저 그것이 나를 사용한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회의적인 감정이 들고 나서는 사람들의 연락에 시큰둥해져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이젠 사람들이 나를 실용적인 이유로라도 찾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공평한 고립에 빠지고야 말았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나만 아쉬운 입장이 될 바에는, 그냥 공평하게 서로 연락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그것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너무 나중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실용의 이유와 감성적인 이유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나는 그러지 못했다.

12월 18일

지난주에 친구들과 만났던 일이 벌써 아득해진다. 고프로로 촬영한 것들을 확인해 토막난 영상을 하나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여준다. 엄마와 아버지는 금토로 조치원에 다녀오실 일정을 바꾸어 토일로 다녀온다 하셨고, 나도 일을 하나 매듭지어야 했기에 집에서 쉬기로 했다. 어제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으나 오늘은 그냥 집에 있기로 한다. 겨울은 추우니까,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밖에 못나가 아쉽다는 생각은 다른 계절만치 들지는 않는다.

12월 21일

아침에 눈이 늦게 뜨여버렸고, 그때 등근육이 굉장히 뻐근했으며, 밖에는 바닥이 하얗게 눈이 내렸다. 직장의 상급자에게 연락하여 오전 반차를 쓸 것임을 알렸다. 눈이 뜨이면서 몸이 화들짝 놀라서 이때 잠이 깨어버렸기에, 반차를 냈음에도 잠을 더 잘수는 없었다. 그저 이불속에 머리를 숨기고 한시간을 넘게 밍기적거린다. 밍기적 거리기만 하는데 시간은 잘만 흐른다.

단골 카페에서 베이글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갖고 회사로 출근한다.

12월 24일

아버지 생신이 다가오는 화요일이기에, 모처럼 오늘은 온 가족이 집결해 저녁을 먹는다.

12월 25일

전날 마셨던 커피의 힘이 엄청나다. 가상 자전거를 꽤 오래 탔는데도 좀체 잠들지 못했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넷플릭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정주행했는데, 90년대에 만들어졌다기엔 연출도 세련되어 촌스럽지 않았고, 메시지도 난해하다고는 하지만 요즘 세상에 잘 맞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정신이 무너지는 주인공의 모습과 그 상황이 내가 처한것과 비슷하여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카페인과 에반게리온은 심장에 크게 무리가 온다.

12월 29일

내가 목요일에 휴가 낸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청라에 사는 친구는 휴가때 드라이브를 가자며 꼬셨다. 거리가 멀테니, 그 전에 청라 집으로 와서 밥이나 먹고 다음날 아침에 가자는 계획이었는데, 들어보니 와이프분이 여행간 것을 노린 일탈이었다. 나는 덥썩 물었고 막히는 길을 달려 청라에서 신기한 VR 게임과 스토리가 시원스러운 인도영화 하나와 맛이 꽤 괜찮았던 족발을 즐겼다.

다음날 일어나자 마자 달려온 해미읍성으로 달린다. 도착하자 마자 맛본 순대국은 맛이 포근하여 몸을 금방 나른하게 만들었다. 나른한 몸으로 읍성을 거닐으니 터가 넓어 분위기가 고즈넉하여 그저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하다. 읍성은 세월을 겪으며 듬성해지고 그대로 여백으로 두었다. 입장료도 받지 않은채 그저 공원처럼 존재해왔다. 천주교의 박해, 형벌의 집행이 있었던 장소라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마침 읍성 옆에는 백종원이 조언해준 것으로 유명한 호떡집이 있었다. 호떡도 기다림도 그리 좋아하지 않음에도 용케 30분을 넘게 기다려서 사먹어본다. 생각보다 맛있다. 단맛과 기름기가 줄었는데, 오히려 그게 입맛에 맞는다.

돌아오는 길은 퇴근길이 겹쳐 수월하지 못하다. 같은시간 다른 고속도로에서는 큰 사고가 나서 사상자가 생겼다.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 방향에 따라서는 내가 지나갔을 수도 있는 길이었다. 막히는 길도 감지덕지 하며 지나가기로 한다

이민혁_2022년.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3/01/01 17:13 저자 221.163.14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