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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혁_2023년

이민혁 / 2023년

1월

1월 1일

외할아버지의 생신은 아버지 생신의 다음 주에 있다. 그래서, 그 쯤에는 외할아버지댁인 원주에 들러서 외가 친척분들과 인사를 나눈다. 우리집은 구성원 모두가 성미가 급하고, 다른 사람의 집에서 잠에 잘 못들고, 그 집은 꽤 좁기 때문에, 일찍 원주에 가서 작은 이모 가족과 점심을 먹고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낸다.

외할머니의 치매증세는 그 진행이 더뎌지기는 했지만, 이제는 손주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민혁이가 맞지만, 자식이 다섯이 되었는데, 엄마의 두 아들들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예전에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치매는 기억을 지워버리는 질병이라기 보단 시간선을 흐트려놓는 질병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외할머니의 시간은 이제 사람마다 다르게 흐르게 되어버렸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엄마로서 기억하는 것을 이제는 그만하기로 마음먹으신 것 같다. 엄마의 쓸쓸함에 무게가 더해진다.

저녁시간이 되면서 큰이모 가족들과, 작은외삼촌 가족들이 모이면서 모두가 집결했다. 작은외삼촌 가족중에는 예전에는 친했지만 지금은 어색해져버린 사촌 여동생이 둘 있는데, 오늘은 모처럼 말이 트여서 요즘 사는 겉둘레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가족관계를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았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별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도 그런대로 즐겁게 나누었는데, 오늘 주량을 한껏 넘기며 드신 아버지가 이제는 돌아갈 것이라 선언하며 자리가 파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며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나도 아버지도 오늘 가족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나누었는지, 아버지가 꽤 술에 취했음에도 꽤 기분좋게 집에 올 수 있었다.

1월 2일

회사가 오늘은 오후에 시무식만 하겠다며 오후 출근을 공지했다. 미리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조금 늦잠을 잔 후 점심 전에 출근 했다. 그런데 주차장이 빼곡하여 주차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 아무래도 그룹사의 시무식이 오전에 있기에 오후에 시무식을 하는 김에 출근 때를 늦춘듯 하다.

한시 반쯤 시작하는 시무식이 다섯시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자리잡은 2층은 자리가 불편해 잠도 잘 수 없었다. 마지막 발표 시간은 인사팀장님이 인사변경안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만연체스러운 말과 알맹이 없는 내용이 겹쳐 더욱 고통스러웠다. 모든 시무식이 끝나고 찬기운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 감기가 온 듯 하다. 앞선 고통으로 인해 기운이 줄어든 듯 하다.

1월 3일

회사에 같이 입사한, 그런데 다른 부서를 많이 전전한 동기와 아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모처럼 밖에서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간다.

그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우리 팀과의 협업 과정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쏟아내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치적인 일이었고, 자신이 만나는 개인은 예의를 지키지 않으며, 결국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일방적인 이야기만 들었기에 달리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는 타인의 행동에 관심을 끊었고, 행동의 의미를 판단하는 것을 그만두었는데, 이렇게 가치판단을 강요받는 상황은 매우 곤란하다.

회사의 모르던 부분을 원치않게 알게되면 나는 무서워서 더욱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어버리고 만다. 나는 내가 아는 만큼만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데. 나는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들과 동선이 겹칠까 무섭다.

1월 5일

등부상이 또 심각하다. 명치 반대편의 기립근 근처의 근육이 매우 아프다. 특히 앉아있을 때 고통스럽다. 서있거나 누워있을 때는 괜찮은데 앉아있을 때가 문제다. 등을 뭔가 마사지 해준다면 참 좋겠는데 혼자서는 쉽지 않다. 어제 운동을 마치고 폼롤러로 몸을 눌러줬음에도 나아지지 않아 걱정 스럽다. 또 운동을 쉬고 싶지는 않은데.

1월 7일

회사 지인의 결혼식은 애매하게 알게된 사람들을 매우 많이 만나고, 회사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안갈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부담스럽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마음을 품은적 있던 지인도 오지 않을까, 만나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었다.

마음을 품었던 그분과 결혼식이 끝나면서 잠시 짧게 인사했는데, 식사는 하지 않고 돌아간다며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또 내 마음은 일방적이기만 했다. 명백히 거두어야 하는 마음 자세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연회장에서 전/현직 동료 선후배들과 식사를 했다. 몇 가지 대화들이 겉돌듯 지나가다가 최근 개봉한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오갔다. 각자 관심사도 다른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지나가버린 열정들이었던 것 같다.

등/허리 통증이 극심하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앉아있는 행위였기에, 페달을 굴리는 동안 내내 허리가 아팠다.

1월 10일

친구가 부고 소식을 전했다. 부친상이었다. 퇴근하자마자 단정한 옷으로 바꿔 입고 이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잠깐의 조문 후 자리에서 친구와 대화하다가 친구는 자리를 비우고 바쁘게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과 같이, 친구는 당장은 슬프기보단 바빠보였다.

친구는 작년 연말에 이러한 상실을 몇 번 더 겪었다. 대화를 해나가는 모습은 평소와 같았지만, 아마 친구들 앞이라고 부러 힘을 내는 듯 했다. 그 모습은 꽤 효과적이었기에, 나는 친구의 마냥 무거워보이지는 않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은 안도했다. 나와 먼저 조문을 오신 친구의 다른 중학교 동창들은 짦은 대화와 침묵을 오갔다. 나도 꽤 오래지낸 인연이라고 생각했으나, 친구의 인연중에서는 아마 내가 가장 짧은 인연이었던 듯 하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내내 이런 슬픔을 앞으로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 때론 이렇게 3인칭으로 겪을수도, 또 어쩌면 2인칭으로 겪을 것이다. 나는 그 슬픔이 올 적에 의연할까, 아니면 온몸으로 슬퍼할까.

1월 12일

할머니 제사가 있어 퇴근 후 집으로 향한다. 평일 중에 두번 부천을 향하게 되었다. 삼촌이 먼저 와계셨고, 아버지도 퇴근하셔서 제사준비 하고 계셨다. 나의 퇴근이 늦었기에 도울 수 있는 일손이 몇 없었다. 아버지는 제사 시간을 조금 당겨서, 열시에 제사를 시작하기로 하셨다. 최근에는 삼촌이 제사를 주관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나의 역할은 내 차례에 절을 하고 술을 따르는 것에 그친다. 할머니 제사때 지방을 쓰는 것도 좋지만 영정을 써도 괜찮겠다는 이야기로 할머니 이야기의 운을 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귤을 까주셨던 이야기. 그리고 그 때를 전후해서 옛 할아버지댁을 공사해서 현대화 했던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래도 할머니 제사때 할머니 이야기가 오가는 듯 하여 제사의 본래의미를 되찾은듯 해 기분이 낫다. 매번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해온 덕분에, 열살도 되기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임에도 난 아직 할머니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 할머니 병수발을 들며 고생하셨던 엄마 모습도.

가볍게 저녁을 먹고 퇴근했으나 제사가 끝나고 허기가 들어 제사음식으로 끼니를 챙긴다. 소고기무국은 이런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에 마음껏 먹는다. 온기가 남은 산적, 담백한 닭고기가 있으니 밥한그릇이 금방 없어진다.

1월 16일

회사에서 또 한명이 나간다. 내가 소속한 팀과 같이 협력했던 QA팀의 일원이었다. 이제 그 조직에는 나와 함께 했던 사람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거의 모두 새로운 얼굴들 밖에 없어 앞으로의 일과 대화들이 걱정스러워진다.

등 통증이 나은듯 안나은듯 크게 발전이 없다. 웃기게도 운동 능력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 운동은 운동대로 계속 하고 있다. 부상이 호전될까 악화될까.

1월 18일

착한것을 권하지 않는 사회 일수록 나쁜것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의 작은 부분을 접하고 겪으며 겨우 다듬어낸 명제일 뿐이지만 오랫동안 생각했었기에 일단은 글로 남긴다.

1월 19일

퇴근시간 무렵에 뜻하지 않은 메신저 대화가 있었다. 그 분은 연말정산 서류 처리 때문이었는지, 내게 자가 여부를 질문하셨다. 아마 내가 이 집을 인수하면서 자가 여부에 변동이 생겼던 것과, 이 규정이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궁금하셨던 듯 했다. 질문부터 한 것이 죄송하다며, 나중에 근황을 묻겠다 하셨고, 근황 토크가 이어졌다. 이직 할 마음을 접은 것, 최근에 에반게리온을 봐서 정신이 나갔음을 전했고, 그분은 요즘은 그리 바쁘지 않지만 따로 코드리뷰 알바를 했고, 스파이패밀리를 추천해주셨으며, 몇가지 개발자 유머를 우스개로 나누었다. 근황을 여쭈신 이유가 예의를 차리기 위함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뜻하지 않은 메신저 대화가 하나 더 있었다. 나이가 같은 대학 후배였다. 근황을 묻기에 가장 좋은 대화 주제는 자신이 소속한 회사였고, 앞으로의 미래를 다루는 대화 주제는 이직 여부였다. 나는 이직 할 뜻을 접었고, 사람을 마주할 용기가 없음을 깨달았다는 걸 또 고백했다.

두 메신저 대화로 외로움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나는 또 찢어발겨지고 말았다. 타인이 내게 관심이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고,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어떻게 지내냐 먼저 물으면 '그걸 네가 알아서 뭐하게'라는 답이 돌아올까봐, 나는 그저 묻는 말에 묻는 만큼만 답할 뿐이었다.

1월 23일

아버지는 설날 전에 할아버지댁에 1박 2일로 일정을 소화하겠다고 선언하셨는데, 작은아버지가 할아버지댁에 더 머무르시는 것을 보시고는, 발길을 재촉해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가 섭섭해 하실 것을 아시면서도 아버지는 자주 할아버지댁에 오시니까. 아버지도 내심 집에서 쉬고 싶으셨을 것이다.

오늘 점심을 먹고, 저녁쯤에 나도 집에 돌아가겠다 하니 아버지는 내심 섭섭해 하셨다. 입장이 바뀌시게 되어 이해는 해주셨겠지만, 역시 섭섭한 것은 섭섭한 것이었던 듯 하다.

감정적으로 별일이 없는 설날을 보낸듯 하여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언제나 별일이 없으면, 별일이 없는대로 가족들을 걱정하고야 만다. 돌아오는 길의 마음이 그랬다.

동생이 가족들과 4월에 제주도로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4월의 주말은 아마 일정이 풍성해질 것이다.

1월 24일

어제 아침 쯤, 지인 한명이 자신의 정서기 자금 불안정 하다며, 책을 몇페이지 전화로 읽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서 내 방에 들어가 방에 있던, 별로 감명 깊지는 않았던 여행산문집을 하나 집어다가 읽었다. 다행히 마음을 안정시키기에는 꽤 괜찮은 내용이었다.

당장은 꽤 신기한 경험이었고 그 지인도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내가 오랜만의 연락임에도 그저 자신의 요구사항을 달성한 뒤 저 아득한 곳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오늘까지 생각해봤지만 나는 그저 이용되었던 것인 듯 했다. 나는 또 망연자실해졌다.

영하로 두자리수까지 내려간 날씨였지만, 카페에 나가 미리 회사일을 조금 해둔다. 집에서는 회사생각, 회사에서는 집생각을 하니 효율적인 삶이 될 리가 없다.

1월 30일

개인 통산 최초로 스쿼트 130kg를 5×5로 해냈다. 개인 통산 최초로 벤치 90kg를 5×5로 해냈다.

이 운동들은 얼마나 더 지속가능할 것인가.

동생이 4월의 가족여행 계획을 보내왔다. 꽤 큰 지출이 있을 예정이다.

2월

2월 3일

회사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유로 팀 인원 중 한 명을 보내려 한다. 지금까지 여기에서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모빌리티 운영체제 업무, 전혀 다른 장소와 사람들이 1년간 사업화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정치적인 이유도 개입했는지, 후보가 되는 인원은 6년이상의 고연차 인원들이다. 그들은 한 자리에 모여 누가 갈 것이냐를 놓고 토의를 벌였지만, 어떤 방법도 합리적일수 없었다. 결론을 짓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니 결정권자였던 팀장님이, 자신이 가겠노라 상부에 보고했다고 했다. 내가 입사할 당시부터 직속 상관이었던 팀장님은, 이번에도 또 타인에게 떠넘길 수 없이 자신이 모든 폭발의 파편을 끌어안으려 하신다.

나쁜짓은 회사가 했는데, 왜 죄책감은 조직원들이 끌어안아야 하는가.

2월 9일

휴대전화에 백만원 이상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가파르게 상승한 물가가 그 의지를 꺾는다. 물욕이 거의 없어졌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다가도, '이번에 놓치면 후회할만한 혜택'같은 것을 내걸은 상품에 홀려서는, 제품 발송을 꽤 기다려야 함에도 처음으로 사전예약이라는 것을 해본다.

지금 전화기를 4년 가깝게 썼으니, 본전치기를 했노라 스스로 합리화 해본다. 이번 전화기는 그 가격만큼이나 오래써야 할 것이다.

2월 13일

작년에 전세대출을 다 갚아버리고, 더이상 무주택자가 아니게 되어버리면서,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는 항목이 또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거의 백만원에 가깝게 세금을 더 내야만 한다. 작년 월급에서 10만원 정도를 덜 받는 일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일인데, 한꺼번에 백만원을 월급에서 삭감받는다고 생각을 하니 괜한 억울함이 밀려온다. 잘 생각해 보면 별로 억울할 일이 아님에도 말이다.

아무래도 전화기에 2백만원을 썼다고 생각을 해야 될 것 같다. 혹은 이 세금 고지서를 먼저 봤다면 전화기를 안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2월 18일

대학생활을 공유하는 같은 학번의 친구들이 정말 오랜만에 완전체로서 모였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아버지의 간병으로 고생했던 친구는 아버지의 수술이 마치고 위험한 고비를 넘김으로 인해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그리하여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한때 한시에 모이게 된 것이다.

저녁 6시에 미리 약속된 부페에서 하나 둘 출석하여 6인이 모두 모였다. 매우 오랜만에 집결하였고 모두들 묵혀온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모든것을 쏟아내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2월 21일

두달간 즈위프트 유료 결제를 통해 실내 자전거를 탔다. 700k를 탔다. 그 사이에 체력은 조금 늘었고, 파워도 조금 더 늘었고, 지방은 조금도 태우지 못했다.

겨우 퇴보를 면한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만 하는가. 여기서 더욱 발전하려면 일을 조금 덜하거나, 책을 조금 덜 읽거나, 게임을 조금 덜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안하고 멍때리는 시간도 덜어내야만 하는데, 이제는 여기서 이런 호들갑을 더 떨 자신이 없다.

2월 25일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결혼소식을 알리며 친구들을 소집했다. 6인이 사당역 근처의 고깃집에 모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고, 고등학교 동창들은 정서적인 교류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근황을 나누며 어색함이 금방 사그러든다. 고등학교때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그리 바뀌지 않은채, 우리는 참 철없게 사는데도 친구들은 결혼도 하고 잘산다. 다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이번 친구는 아내분과의 다툼도 많았다. 결혼까지 가기 위해 결정해야 하는 의견도 잘 맞지 않아 넘어야 하는 허들도 높았다. 그런데도 결혼을 향해 달려가는 목표는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당장 출근하는 회사 엘리베이터의 인구밀도조차도 견디기 힘든 나는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다섯시부터 주차한 사당역 근처의 공영주차장은 열한시까지 주차했더니 3만원을 받아먹는다. 서울 시내 공영주차장 요금은 자비가 없다.

2월 26일

운동을 이틀 이상 거르게 되면 조급해지는 병에 걸렸다. 밍기적 대며 일어나면서 대충 단백질 보충제로 때우려는데 눈에 자전거가 밟힌다. 기온이 영하권은 아니었기에 간단히 채비하여 자전거를 타러 나가본다. 올해 처음으로 바깥에 자전거를 타러 나간다.

나가기엔 아직 기온이 으슬하여 좀체 심박수가 오르지를 않는다. 근력도 작년 대비 별로 나아진것 같지는 않다. 실내 자전거를 그렇게 탔는데도 몸이 나아지지 않음을 느껴 억울한 감정이 솟는다. 내가 그동안 운동을 해왔던건, 몰두하고 있는 동안 생각을 단순화 할 수 있다는 것도 있었지만, 노력의 비례에 따라 신체의 발전을 느끼며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례한다고 생각했던 노력과 신체능력의 그래프는 사실은 로그 내지는 제곱근 그래프와 비슷하고, 이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점근선에 수렴해 가는데, 어릴적에 운동을 게을리 했기에 그 점근선은 높지 않다.

점근선에 더 다가가기 위해 여기서 더 큰 노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잠도 더 못자고, 먹는것도 훨씬 더 조정하고, 일 하는 시간도 조정해야만 한다. 즉, 호들갑을 떨며 지금의 일상을 해쳐야만 한다. 이제는 그럴 자신이 없다.

이제는 퇴보를 겨우 막아낸 것 만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3월

3월 1일

공장에 잠시 다녀오신 아버지는 급격히 기분이 안좋아지셨다. 아무래도 동업자인 삼촌과 무슨일이라도 있는가 보다. 가족끼리 동업하는게 아니라고 했는데, 그것을 벌써 30년에 가깝게 견뎌오셨다. 모처럼 계획한 동생과 나의 생일 외식은 결국 집에서 보내기로 한다. 근처 시장에서 소고기를 사오는데, 그 값어치가 밖에서 사먹는 것 못하지 않다.

모처럼 다같이 모여서 맛있는 것을 먹는데, 뭔가 무겁게 내려앉아있는 듯한 분위기를 떨쳐내기 어렵다. 앞서 아버지가 겪은 갈등이 아버지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있는 듯 하다. 점점 직장인들의 정년에 가까워지는 나이, 예전같지 않은 금형업, 삼촌과의 갈등은 아버지에게 가장이라는 직함을 짊어지기 더욱 어렵게 하는듯 하다. 내 생일이라고 유세를 떨기엔 모두 하루씩 나이는 차오르고, 점점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3월 5일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는 결혼까지 생각하며 험난한 세상을 달려왔는데, 일과 경제와 가족과 시간이 친구의 발목을 붙잡아 늪으로 끌어들였다. 친구는 여자친구를 풀어주고 혼자만 늪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여행을 소집하여 소회를 풀기로 했다. 장소는 청주였다. 할아버지댁 바로 옆이 청주였으나 나는 청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청주에서 즐길거리를 찾느라 정보검색에 시간을 썼고, 청남대, 미술관, 삼겹살 골목, 대전의 성심당을 가보는 것으로 일정을 정하기로 했다. 나를 포함해 세명이 여행을 출발했다.

첫날의 저녁에는 청주 시장의 삼겹살 골목에 가서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삼겹살 골목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들어서 바쁘지 않은 가게가 없었다. 한자리를 차지해 삼겹살과 항정살을 마음껏 먹는다. 세부적인 점원분들의 서비스가 아쉽기는 했지만 고기의 질과 가격이 모두 용서해줄수 있을만한 정도였다. 점원분들의 실수가 많아서 혹시 계산때 원래의 가격과는 다른 바가지를 쓰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계산서에 나와있는 가격은 매우 저렴했고, 혼잡한 와중에 일단 긁고 가게 문을 나서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낸 고기값은 중간에 추가한 메뉴가 누락된 가격이었다.

복잡한 생각과 인파들의 시끄러움이 겹치며 발걸음은 가게로부터 멀어졌다. 그리고 야식거리를 사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에 가게에 다 내지 못한 고기값이 생각이 나서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숙소로 돌아가며 내 생일을 챙기겠노라며 선물받은 케잌 기프티콘을 쓰겠다고 카페에 들어갔는데, 알고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다른 곳의 기프티콘이었기에 황급히 카드로 케잌값을 계산하며 엄청난 치욕을 느꼈다. 그나마도 나 빼고는 다들 먹지를 않아서 안그래도 배부른 와중에 앞선 부끄러움 때문에라도 모두 먹어치워야만 했다.

부끄러움의 케잌, 외국산 감자전분과자, 베트남 보드카와 샴페인같은 탄산 청하를 마시며 자리는 무르익었다. 이별한 친구는 오늘 모임의 취지에 맞게 만남을 마친 소회를 풀었다. 모처럼 만취하여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다들 만취했기에 아침에 호텔 조식을 먹겠다는 결심은 모두 간의 독소가 되어 오줌으로 흩어져 버렸다. 다들 대충 채비하고 청주에서 좀더 내려가 옛 대통령의 별장이었다는 청남대를 가봤다. 역대 대통령을 소개하는 게시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내용이 과는 배제하고 공만을 기록하고 있어서 밸런스 조절을 위해 우리끼리 직접 과를 조명해 이야기를 나눴다. 주변에서 국수주의자 어르신들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뒤통수를 때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다녔다.

3월 8일

자전거 타고 출근했다가 퇴근할 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이 뭔가 느껴져서 자전거로 한강을 달렸다. 날씨도 충분히 달릴만 했다. 청바지 입고 가방을 메서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속도가 마음먹은 대로 나지를 않았다. 잠실 한강공원에 다다라 편의점에서 단백질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하나 집어든다.

3월 15일

더 글로리의 이야기가 유행인듯 하지만 이 드라마를 정주행할 자신이 없다. 피해자의 감정에 공감하다 못해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잡아먹힐 것만 같다.

3월 19일

3월의 마라톤을 3년만에 뛴다. 기록은 4개월전과 비교해 2분 정도를 단축해 1시간 1초. 아쉽게도 한시간의 벽을 1초차이로 깨지 못했다. 예전에 나는 마라톤 대회의 매력으로, 다같이 서로 모르는 사람이 똑같은 목표를 향해 똑같이 나아가는 모습에서 혼자 있음에도 묘한 동질감을 느껴서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실제로 달리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렇지만, 달리기가 끝나고 나면 모두가 서로의 인연들을 찾아 각자 정해진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혼자 덩그러니 앉아 오리온도 아닌 롯데 초코파이를 슬프게 먹는다.

꾸준하게 운동해 온것으로 겨우 퇴보를 막는것에 보람을 느끼지는 못하는 걸까. 내가 너무 욕심이 과한 것일까. 몸부림은 의미를 잃어가는가.

3월 21일

계획없이 휴가를 내어 쉰다. 몸은 아직 달리기를 했을 때 느꼈던 아픔이 남아있다. 집에서 밍기적대기만 해도 벌써 점심을 지나 3시가 다되어간다. 3시만 지나도 마음으로는 하루가 다 간듯한 느낌이 들어 괜스레 아깝다. 예전에 했던것과 비슷하게 예술의 전당에 가서 전시를 하나 보고 압구정 자동차 전시장에서 차 구경을 하고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움직여본다.

'알버트 왓슨' 이라는 사진작가의 사진전이 열려있어 보러간다. 방송이나 기사로 접한적 있는 사진들이 알고보니 이 사람의 작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진에서 시선을 끄는 방법, 빛을 다루는 여러가지 방법, 사진 안에서 스토리를 만들고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 여러가지를 접한다. 정적으로 한번 보고 끝나지 않고 하나의 사진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니 피사체가 만드는 이야기의 '흐름' 이 느껴지는 것이 참 신기하다. 다만 이사람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기에 긍정적인 평가, 자기변호적인 분위기가 전시에 느껴지는 것은 조금 아쉽다. 나는 아무래도 과거가 되어버려 충분한 평가가 이루어진 사람의 전시를 아직은 더 좋아하는 듯 하다.

저녁이 되어서는 압구정 현대차 전시장에 들러 새로나온 차들을 구경한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맞추어 차 가격은 조금 비싸졌는데, 그 내실은 머물러 있거나 뒷걸음질 한 듯한 모습이 보여 아쉽다. 안그래도 그 크기와 럭셔리스러운 상품성으로 인해 그리 좋아하지 않던 그랜저는 이제 준대형차가 아니고 대형차의 반열에 올라선 듯 하다. 코나는 원가를 절감하고자 하는 디테일 처리가 눈에 보였다. 아반떼는 앞모습을 제외하면 변한것이 거의 없었다.

늘 해오던 방법대로 서울을 구경했다. 구경을 다 하고나시 퇴근시간이 겹쳐 길이 막힌다. 느지막히 일어나 일찍 찾아봐 버린 저녁과 막힌 도로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내일은 내일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3월 24일

지금까지 운동하면서 스트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단순히 스트랩으로 손 안쪽을 감싸서 사용하기만 했을 뿐, 스트랩이 바에 감기는 방향과 손을 감는 방향이 엇갈리게 해서 바가 손안에서 구르는 것을 막는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멍청한 이민혁.

그래서 스트랩을 제대로 감고 데드리프트 130kg를 들어올리니 너무 가뿐하게 들어올려져서 놀라웠다.

160kg까지 들어올렸는데, 몸상태가 좋았다면 170kg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4월

4월 2일

한식을 지내려 할아버지댁에 다녀오신 아버지는 주말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동생분들 가족이 조상의 선산을 관리하는 것을 소홀히 한 채로 자신들의 입신양명만을 자랑하는 그 가족들의 태도를 평소에 매우 못마땅해 하셨는데, 오늘 한식을 지낼때 모두 모이도록 했고, 결국 그 못마땅함을 그들에게 전했다. 그들에게 잘 전달됐다면 속이 풀렸을 법도 했으련만, 성공을 위해 충청도 땅을 떠난지 오래된 그들에게 이미 옛것들은 관심에서 멀어져갔을 터였고, 아버지는 그게 여전히 못마땅해 집에와서도 계속 분을 삭히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는 오직 술 뿐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빌어 옛 풍습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저 본인의 성에 차지 않아 그 풍습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버지를 둘러싼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우리가 할줄 아는 거라고는 그저 참는 것 뿐이었다.

항상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어떤 날은 너무도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을 내려놓은지 어른이 되고나서 좀 된 것도 같다. 아무래도 아버지를 이해하는건 평생이 걸릴 일이 될지도 모른다.

4월 6일

후배 한명이 중고차를 사고 싶다며 같이 가달라 연락한 적이 있었다. 나는 시간이 맞지 않아 같이 갈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답장을 하니, 메신저에서 오랫동안 내 답변을 읽지 않았다.

얼마 후, 점찍어뒀던 중고차를 샀다고 자랑하기 위해 내게 연락해왔다. 나는 건조하게 축하한다고 답했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명백해진다. 이친구는 필요에 따라 나를 찾고, 필요가 사라지면 답장의 필요성도 사라지는구나.

그 친구의 수많은 메신저 사람들 속에서 내가 보낸 메시지는 그의 스케줄링 정책에 따라서 Starving 될것이다.

4월 8일

3월에 청접장을 전한 친구가 오늘 결혼한다. 서울로 가는것도 쉽지 않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둘을 모두 해야하는 열한시 예식이라 힘듬이 가중된다. 친구의 부모님께서 덕을 많이 쌓으셨는지 결혼식장의 규모와 인파가 어마어마 하다. 늘 그렇듯 홀 뒷편에서 조용히 축하를 전한다. 예식이 점심과 때가 맞아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느긋하게 밥을 먹는다. 시간이 이쯤 흐르니 누가 2학년때 친구인지, 3학년때 친구인지 기억이 흐릿해진다. 요즘은 그저 이럴때 얼굴이라도 보고 인사라도 하니 다행이지 싶다.

보통 본가에는 격주로 집에 가지만, 불안했던 지난주의 집 분위기, 그리고 다음주의 일정때문에 오늘 하루 집에 들르기로 한다. 다행히 아버지는 분을 잘 삭이고 안정을 되찾으셨다. 마음이 놓인다. 의외로 두분이 제주도 여행을 시큰둥해 하지 않고 기대하고 계셔서 조금 놀랐다. 구경하는 것 외에 좀 더 동적인 일정을 하나정도는 기획해도 괜찮겠다.

아버지가 지인으로 부터 전복을 하나 구해오셨는데 그 크기가 굉장해서 내 손바닥보다도 크다. 소고기와 함께 버터를 발라 구워먹으면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4월 16일

몸상태가 아직 다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결국 대회날이 되고야 말았다. 오늘은 지난 대회들과는 다르게 집에서 쉰 다음에 아침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집이었어도 대회를 앞두고 긴장하여 이번에도 잠들디 못했다. 그래도 눈을 감은채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명상하듯 누워있었기에 어느정도 휴식은 되었다. 출발시간이 8시였으므로 4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길을 떠난다.

7시가 되기 전에 대회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자전거와 몸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도 로드, 철티비, 엠티비, 미니벨로 등 다양한 자전거가 도전에 임하고, 그 속에 내가 있다. 아는 사람이 없어도 이 분위기가 매우 반갑고 괜한 즐거움에 둘러싸인다.

오늘 코스는 길이 120km, 상승고도 1700m 수준으로, 높이는 예전에도 겪어 봤으나 길이는 전에 뛰어본적이 없는 길이다. 대회 출발부터 사람들이 힘있게 밀어붙이지만 여기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로 완주를 해야 할 것이다.

첫 언덕을 지나 첫번째 보급소, 두번째 언덕을 앞두고 보급소에 꼬박꼬박 들르며 영양을 섭취 했다. 쉴수 있을 때 쉬지 않으면 달리고 싶어도 달릴수 없다. 첫 보급소에서 에너지바를, 두번째 보급소에서 도나스 먹었는데, 갓 튀겨 나온 도나스가 아주 맛있었다.

문제는 마지막 보급소였다. 높은 언덕들을 연달아서 넘고 길게 탔는데, 좀 처럼 보급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첫 보급소가 20k, 두번째 보급소가 37k 지점, 세번째는 65k 지점으로 비교적 이른 때에 나타나 쉬었는데, 마지막 보급소는 이후 30k를 넘게 주행했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언덕을 앞두고 보급소가 나타날 줄 알았는데, 마지막 언덕의 정상이 되어서야 보급소가 나타났다. 올라오지 못한 몸상태에 보급상태까지 겹쳐 결국 허벅지에 쥐가 올라오고 말았다.

언덕 정상에 이르러 겨우 자전거를 멈추고, 자전거에서 내려서 스트레칭을 해주니 조금 나아졌다. 통영그란폰도 때 겪어 봤던 일이었기에 그나마 대처해낼 수 있었다. 마지막 보급소에서 줬던 음식은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두개나 먹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25k 정도였고, 시간은 한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완주 제한시간 6시간을 넘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더 쉬지 못하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그나마 이 언덕이 마지막 언덕이었고, 완주에 이르기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더이상 힘을 들이지는 않을 수 있었다. 부지런히 페달을 굴린다.

완주가 가까워 올 수록 기쁨이 몰려온다. 여러모로 완주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더욱 기쁘다. 도착점에 이르러 시간을 계측해보니, 컷오프 시간을 불과 10분을 남기고 완주 했다. 절로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도착지에서 다시 경련이 올라왔다.

지난 달리기 대회처럼 똑같이 혼자서 달려왔는데, 그때와는 완주 후의 느낌이 다르다. 성취감이 더 분명하고,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간다는 느낌도 더 강하다. 매 보급소 마다 음식을 나눠주시는 분들이 건네시는 음식과 인사도 더 기분이 좋다. 혼자이되, 마냥 혼자가 아닌 느낌을 받는다. 이번이 끝이 아닐 것이다.

4월 30일

동생이 기획한 제주도 가족여행이 끝났다. 동생이 고생을 많이 했다. 마냥 좋은 여행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각자의 성격을 가지고 하나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일은 4인 5각 달리기를 하듯이 쉽지가 않았다. 매 끼니마다 술을 찾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같은 곳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고, 언제 다시돌아올지 알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두분은 사진도 많이 찍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여행자랑, 가족자랑을 할 것이다. 그걸로 된 것일테다.

5월

5월 6일

지난 주말에 있었던 가족여행의 여파로 한주 쉬고싶었는데, 이번 주에는 어버이날이 걸려있다. 자식된 입장에서 무시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할아버지댁에도 가서 어버어버이도 모셔야만 한다.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뵙는 것이었기에 경옥고를 하나 사들고 간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아버지한테 뾰로통해있다. 지난 한식때 자신을 챙기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점점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하는게 많아지고 있다. 명절이나 가족행사가 있을 때 다같이 모여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사라진지가 오래되었음을 느낀다. 아버지는 저녁식사시간에 또 술의 힘을 빌려서 할아버지에게 여러가지 일들을 말로 전한다. 화도 풀어드리고, 할아버지가 모르고 있던 다른 친척들의 처지도 말로 전한다. 우리가족을 제외하면 다른 아버지 형제들의 가족들은 지금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 할아버지도 모르셨다기보단 애써 외면했을 것이다. 각자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저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할아버지에게 전해드린 건강식품이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노여움을 푸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그렇게 건강을 잘 챙기시면 우리 가족을 그만 괴롭혀 달라는 손자의 무언의 메시지일 뿐이다. 나는 다른 가족은 모르겠고 우리가족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가족에게 잘 하고 싶다.

5월 12일

일련의 가족행사가 모두 지나니 지출이 크다. 소비를 했는데 기분이 좋아지지가 않는다. 한번 열려버린 소비의 문은 닫기가 쉽지 않다. 당장 자전거 대회를 나갈 계획이 없음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를 붙여 자전거 업그레이드를 하기로 했다. 150만원 쯤 쓴 듯하다. 내 늘지 않은 자전거 실력은 장비빨로 보완할 수 있을까. 자전거가 업그레이드 되면, 내가 못갔던 곳까지도 자전거로 닿을 수 있을까.

5월 13일

대뜸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가 소개팅을 하겠느냐 물었다. 으레 그렇듯 나는 또 거절을 하고야 말았다.

완곡한 거절을 했음에도 친구는 상대편 분의 사진을 건네주었다. 사진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나와 큰 연관이 없어보였기에, 아름다운 분이니 좋은 분을 만날것이라 전했다.

그렇게 거절하니 친구는 앞으로도 소개팅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가능성을 닫아놓진 않겠으나 지금은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소개팅을 거절할때마다 이어지지도 않은 인연을 몇초 몇십초 동안 김칫국을 들이켜가며 빨리감기로 상상하다가 빨리감기 끝에 파국을 맞이함을 알고는 테이프를 뚝 끊어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고 핑계대며 도망쳐버린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와 외로움의 크기가 비슷해지고 있다. 둘은 끝없이 커지고 죽음의 평행선을 긋는다.

5월 17일

엄마의 생신이라서 평일이지만 온가족이 저녁에 모였다. 가정의 달 5월 아니랄까봐 가족행사가 많다. 아버지가 미리 알아봐놓으신 곱창집이 동네 근처에 있다. 백화점 뒤의 먹자골목인데, 마치 대학가의 식당들 처럼 거의 모든 식당이 바깥에 테이블을 깔아놓고 음식을 판다. 거리에는 클러치백과 금목걸이를 찬 건달들이 거닐고, 그들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존재감을 내뿜는 배달 오토바이들이 지난다. 좋아하는 환경은 아니지만 대학시절이 생각이나 반갑다. 오랜만에 먹는 곱창도 우리 가족들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기에 엄마의 생일을 기념하기에 괜찮았다.

5월 20일

점심을 지나 부천에서 돌아왔다가 조금 지나서, 엄마에게 장군이가 입원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며칠전 부터 숨을 쉬기 힘들어보였던 장군이는 사실 폐에 물이차서 많이 아팠고, 내가 본가에서 떠나오고 얼마되지 않아 응급실에 갔다고 했다.

평소보다 약해진 장군이의 모습이 집을 나설때에도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정말로 그게 걱정으로 끝나지 않게 되고 말았다. 장군이에게 허락된 시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보다는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는데. 설령 집에 혼자 있기를 무서워해서 짖고, 엄마가 외출하는것을 불편하게 해도, 엄마도 우리도 장군이가 조금 더 투정부려줬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5월 24일

장군이는 입원해서 조치를 받았고, 그 기간동안에 아버지와 동생이 부리나케 달려가 면회를 했으며, 결국 오늘 퇴원했다고 했다. 괜히 호들갑을 떠는것 같아서 낮에는 전화를 참았지만, 결국 퇴근하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 장군이의 안부를 물었다. 밥도 먹고 보채는것도 똑같다 하여 마음이 조금 내려가기는 하지만, 장군이의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게 아닐까 마음 한켠이 계속 아프다.

5월 27일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컴퓨터를 주문했고, 동생과 공동투자한 부모님의 새 휴대폰이 동생과 함께 도착했다. 5월은 참 여러모로 부모님을 위해 투자한 시간과 돈들이 많았다.

동생과 모처럼 때가 맞으니 어제 오늘로 동생과 근황을 나눈다. 장군이의 모습도 직접 눈으로 보니 그나마 마음이 더 놓인다. 새로 사온 부모님의 전화기는 이전과는 다르게 가성비 포지션의 중급형 스마트폰인데, 요즘 어른들이 다들 쓴다는 접는 스마트폰은 아니었기에 두분이 얼마나 만족하실런지 마음을 가늠할 수가 없다. 일단 내가 올해 초에 산 스마트폰보다는 크고 예쁘다.

5월 29일

주말만 골라서 비가 오니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가까운 헬스장의 1일권을 끊어서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근로자의 날은 헬스근로자의 날이기도 하기에 대부분 쉰다. 2만원짜리 1일권은 감당하기가 어렵다. 하는수 없이 회사 헬스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회사 헬스장이 한산하니 1RM을 측정하고 그 과정을 영상에 담아보기로 한다. 스쿼트,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의 최고중량을 측정해보니, 170, 110, 170kg가 나왔다. 각각 전년대비 10, 5, 25kg가 늘어난 중량이었다. 다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데드리프트는 스트랩을 쓰지 않고 들어올리는 것이 대회 규정이었기에, 전년과 아마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데드리프트 중량을 크게 늘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들어올리는 과정도 잘못되었는데, 170kg를 들어올리면서 아래쪽 허리 근육에 통증이 있었다. 근육을 삐끗한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1RM을 측정하는 동안에는 몸 컨디션이 좋았는데, 일단 측정을 하고 나면 뭔가 몸의 파워가 한동안은 줄어들게 되니, 이번 한주에는 근력 운동을 잘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제 명백하게 3대 400은 넘었다. 아무튼.

6월

6월 2일

화요일이 현충일로 빨간날인데, 월요일에 회사가 휴가를 권고했다. 붙여쓰면 좋다는 이유나, 휴가를 소진시키려는 이유도 있어보이는데, 아마 실상은 다른 그룹사의 행사가 같은날에 있어서 어차피 능률이 안나오는 날이라고 판단하고 휴가를 권고했던것 같다. 그냥 휴가신청하고 뻔뻔하게 4일 연속으로 쉬어보기로 한다. 계획도 없이.

헬스장에서 트레이너분께 회사 권고로 휴가를 썼다고 했더니, 계획없는 휴가가 아깝지 않느냐 물었다. 으레 보통 사람들은 계획없이 이렇게 쉬는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듯 하나, 나는 평소에도 계획없이 잘 쉬는 편이라 괜찮다고 말하면서, 월요일에는 동네 헬스장을 1일권을 끊어 가보겠노라 말했다. 트레이너분은 기구를 잘 살펴보라면서 헬스장 세계에서 유명한 헬스기구 브랜드들과, 그 브랜드들의 고가정책과, 그 고가정책을 통해 트레이너가 영업활동을 하면서 받게 되는 리베이트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1RM 을 측정한 다음 한 일주일동안은 파워가 잘 안나온다. 아마도 버금가는 무게로 다섯번 하는 것 보다, 최고 무게로 한번 치는게 몸에는 더 무리가 가는 걸지도 모른다.

6월 5일

어제는 토요일에 운동을 쉬었다는 이유로 조금 무리해서 자전거를 탔다. 매번 타던 코스만 타는건 식상하답시고, 암사동과 하남시를 넘어 남한산성까지도 갔다 온 것이다. 105km에 남한산성 업힐까지도 경험한 데다, 그곳까지 가는 길에는 자동차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 구간도 다녀야 했기에 쉽지 않았다.

오늘은 동네 헬스장에 1일권을 신청해서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같은 생활주택 단지의 아케이드 건물에 입주한 헬스장이었다. 가보니 회사의 헬스장 절반정도 규모를 가진 헬스장이었고, 그래서 프레웨이트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꽤 부족했고, 벤치프레스를 할 수 있는 랙에는 안전바가 없어서 실패지점까지 반복할 수 없었던게 아쉬웠다.

회사 이외의 헬스장을 가본지가 꽤 오래된 일이었는데, 우리 회사에 있는 헬스장이 웬만한 동네 헬스장보다도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네에서 조금 멀리있는 헬스장만 가도 1일권이 2만원인데, 휴일이더라도 차라리 회사에 나가서 헬스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6월 6일

월요일에도 휴가를 내버려 오늘이 연속된 휴일의 마지막 날이다. 쉬는 시간이 많이 여유만만 했으나 어느덧 마지막날이라 마음이 허망하다. 휴가 내내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었으나 오늘은 배변활동도 수월한 것이 꽤 회복한 듯 하다. 오늘 날씨엔 자전거를 안탈 수 없기에 또 페달을 밟아 서울로 향한다.

베이글집에서 초코, 베이컨 베이글과 바닐라 라떼를 주문해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먹는다. 어차피 태워 없어질 열량들이라 생각하며 아무런 죄책감 없이 먹으니 더욱 맛있다. 체력상태는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등과 어깨의 근육들이 이번 휴일 내내 비명을 지르니 까불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돌아가는 길에 소나기가 내려 몸을 적신다. 자전거는 짜장거가 되었으나 몸을 계속 움직이는 동안 추위는 느끼지 않아 묘한 상쾌함을 느낀다. 집에 거의 다 와서는 어깨와 허리 근육도 조금은 풀린듯 하여 오히려 개운하다고 느꼈다.

6월 11일

장군이는 지난번 병원에 갔다온 게 온전히 회복된건 아니었던것 같았다. 다시 만난 장군이는 조금 더 야위었다. 밥은 그 전에도 잘 찾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간식도 찾지 않고 물만 마신다고 했다. 엄마가 움직일 때마다 엄마가 어디갔는지 두리번거리는 눈빛은 그대로인데, 그 기운이 예전만 하지 못한것이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장군이의 모습을 보며 마음아파하고 있다.

장군이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며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한주동안 들었었는데, 그 걱정이 정말로 그렇게 되어버린듯하여 마음을 무겁게 내려앉게 만든다. 아파하는 장군이의 모습을 머릿속에 계속 떠올리는것이, 장군이가 가진 시간의 끝을 생각하게 만들고, 시간의 끝을 생각하고 있는게 마치 그 시간의 끝이 다가오라고 빌고 있는것마냥 느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장군이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함을 알고 있고, 그 유한함에 의연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따금 생각해왔는데도 그것이 다가오고 있다는것은 언제나 두렵다. 나는 영원히 이런 잃어버림에 익숙하지 못해질 것이다.

6월 17일

모처럼 친구들과 약속이 잡혔다. 오랜만에 보는 대학 후배 둘이 함께 할 예정이었다가 한명이 건강문제를 이유로 불참하여 4인이 만난다. 불참을 통보한 후배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미안함이 없었는데, 나를 뺀 다른 사람들은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임을 주최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불러주는 모임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약속장소는 이수로 잡혔는데, 친구의 권유에 따라 가까운곳에 있는 친구의 회사에 들러 다 모이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오늘은 차를 가져오지 않았으니, 저녁에 술을 마시며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을 것이다.

친구가 대학원 시절의 경험을 이어서 스타트업을 창업한지도 벌써 8년의 시간이 흘렀다. 외국계 회사를 다니던 다른 친구가 자신의 연봉을 깎고 들어와 동업하고, 새롭게 이사한 더 커진 사무실에서 매주 치열하게 생존을 고민한다. 그들은 멋졌고, 그들의 멋짐이 부러웠고, 그 부러워하는 내 자신은 그만한 성장을 한것 같지가 않아 부끄러웠다. 나는 예민한 내 성격을 고치지 못한채 안정만 찾아다녔다.

이윽고 후배도 장소에 모였기에 근처의 양고기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를 빼고는 모두 스타트업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오늘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시청자가 되기로 했다. 후배의 이직 이유, 친구의 이별과 새로운 연애, 스타트업 인력 계획의 고충, 앞으로의 인생계획등을 논하며 대화는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친구의 제안에 따라 2차로는 방탈출을 해보기로 했다. 20대때에도 전혀 해본적없는 새로운 놀이라서 조금은 무섭고 많이 설레었다. 나와 내 동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놀아본 후배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즐거워했다. 방탈출은 굉장히 비쌌고(약 7만원), 냉정함을 가지고 퍼즐을 풀기가 쉽지 않았고, 4명이서 호들갑을 떨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이공계인이라는 신분이 우리에게 승부욕도 불어넣었기에, 퍼즐을 풀때마다 느끼는 희열, 막힐때의 답답함이 뒤섞여 즐거운 느낌을 주었다.

다음 자리에서 해산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두 집으로 흩어진다. 또 이런 자리가 있었으면.

6월 18일

주말 날씨가 또 좋아 페달을 밟아 광주시 한바퀴를 돌고 온다. 그저께도 자전거를 타고 서울 반바퀴를 돌다 왔으니 요며칠 체력 수준도 잊은 채 원없이 자전거를 탄다. 오늘은 햇볕이 강하고 날이 더워 무리할 수가 없다. 그늘을 찾아다니며 조심스럽게 페달을 굴린다.

돌아오는 길에 율동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에 잠시 들러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 빠져나간 수분을 채운다. 본가에 가지 않는 주말에 늘 그랬듯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언제나 똑같이 먹은 점심. 이제 밥을 찾아먹으며 그런대로 기운을 되찾은 장군이, 반주를 드시고 평온히 주무시는 아버지. 항상 주말에 듣는 별다를게 없는 이야기 임에도 그 소식이 항상 기대되고 마음을 안정되게 한다. 장군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씻어지고, 엄마의 목소리에도 근심이 묻어나오지 않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전화를 끊고 바라본 율동공원의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집에가는 길은 약한 내리막이라 마음을 더 내려놓으며 페달을 굴릴 수 있다.

6월 24일

할아버지가 생신이므로 주말에 다시 시간을 내기로 했다. 동생도 시간을 내었고 장군이도 기운을 차렸기에, 모두가 모여 조치원에 향할 수 있었다. 어릴적에는 친척들도 곧잘 시골에 내려와 잘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는 했는데, 어느새인가 명절이나 할아버지 생신같은날이 되어도 우리가족 말고는 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 오늘 할아버지께 용돈도 드리고 영양제도 드리며 좋아하기는 하셨지만, 할아버지가 진짜로 바라시는 것은 다른 가족들도 모두 모여서 화목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6월 27일

LG를 다니다가 청라로 직장을 옮긴 친구가, 회사일로 인해 분당에 온다고 하니, 냉큼 약속을 잡아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한다. 친구는 예전부터 자신의 회사가 직무 특성상 학벌을 굉장히 요구받고 있기에 대학원을 준비한다고 했었는데, 하반기에 학기등록을 마치고 이제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친구는 이제 더 바쁜 삶을 사는 대신에 새로운 직함, 새로운 업적, 또 못해도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반면에 나는 그동안 삶의 밀도를 견디지 못하고 팀장을 하던것도 1년도 못채운 채 도망쳐 나와서, 지금의 삶의 밀도 조차도 높다면서 날카로운 분노를 숨기지 않고는 했다. 이렇게 살면 앞으로도 어떤 마일스톤도 세우지 못한채 그냥 살아가기만 하게 될텐데, 이렇게 살게 될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버거를 먹고 대화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전하니, 친구는 오히려 지금이 백지와 같은 상태이니 마냥 걱정할 일도 아니지 않느냐며 말을 건네었다.

점심시간이 다되어 친구를 보내고 친구가 했던 말을 머릿속에 되뇌어 본다.

7월

7월 1일

사타구니가 심상치 않아 아침부터 예약을 잡아 비뇨기과에 들렀는데, '정계정맥류'라는 들어본적 없는 질환이라고 했다. 별것 아니라는데 수술은 필요하단다. 전립선염도 있단다. 특별한 이벤트나 여행같은걸 즐기지 못하는 나는 대신 건강한 루틴이라도 쌓아보겠다고 발버둥치며 살았건만, 이제 심지어는 건강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니 속상하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나와 먹었던 햄버거는 하나도 맛있지 않았다. 별다를 것이 없는 나인데도 괜히 기운이 더 쳐지고, 한동안 운동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허무하다.

할 수 있는 것은 하루 빨리 병을 낫게 하고 수술을 받고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사의 무서움, 알 수 없는 치료법에 대한 두려움도 딛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7월 4일

며칠전 비뇨기과에서 정계정맥류에 더불어, 전립선염도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 때 피도 검사하는 등 여러가지를 검사했고, 굉장히 실의에 빠졌었다. 오늘은 병원에서 그 검사들의 결과를 듣게 되었는데, 세균성 전립선염은 아니었고, 피 검사의 나머지 지표들은 다행히 정상이었다. 전립선염에 좋은 물리치료들을 처방받고, 120만원을 긁고, 수술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인 다음주로 수술날짜를 잡았다. 진단 받았을 때부터 받았던 조마조마한 마음을 그런대로 쓸어내렸다. 치료받는 일들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역시 아프면 병원에 가봐야만 한다.

진찰중에 자전거가 전립선염에 안좋냐는 내 질문에 냉큼 안좋다고 의사님이 바로 답을 해주시니 마음이 조금 복잡하다. 생물이 아닌것 조차도 마음껏 좋아할 수가 없단 말인가. 물론 의사님은 회음부 압박을 피하고 30분마다 쉬어주며 타며 장거리를 피하면 괜찮다고 해주셨지만, 자전거를 좋아하다 보면 그런 것들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거나 마음가짐이 될때가 있다. 좋아하는 마음을 억제하며 타야만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7월 7일

그간 사타구니의 불편함, 허리통증을 이유로 운동을 삼가고 있었는데, 병원 진찰때 운동을 해도 괜찮다고 하니 다시 시작해보기로 한다. 운동을 그만했던 동안에 가졌던 여유는 생각보다 달콤했기에 더욱 다시 운동하여 루틴을 바로잡아야만 한다. 다만 이전과 같이 내 몸을 한계로 몰아세우는것은 그만두고 조금은 중량을 줄여서 운동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과 같이 운동을 다시 하고 나니 알수 없는 개운함을 느낀다. 건강을 되찾고 루틴을 되찾으리라.

7월 9일

후배가 오랜만에 연락하여 다섯명의 대학 친구들을 소집했다. 서울에 있는 맛있는 오리요리 먹잔다. 후배는 뭔가 근질근질함을 못참았던 것일까. 나를 찾아주니 마음이 기쁘다. 폭우를 뚫고 광진구에 오리를 먹으러간다. 오랜만에 모두 모이니 입보다도 마음이 즐겁다. 오리는 맛있긴 했지만 솔직히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맛있는것과 함께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나누니 그것으로 됐다.

점심을 다 먹고서 얼마전 이사간 친구의 집이 그리 멀지 않았기에 그리로 놀러가자며 다른 친구가 여론을 모은다. 이사간 친구는 정리가 안되었다며 손사래 쳤으나 이내 친구들의 의견에 굴복한다. 예전부터 친구들이 놀러오는 것을 내심 좋아했던 친구라 이런일이 생겼을 적에 속으로 흐뭇해하는게 그의 태도에서 보여서 즐겁다. 마침 나만 차를 가지고 왔기에 내차를 타고 모두 이동하고 친구 동네의 백화점에서 먹을것을 사다가 같이 먹는다. 나는 친구들이 내차에 타서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나 역시도 태도에 즐거움이 배었다.

이사간 친구의 집은 인테리어가 아주 깔끔했고, 베란다 밖으로 도로와 수리산과 지하철역이 보여서 눈이 즐거운 동네였다. 게다가 매매를 통해 얻은 집이었기에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친구 집에서 근황을 이어서 나누다가, 기묘하게도 친구는 일이 있어서 먼저 집을 나가고, 우리가 남아서 배달음식을 시켜 저녁을 먹고 나왔다. 기묘하고 즐거웠던 만남의 시간.

7월 11일

오늘은 수술날이다. 전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함이 주사바늘과 수술에 대한 공포를 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수술실에 누워 주사를 맞으니 공포가 피로를 이긴다. 예상에 벗어나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필요하게 모든것들을 무서워 했다. 그리고 마취제가 들어왔다 나가며 모든것이 끝나있다.

사타구니의 통증은 다시 사타구니의 통증으로 대체 되었다. 잦아들기를 바라며 약 잘먹고 몸 조심하는것 말고 방법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있고, 떨어뜨린 우산을 줍고, 코가 간지러워 재채기를 하면서, 아랫배에 힘을 주는 동작이 생활 모든 움직임에 끼어들어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7월 15일

회사를 나갔던 전 동료분이 며칠전 생일이었던게 떠올라 고민 끝에 전날밤 메시지와 함께 선물을 보냈다. 오늘 아침에 답장이 와서 병원에 가는 동안 톡으로 근황을 나누었다. 아슬아슬한 대화의 끈이 이어지는 것은 좋았지만,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상대방도 절대 내게 관심을 먼저 주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대화가 끝나고 마음이 씁쓸하다. 대화의 말미에 날짜도 정하지 않는 밥약속을 말하고 그분은 긍정했지만, 언제 진짜로 밥을 먹게 될지는 알수가 없다.

나는 친구비를 내야 겨우 잠깐 동안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찌질한 인간이 되어버렸나.

짐이 너무 무겁지만 않다면 대중교통으로 서울을 가는 일도 생각보단 할만한 일이라는걸 오랜만에 느낀다. 병원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맥도날드에서 버거를 먹으니 다시 대학생때로 돌아간 기분마저도 든다. 버스를 탔던건 정말로 대학생 시절이 마지막이었기에, 버스에 앉아있으면 눈치를 봤다가 어르신이 탔을때 자리를 비켜드려야 할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한번은 정말로 옆에 나이가 조금 있어보이는 어른이 한분 서있었기에 앉으시라는 의미로 조용히 일어나 다른곳에 서있었는데, 그분이 다시 앉으시라며 내게 자리를 안내했다. 나는 괜찮다 말하고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자리를 양보하는 내 모습이 어색한 나이가 되어버린탓에 그분이 약간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내게 찾아온 변화는 비가역적이었기에, 나는 슬픔을 넘어 조금은 무섭기까지 했다.

7월 21일

오늘은 회사가 오전반만 하고 오후에는 쉬게 해주는 날이었으므로, 병원예약을 하여 수술 후 진료상담과 전립선염 치료와 진찰을 받기로 했었다. 다른 병원 방문때와 달리 차를 몰아서 갔다가, 병원일을 마치고 본가에 갈 생각이었는데, 서울을 지나니 병원으로 부터 예약이 내일이라는 문자가 날아온다. 전화를 해보니 내일 아침 예약으로 잡혀있었다며, 내가 알고있는 것과는 다른 예약이 잡혀있었다. 나는 분명 지난 예약때 금요일예약을 잡았고, 그때 대화내용상 3시가 좋은지 4시가 좋은지도 병원에서 물어봤던것으로 기억했는데. 뭐튼 오늘은 진찰 없이 전립선염 물리치료만 받고, 다음 예약을 잡기로 했다.

게다가 병원에 다다르니 오늘은 엄마와 아버지가 조치원에 내려갔다며, 올거면 내일 오라는 문자도 날아왔다. 자동차를 굳이 쓸 이유들이 다 사라져버려서 야트막한 허탈함에 잠겼다. 진료받고 돌아오는 길은 퇴근길과 맞물려 고속도로에서 고속을 못내니 야트막했던 허탈함이 점점 깊어만간다.

수술 1주일째가 되던날에 회복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집에서 자전거를 굴렸는데, 물리치료를 하면서 간호사분 말하기로는 회복때 할 수 있는 운동 중에 자전거가 최악이라며, 회복 전까지는 사타구니에 힘이 들어갈 운동은 자제해달라는 조언을 하셨다. 아무래도 루틴을 되찾는 일은 조금 더 미뤄야 될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오늘 진료를 받고 실내 자전거를 굴릴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허망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책을 펼쳐 읽었지만 잘 읽히지 않으니 이것도 루틴으로 만들어 연습이 필요하겠다.

7월 25일

이제 수술한지 딱 2주가 지났는데, 사타구니의 아픔이 가라앉는 속도가 더디다. 전립선염 치료는 4회차에 접어들어 이제 한번의 치료만을 남기고 있다. 완치 여부는 마지막 진료때 검사를 통해 확인하기로 했다. 나는 루틴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아픔이 어서 가라앉으면 좋겠는데, 나는 의학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에 그저 막연하고 두렵다.

7월 28일

세상사 돌아가는 일이 너무 무섭다. 이 무서움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것만 같아서 더욱 걱정스럽다. 사회 곳곳에서 시스템이 잘못되었다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기가 바쁘고, 온갖 지표들은 빨간 경고들이 들어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비가역적인 고장이 날것이라고 말한다. 지구는 이 사람 사는 일들을 더이상 못봐주겠는지 울긋불긋하게 열을 내뿜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손가락질 하기가 바빠서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무력한 나는 슬프다.

7월 30일

장군이가 아프다. 서있는 자세에서 기침을 그치지를 못하는 것이 목에 뭔가가 난 것 같다. 장군이가 힘들어하니 엄마가 힘들고 엄마가 힘드니 내가 힘들다. 장군이의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식탁에서 엄마가 주는 고기를 잘 챙겨 먹으며 장군이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시간을 우리와 보내고 있다.

그 전날밤 장군이가 기침을 하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할때, 나도 카페인의 기운에 섞여 잠을 이루지는 못한채 최면에 걸리듯이 장군이의 시간이 다 했을 때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집을 떠날때 엄마가 이렇게 눈이 똘망똘망한데 그런생각을 하느냐며 내게 핀잔했고 나는 이내 잘못했음을 느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픈 마음이 쓸어내려가지 않는다. 장군이의 아픔과 엄마의 고생스러움, 그리고 그것을 해소할 수 없는 무능한 나를 느낀다. 강아지는 사람과 잘 지내도록 진화해왔다고 들었건만 왜 그 수명은 인간에 미치지 못할까 아쉬운 생각이 들기만 한다.

8월

8월 3일

나보다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후배가 연락해 안해봤던 운동을 같이 해보자고 했다. 클라이밍이었다. 해보고싶은 운동이었고, 무엇보다 후배와 친해지고 싶었기에 저녁에 같이 가까운 클라이밍 센터에 찾아가기로 한다.

한시간의 교습동안 듣고 직접 매달려본다. 강사분의 이론적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하며 점수를 따려고 했지만, 정작 매달려 직접 움직일 때에 나는 몸이 굉장히 뻣뻣하고 힘이 들어가 있어 같이온 후배보다 학업 성취도가 낮았다. 여러 해동안 자전거와 근력운동을 했지만, 나는 본래 운동신경이 없는 신체임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클라이밍 운동에 대해 원래 갖고 있던 생각도 달라졌다. 매달리는 운동이라서 상체의 힘을 많이 쓰고 움직일 때에도 힘에 기반해 정적인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운동으로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하체의 움직임을 많이 강조했다. 상체의 힘 사용을 최대한 절제해 효율적인 근력사용을 추구하면서, 상체가 안정되었을 때에 하체의 움직임을 이용해 중심이동을 수행하는데다가, 하체의 도약을 통해 역동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기본이 되는 운동이었음을 알게되었다.

한시간 정도의 강습이 끝나고 난이도에 따라 자유롭게 볼더링을 해볼 수 있었는데, 클라이밍은 익숙하지 않은 가운데 손바닥의 악력 소모가 가장 극심했다. 손바닥이 아직 홀드의 마찰력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굉장히 쓰라려서 운동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한시간만에 손바닥을 모두 소모해 나와 후배 모두 오늘의 운동을 마치기로 했다.

운동을 마친 때가 저녁 9시였기에 거의 모든 음식점은 문을 닫았으되 햄버거집이 열었기에 버거를 먹기로 한다. 맛이 좋았다.

8월 5일

오늘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던 후배는 또 다른말을 전했다. 이 후배와의 약속은 휘발성이 너무 강하기에 이제는 만남을 기대하기 더욱 어려울 듯 하다.

태양은 며칠째 뜨겁다. 카페에 나왔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있는 모든 것에 대해 안부를 묻는다. 엄마의 목소리가 많이 나른했는데 엄마는 자다가 전화를 받아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런거겠지, 정말 그랬던거겠지… 지난주에 보았던 장군이의 기침은 그리 많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먹는 것을 잘 먹고 지낸다고 하기에 이 한마디로 애써 걱정하는 마음을 달래기로 한다.

8월 11일

갑자기 수많은 약속이 반짝거린다. 단톡방의 사람들은 연락을 읽는듯 안읽는듯 눈치싸움이 한창이다. 읽었다는 표시의 반짝거림은 저마다 주파수들이 달라서, 좀처럼 공명을 일으키지를 못한다. 어떤 약속은 또 기약없이 미루어져 버리고, 어떤 약속은 날짜를 정하지도 못하고, 어떤 약속은 정해놓고도 사람들의 망각에 의해 당일에 이르러 부정당할 위기에 처한다.

약속의 반짝임 속에 나는 타인과는 달리 발광체가 아니기에 역광이 되어버려 내 실루엣 조차 사람들 눈에 들지 못한다.

8월 12일

장군이의 안부를 확인했다. 장군이는 내가 지난번 걱정했던 때보다는 괜찮아졌고, 이따금씩 목에 있는 것을 뱉어내려는듯 기침을 하긴 했지만, 이제는 자기도 어떤 자세로 있어야 몸이 편해지는지 아는듯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오늘도 엄마가 해준 밥을 한 그릇보다는 조금 더 많이 먹는다.

돌아오는 길에 영화를 봐야 되겠다는 충동을 느껴 집과 가까운 영화관으로 향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영화가 잘뽑혔다길래 그걸 보기로 한다. 이름에서부터 풍자적일 것으로 예상한 영화였으나, 모두가 매몰된 아포칼립스 세상 가운데 메세지에 매몰되지만은 않은 영화여서 마음이 가려우면서도 너무 재밌는 영화였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에게 다왔다고 톡 하기로 했기에 영화 시작전에 연락할 생각이었는데, 영화 끝나고 너무 늦게 톡을 건네고 말았다. 엄마는 답장하지 않았다. 장군이가 새벽잠이 없어 강제로 공원산책을 돌았다고 하셨으니, 이번만큼은 주무시느라 답이 없는것이었으면 좋겠다.

8월 15일

며칠 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가 열린다는 것을 듣고 티켓을 예매했다. 같이 갈 누군가가 뚜렷하게 정해지지도 않았으면서 덜컥 두 장을 예매했다.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지인이 생각나 슬쩍 제안해봤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었기에 그 응답없음도 응답임을 이제는 안다. 아마 오랜만에 혼자 공연을 보러가게 되지 않을까. 이 가수의 음악들에는 혼자됨의 쓸쓸함도 담겨있기에 공연이 끝나 퇴장할 때 느끼는 쓸쓸함도 그의 음악을 곱씹다 보면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8월 18일

장군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 나의 유년기. 가족의 중심. 이제 안녕. 나는 이제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 없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붙들고 있던 인연을 떠나보내는 일 뿐이다.

엄마가 아침에 소식을 전하고 오전에 장례와 화장 절차까지 모두 마치셨기에 내가 집으로 돌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직접 장군이의 부재와 슬픔을 느끼고 싶었으므로 회사의 오후 휴식 시간에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모든 일을 마치고 평온하게 있었다. 나는 집에서 차분히 정리된 장군이의 흔적을 살피고 엄마 옆에 앉아서 장군이의 말년을 회고했다.

장군이가 겪었던 최근의 아픔들이 장군이의 시간을 재촉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장군이는 아침까지 기침을 겪다가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고 했다. 장군이의 늘어난 지병을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떠날때 아프게 갔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장군이는 그 아픔 속에서, 마치 자신이 나이를 먹고 계속 엄마만 쫓아다니며 살아온 삶을 매듭짓기 전 엄마에게 감사인사라도 하듯이 엄마 곁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마지막까지도 사랑받으며, 장군이 답게 떠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슬픔을 잊으려고 마음에도 없는, 이제는 밤에는 편히 주무시겠다, 장군이 약값은 더이상 안들어도 되겠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는 웃었다.

동생도 저녁에 찾아와 집을 살피고는 목소리로 한껏 슬퍼했다. 동생은 꼬맹이가 떠났을때 그랬던것 처럼 장군이의 분골함을 자기방에다 두고 자는 동안에 장군이의 시간을 추억하기로 했다.

장군이와 함께한 16년,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한 20년의 세월, 반생에 가까운 시간은 모두 마침표를 찍게 됐다. 가족의 구심점이 되고 분위기를 바꿔준 천사들은 그 역할을 다하고 먼 길을 떠났다. 나는, 우리 가족은 이제는 다른 표정을 지으며 살아갈 지도 모르겠다. 다시 찾아온 강아지 없는 시간이지만 나는 남은 시간을 강아지 생각하며 살것만 같다.

8월 19일

사회생활을 시작한 한 친구는 서울대입구로 자취를 시작해서, 광주시 초월에 살다가, 청량리에도 동거인을 구해 살고, 산본으로 거처를 옮기더니, 이제는 자기 집을 구하여 노원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오늘은 그 집들이를 예고하였기에, 대학 08학번 6인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6인이 모였으되 우리가 하는 것은 늘 그렇듯 집주인이 시키는일 해주기, 쓸데 없는 것 선물하기, 맛있는것 먹기, 스포츠 보면서 한마디 거들기, 얼근하게 취하기 정도였다. 먼저 집에온 양재사람, 일산사람 두 명이 집주인과 함께 오전에 장을 봤고, 점심 지나 내가 본가에서 담갔던 인삼주를 가지고 도착했고, 간단한 가구를 하나 조립했고, 청라 사는 친구가 도넛과 위스키용 컵을 사와서 맛있게 먹고, 마지막에 망우에 사는 유부남이 도착해 모두가 모였다.

우리는 맛있는 고기와 술을 먹으면서 지나간 일들을 추억했다. 마지막에 우리가 모인것은 작년 겨울의 펜션모임이었는데, 이때는 일산사람이 집안일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었다. 오늘은 그때 다같이 먹었던 인삼주를 다시 가져왔기에, 그때의 모임을 다시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예전에 이들이 함께 간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같이가지 못했는데, 다른 친구에게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기게 되어,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때의 아쉬움이 어느정도는 누그러지게되었다. 간사하게도.

모든것을 먹어치우고 슬슬 모움이 파할 쯤, 각자 집에 돌아가는길이 달랐으나, 나는 내 차로 모두 바래다 주기로 했다. 다같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나로서도 외롭지 않은 드라이브가 되었다.

8월 25일

과거에 같이 직장을 다니고, 서울 중구로 이직하며, 결혼 후 얼마전 강동에 집을 구한 후배가 집들이를 개최했다. 당시에 직장을 다니던 전 현직 관계자들이 한곳에 모여 다같이 음식을 먹기로 한다.

저녁 약속이었기에 운동을 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오늘은 점심시간을 운동시간으로 쓰기로 했다. 허리를 다치고 다시 회복되고 있음을 느끼며 데드리프트 중량을 조금씩 늘리려고 했는데, 마지막 세트에서 기어코 허리가 또 다치고 말았다. 이번엔 평소 자주 아팠던 왼쪽 허리가 아니라 오른쪽 허리가 아프다. 나는 허리를 다시 다쳤다는 좌절감과 동시에, 이번엔 오른쪽 허리를 다침으로써 '그렇다면 이제 양쪽이 균형있게 아픈거니까 천천히 회복하면서 들어올리면 균형이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미친놈인것 같다.

저녁시간에 맞춰 당도할 자신이 없었기에 오후 반차를 내고 가기전에 백화점에 들러 집들이 선물거리를 사기로 한다. 친구들의 집들이때는 같이 먹기 좋은 것들이나 가벼운 선물을 부담없이 건네기가 좋았지만, 이렇게 애매하게 친한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들은 정석적인 집들이 선물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정석적인 것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 고민스럽다. 고민끝에 생활용품 가게에서 나름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건 4장과 향이 나쁘지 않은 수건을 골라 포장하기로 한다.

목적지인 서울 강동은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베드타운이었기 때문이었는지, 가는길 정체가 엄청나다. 서울외곽순환도로의 서하남 빠져나가는 길은 30분간 1km도 채 전진하지 못한다. 나는 항상 서울이 목적지일때 서울의 지옥과도 같은 교통체증을 잊고 살다가, 이런 상황에 빠지고 크게 후회한다. 그리고 나중에 서울에 약속이 잡힐때 이런일이 반복된다.

후배의 집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있고 음식도 차려져 있다. 선물을 건네고 거실에 다같이 앉아 밥을 먹는다. 집은 대충 구경하고 대충 좋구나 느끼고 끝이다. 동네도 오면서 이미 다 구경한 바로는 좋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같은 직장에 있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자신의 직장이 좋다 나쁘다. 요즘 개발이 좋다 나쁘다는 말이 많이 오간다. 연애를 할것 같지 않을듯한 한 사람이 연애 하고 있다는 소식,그리고 그 연애가 성립하기까지 흥미로운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집들이를 한 가정이 딩크를 하고 있는 이유, 자식을 키울때 특히 외벌이로 두 자녀를 키우는 일에 대한 어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녀를 키우는 것이 좋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미 사회에 사람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들인 만큼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모범답안들이 답변으로 오간다. 재밌는 시간이었지만 이번 집들이의 주인공들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남편분의 취미인 프라모델/피규어 수집이야기. 강동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이유, 공유하고 있는 취미 이야기들을 더 듣고싶었는데 말이다.

시간이 다 되어 집으로 향하니 어느덧 열두시에 가깝다. 아침에 소화불량으로 잠을 못잔 피로가 오늘 일정의 피로와 겹쳐 한꺼번에 몰려온다. 오늘로 또 한주의 사회적 에너지를 모두 소모했다.

8월 26일

자취를 시작하면서 산 청소기는 싸구려 무선청소기였는데, 최근에는 완전히 충전해도 채 3분도 쓰지 못한다. 그리하여 어떤 청소기를 사야할지 무한한 고민에 빠졌다가 최근에야 청소기를 하나 샀다. 50만원짜리를 사고야 말았다. 젠장맞을것.

요즘의 무선청소기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무선청소기의 모습에서 벗어나 최신기술로 무장했다. 가벼우면서도 유선청소기에 준하는 흡입력을 자랑하고, 청소를 마치고 크래들에 꽂아놓으면 크래들이 청소기의 먼지를 빨아내어 한곳에 모아놓는데다가, 물청소가 가능한 청소기 헤드가 있어 물을 분사해가며 방을 청소하는 것 까지도 가능하다.

배달 시킨 청소기의 청소기 구성품들은 모두 낱낱이 분해되어 각개의 부품들이 모두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포장되어 있다. 마치 청소기는 자신이 이제 집에 도착했으니 어서 청소를 시작하라고 재촉하듯이 자신의 허물들을 한무더기 남겼다. 인간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문명의 이기는 이번에도 지구 환경에 생채기를 남기기로 한다.

이 참에 나는 더 이상 기능할 수 없게된 구형 청소기와 더불어 집에 쌓여있던 온갖 필요없는 것들에 비싼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낙인을 찍고 나의 왕국으로 부터 쫓아내기로 했다. 국왕은 환호성을 지르고 국민들은 숨을 죽였다.

9월

9월 2일

전날 일을 마치고 집에 가니 동생도 와있었고, 마침 부모님 두분도 야식을 드시려던 참이라, 또 다같이 앉아 주전부리를 한입 했다. 내가 무려 6년전에 사놨던 위스키가 아직 남아있던게 테이블에 올라왔는데, 이대로 술이 날아가버리는 것이 아까워 동생과 나도 한잔씩 따라 마시니 그간 느끼지 못했던 취기가 빠르게 올라왔다. 가족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몸의 취기가 자리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다음날 눈이 뜨이며 강한 갈증을 느끼니 모처럼 내가 술을 마셨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뚜렷하게 아픈것도 아니면서 뚜렷하게 가뿐한 몸도 아니라서, 모처럼 집에서 가져온 자전거를 길게 타지는 못했다. 마침 인천방향의 아라뱃길은 막혀있기에 대충 김포 어드메만 찍고 돌아오니 25k 쯤 탔다. 대충 그놈의 존2 영역내에서 탈만치 탄듯 하다.

장군이가 떠나면서 부모님의 활동범위에는 어느정도 자유가 생겼다. 요즘은 외식을 조금씩 다니신단다. 오늘도 대뜸 밖에서 곱창을 먹자 말씀하시니 따라나선다. 예전에는 우리가족이 근처 자주 다녔던 곱창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맛있는 곱창과 더불어 선지국, 계란같이 곱창과 같이 먹기 좋은 밑반찬을 다채롭게 제공해서 우리 가족이 아주 만족했었다. 그 집은 몇년전에 폐업해버리고 말았는데, 그래서 아버지는 곱창이 생각날 때마다 동네의 몇몇 곱창집을 찾아가며, 예전의 그 곱창집과 비교하며 정 붙일만한 가게를 찾아다녔다.

이번에 찾아간 곱창집도 맛은 괜찮긴 했는데, 아버지도 괜찮다고 말은 했으나 줄곧 예전의 곱창집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만족 못하신듯 하다. 까다로운 양반. 식대는 아버지가 계산하셨다.

9월 4일

허리를 다치고 스쿼트를 조금씩 해보고 있다. 허리에 아직 욱신거림이 남아있지만, 스쿼트를 해보니 큰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요즘뭔가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 좀처럼 허리가 낫지 않아 애매한 정도로 욱신거리고, 등은 자주 뭉치고, 수술했던 사타구니의 통증은 있는듯 없는듯 신경쓰이는 정도로 자극이 다시 느껴지고, 소화기능도 좋지 못하다.

작년과 비교해서 불과 한해만에 나는 나이가 들어버린 건가. 이번 건강검진때 어떤 진단이 나오게 될지 마음이 불안해진다.

9월 8일

팀장도 출근하지 않아 나른해진 오후에, 놀랍게도 전에 연락드렸던 회사 전 후배분이 내게 먼저 연락을 주셨다.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가, 퇴근시간이 다가오니 밥을 먹자고 하여 오늘은 운동도 거르고 바깥 밥을 먹기로 한다.

만나자마자 그분이 만들어내는 대화의 텐션에 내가 끌려들어가서는, 말하는 톤도 더 올라가고, 말하는 속도도 내가 말을 생각하는 속도를 앞선다. 그 텐션으로 인해 발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입으로 부터 무언가가 많이 튀는 내 모습이 느껴져, 퇴근하고 한껏 올라온 내 수염과 더불어 부끄러웠다. 최근에 바빴던 일, 이해할 수 없는 마라탕과 탕후루의 유행, 싫고 답답한데도 미묘하게 이끌리는 기괴한 콘텐츠들, 정찬성의 패배, 이씨 집안의 비밀들을 이야기했다.

만남을 마치고 그 분은 내가 계산했던 오늘의 비용의 반 이상을 송금하시고는, 사드리고 싶었다고 곤란해하는 내 말에 다음에 크게 내시라는 말씀을 남겼다. 나는 오늘의 대화가 다소 급작스럽고, 용기가 많이 필요했고, 사회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음에도, 그분이 말하는 '다음'이 보통 말하는 예의상 남긴 말씀이 아니기를 바랬다.

9월 10일

어제 운동을 쉬었고 금요일도 운동을 하지 않았으므로 오늘은 어떤 형태로든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자전거를 타기로 한다. 보통 그냥 집에 가만히 있어서는 내 몸상태가 어떤지 가늠이 잘 안되다가, 나와서 몸을 움직이고서야 몸상태를 알게 되는데, 그렇게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집으로부터 꽤 멀어진 다음이라, 목적지까지 가기엔 무리임에도 결정을 거두어 들일 수가 없다. 오늘은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등과 목근육 까지 경직되어서 두통까지 있다.

광진교 북단의 맛있는 베이글집에 가서 베이글을 먹겠노라 마음먹었는데, 오늘은 사람이 많이 다녀갔는지 이미 모든 베이글이 다 팔리고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기름지고 짭짤한 옆집의 햄버거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흐린 날씨라서 노을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노을이 꽤 멋들어지다. 한강변의 노을빛이 돌아오는 길의 쓸쓸한 마음에 무게를 더한다.

9월 11일

회사에서 장비를 교체한다고 옛 장비를 반납했더니, 뜻밖에도 맥북을 줬다. 그것도 내가 사볼까 고민한적도 있었던 13인치 맥북 에어.

갑자기 이렇게 잘해주는 건 불안하다. 보통 회사는 잘 나갈적에 환경을 먼저 개선시켰다가 못 나가는 시절에는 사람을 내치고는 한다. 물론 우리 회사는 직원에게 대놓고 나가라고 말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견딜 수 없을 만치 압박하고, 불합리한 의사결정 과정을 눈으로 보게 만들고, 서로 상충하는 의견들로 팔을 잡아당겨 나가게 만든적이 많다.

나는 몇년전 한해 사이에 있던 수십명의 퇴사행렬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이 회사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주기 전에 나갔던 사람들에게 사죄해야만 한다.

나는 그 퇴사하던 시기의 중심에 있었던 어느 한 높으신분의 퇴사 이후 복귀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 사람이 나갈때에도 이 수많은 퇴사의 행렬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인줄 알았더니 마치 무슨 위기의 회사를 구원해낼 구원자인 것 마냥 복귀하는 것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있는 차가운 알루미늄 바디의 노트북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수많은 능력있는 사람들을 사직의 용광로에 내 몰아 녹여낸 다음에 연금해낸 얼음장 같이 차갑고 미끄러운 바디의 13.5인치 노트북. 너희 회사의 사내 복지가 무엇이냐 물을 적에 '우리회사는 맥북을 준다'는 감언이설로 타인들의 눈을 흐리게 할 노트북.

9월 15일

또다시 오전반만 있는 날. 정계정맥류 수술 후 나아지는 듯 한 사타구니가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뭔가 무섭고도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회사 근처의 비뇨기과에 들러서 상담을 받기로 했다. 그곳은 수술 받기전 처음 사타구니가 불편해졌을 때 들렀던 곳이기도 했다.

의사분은 내 사타구니가 불편할 수 있는 사유를 차분하게 설명해주셨는데, 첫 진료때도 짚었듯 통증의 원인이 꼭 정계정맥류가 아닐 수 있고, 전립선염이라는 진단 자체가 최근 추세가 골반통증으로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만성적 통증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정계정맥류라는 것이 수술 후에도 외형적인 변화는 크게 없고, 혈관을 끊어내더라도 다시 새로운 혈관이 형성되어 혈류가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재발은 가능하지만, 수술한지 3개월만에 재발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의사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의사선생님은, 골반 통증이라는 것이 결국 사타구니 전반의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고, 현재로서는 여러 연구결과가 상충하면서 대증요법으로만 대응하고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리고 한편으로는 큰 병이 전혀 아니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나는 큰 병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다행이라 생각했고, 정확한 원인이 있어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아쉬워했다.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동네 친구를 만난다. 내 눈치를 많이 보면서 자신의 뜻을 숨기려 하는 친구라서, 때와 장소를 맞추는 일도 녹록지 않다. 병원문을 나서며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결정짓기로 한다. 딱 저녁먹을 시간에 맞춰서 부천 남부역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친구가 내게 무얼 먹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나는 파스타와 피자를 넌지시 말했는데, 사실 이것은 내가 엄청 먹고 싶은것은 아니었기에 내가 반대로 그 친구에게 물었고, 친구는 곱창을 먹고싶다고 말했다. 곱창집에서 주문해서 시켜먹어 보니 파스타를 먹었다면 많이 후회했을 것 같았다. 모처럼 친구와 나는 술도 한잔 기울이며 근황 이야기를 나누었다. 적당히 기분좋은 취기를 느껴서, 우리는 호프집에서 2차를 먹다가, 편의점에서도 먹어보자고 가볍게 던진 말에 친구가 흔쾌히 콜을 외치며 3차도 먹었다.

같이 알바하던 시절의 이야기, 서로 친했었을 때 범했던 실수들, 내가 갖고 있는 인간관계의 미숙함, 사람이 없을때의 외로움과 사람이 있을때의 두려움, 그녀의 부족한 자신감, 맛있는 곱창, 사람눈치, 시끄러운 어른들, 그녀의 일본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의 시간이 다하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지만 이미 막차는 지나가고 말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시간도 그렇게 지나가버리고 이제는 각자의 인생을 사는 친구가 되었다. 전기로 움직이는 택시를 처음 타봤는데 그 요금이 거의 만원에 육박하니 취기가 날아가버렸다.

9월 23일

비가 몇번 지나가고 가을이라고 할만한 날씨가 왔다. 예년보다 2주 정도는 늦게 찾아온 가을 날씨라고 느낀다. 아침에 늦게 일어났는데,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느껴 문을 나섰다.

타러 나가기 전에는 몸상태가 잘 가늠이 안됐는데, 공복이어서였는지, 그날의 몸상태가 안좋았는지 좀처럼 페달이 잘 밟히지 않는다. 서울까지 나가서 베이글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발길을 돌려 동네의 짧은 자전거 코스를 타기로 한다. 그 짧은 코스도 좀처럼 소화하기 쉽지 않다. 나는 나날이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왜이렇게 마음같지가 않은 건지 모르겠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와 집에 있는 동안에도 몸이 썩 좋다고 느껴지지를 않는다. 어째 오늘은 몸도 마음도 의욕이 잘 나지를 않는다.

며칠 있으면 건강검진이 있다. 건강검진때 뭔가가 나타나는 건 아닐까. 그 나타난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9월 25일

건강검진을 했다. 아침에 병원에 당도해 접수를 했는데, 검진사항을 변경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내시경을 빼버리고 하복부 초음파로 바꾸었다. 이런저런 검진을 다 하고나니 한시간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회사가 2년주기의 건강검진을 1년으로 바꾸었는데, 항목들이 좀 간소화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혈압이 높게 잡힌 것이(140/90) 마음에 걸린다. 이건 나중에 따로 개인적으로 재봐야 되겠다. 검진이 끝나고 나서도 마음이 불안하다. '괜히' 마음이 불안하다. 정말로 괜히 그런거였으면.

원래 생각도 없었는데, 지하철을 타고서 서현까지 나와 점심을 먹었더니 괜히 어디로 가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충동이 이끄는 대로 전시회를 검색해보니 오늘 예술의 전당은 휴일이고, 동대문에서 볼만한 전시를 하는듯 하여 바로 출발했다.

나는 자동차가 있는것이 어디로든 가기 편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한산한 지하철을 타며 서울에 가니 운전하면서 느꼈던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아 기분이 좋다.

동대문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본 전시는 '알폰스 무하' 전시였다. 알폰스 무하 전시는 예전에 한가람미술관에서 봤던 적이 있었고, 작가 특유의 포스터 그림체, 편안안 색감, 그리고 자연물과 여성을 중심으로 표현한 그림들을 보고 있도라면, 비너스를 그린 옛날 그림같으면서도 현대적인 표현과, 무엇보다 그려진 여성의 모습이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건강한 여성들을 그리고 있어서 보고 있는 동안에 기분이 좋아지는 기억이 있었다.

다만 전시는 티켓값에 비하면 조금은 아쉬웠는데, 알폰스 무하의 작품과 생애를 소개한다기 보다는, 그것을 음악과 움직이는 일러스트레이션, AI 기술로 엮어내어 보여주는 식이었다. 밀도높은 시청각 자료를 앉은 자리에서 주입해주는 전시는 개인적으로 짧은 시간에 내 속도를 작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아서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이 전시는 나한테 맞지 않았다. 알폰스 무하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포스터화 뿐 아니라, 알폰스 무하의 애국심과 민족주의적인 견해를 느낄수 있는 민속화들도 많이 그렸는데, 이것에 대한 소개가 그리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쉽다. 물론 나도 이것에 대해서는 이 전시를 보기 전까지 잘 몰랐던 부분이라, 소개해 준 것 자체는 고마운 일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가운데 또 다른 전시가 있어서 이를 충동적으로 찾아봤는데 '시적해상도' 라는 전시가 있어 바로 이어서 관람했다. 이건 아주 만족스러웠다!

9월 29일

또 명절이다. 엄마는 어제부터 고생스럽게 음식을 준비하셨다. 엄마의 실력에 비해 도와 줄 수 있는 영역은 조금 밖에 되지 않는데, 이번엔 그것도 받지 아니하시고 하루종일 앉지 못하셨다. 일찍 일어나 아침차례를 지내고 나서야 차 안에서 조금 눈을 붙이셨다. 오늘은 아침부터 차가 막혀 조치원에 내려가는 길 중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됐다. 몸과 마음이 답답해진다.

교통정체로 늦어진 탓에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소를 찾아간 시간도 늦었다. 늘 그렇듯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에 절을 올린다. 아버지는 다른 친척들이 해놓은 벌초가 성에 차지 않아 또 제초기를 드셨다. 늦게 산소를 찾은 탓에, 6촌 누나 형들과 오랜만에 인사를 했다. 6촌 누나와 형들은 모두 결혼을 했기에 각자의 배우자와 자녀들도 한 자리에 있었는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런대로 명절스러워 보였다. 두 남매는 성묘를 마치고 지역 축제에 같이 간다고 하는데 그 모습도 명절스러움이 느껴져서 부럽다고 느꼈다.

아버지는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벌초를 했느냐고 형에게 물으며, 제초기의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할아버지의 형제들은 이제 네것과 내것을 싸워가며 모두 흩어져버리고, 이제 기나긴 갈등끝에 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허례허식뿐인 듯 했다. 어떤 모양으로 벌초를 해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성에 차지 않을것이다. 내가 가져온 건강식품과 용돈이 잠깐 그들의 마음을 달래기야 하겠으나, 그것은 블랙홀 처럼 빨려들어가 무엇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 작은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인사드리며 문을 나섰다.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아버지의 친구들이 모여있는 멀지 않은 자리에 들른다. 아버지의 친구임을 증명하듯 이미 술에 절어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인사하자마자 외모평가, 음주강요, 건배사 강요가 나를 공격한다. 불쾌한 감정을 숨기기 힘들다. 겨우 마음속 갈등을 숨기고 다른 자리로 피신했으나 그곳에서도 듣고싶지 않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겨우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아버지는 뒷자리에 잠들고 동생과 나즈막이 담소를 나누며 집으로 운전한다.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소모적인 명절을 보내게 된지 꽤 오랜시간이 흘렀는데 이것이 끝이 없을것이란 생각이 들어 절망한다. 나도 좋은 명절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10월

10월 4일

연휴를 절반을 나누면 토요일까지가 전반일텐데, 전반전에 모든 추석일정을 마치니 속이 후련하다. 나는 나만의 평화를 찾는다. 일요일 오후에 한시간 반 쯤 페달을 밟아 그간 못먹었던 베이글을 사먹는다.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베이글은 품절이었지만 아무렴 어떠냐. 느긋하게 베이글을 먹고 돌아올 때에 하늘도 맑아 페달을 밟으면 저절로 평화가 폐에 스며들어온다.

사람들은 저마다 여행, 공부, 데이트 등등 밀도 있게 빨간날의 시간들을 채워나갔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계획을 생각하는 사이에 회의감이 마음을 앞질러 들어와 모두 집어던지고 남은 이틀은 카페에 나앉아있는다. 연휴의 안부를 묻는 카페 사장님과 무릎에 얼굴을 부비는 고양이가 쓸쓸함을 달래준다.

10월 5일

내일은 저녁에 약속이 있기에 오늘 저녁에 운동하는게 불가피하다. 데드리프트를 당겼는데 갑자기 허리가 비명을 질러 이내 내려놓았다. 허리는 참 민감하니 소중하게 다뤄줘야만 한다. 나는 까다로운거 별로 안좋아하는데.

10월 8일

좋아하는 가수 김동률이 4년만에 공연을 한다. 공연장에 당도하기 전까지 귀찮음, 나른함, 혼자가기에 아직 부족한 용기가 예매를 후회하게 만들었지만, 공연장에 도착해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느끼니 이 가수를 좋아했던 그 옛날 그래도 에너지가 있었던 나로 돌아간 듯 해서 기분이 좋다.

김동률 아저씨는 공연에 앞선 인터뷰에서, 가장 대중적인 셋리스트가 될 것이라는 예고를 했었는데, 그 예고는 사실이었다. 달달한 사랑노래를 중심으로 가장 최근에 나온 노래, 본인이 생각하기에 타이틀임에도 다른 노래들에 묻힌 노래 등 다양한 노래들로 귀와 마음을 호강시켰다.

김동률 공연을 이전 두번 가봤던 나로서는 대부분은 그때도 들어봤던 노래였기에, 새로운 노래를 듣지 못함이 아쉽다. 나는 김동률의 노래 중에 잔향/귀향/고독한 항해/동반자/희망 같은, 사랑을 말해도 마냥 달달하지는 않은, 회색빛이 느껴지는 노래들을 좋아하는데, 오늘 셋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아서 아주 아쉽다. 오랜만에 열리는 공연이라, 입문자 중심의 구성을 한게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

혼자가는 공연은 아주 오랜만이라 두렵고, 내가 김동률을 좋아했던 만치 아직도 이 가수를 좋아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드는 감동과 아쉬움이 나를 다음에 열릴 공연에도 발길을 이끌게 될 것만 같다.

10월 9일

나에게 한글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린시절 컴퓨터 학원에서 타자연습으로 쳤던 '나의 사랑 한글날' 이라는 글이었다.

돌이켜보면 한컴타자 연습에 실린 글에 좋은 글이 많이 있었다. 나는 별헤는 밤도 그 타자연습으로 알게되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때까지 배웠던 글들은 한 토막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별 헤는 밤은 가끔씩 그 파편으로 나마 머릿속에 되뇌고는 한다.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이별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10월 14일

아파트 단지에서는 매년 축제같은것을 한다고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이모가 키운 포도를 아주 많이 받아다가 이렇게도 먹고 저렇게도 먹다가, 잼으로 만들어 축제때 팔아보기로 하셨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나와 엄마 자리에 가보니 잼은 벌써 다 팔리고 엄마는 이웃분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는 벌써 몇잔 들이키셔서는 마치 외국의 스탠딩 파티마냥 축제를 즐기셨다. 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웬만한 순서들은 모두 끝나고 술이 들어가 흥이 오르신 중장년층 분들의 노래자랑 파티가 이어지고 있었다.

모든 축제는 끝날쯤 나도 카페에서 시간 보내기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도 이웃 분들과의 뒷풀이도 고사하고 집으로 고분고분 들어오셨다. 엄마가 해준 부대찌개가 맛있다.

10월 17일

정계정맥류 수술을 한지 3개월이 되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으나, 수술 부위의 붓기가 아직 빠지지않고, 이것으로 인한 통증도 어느정도 있었기에, 문제가 되면 또 내원해달라 하셨다. 자전거는 사타구니에 그리 좋지 않으니 가끔만 타라고 조언도 하셨다.

그러나, 오늘은 날씨가 매우 맑고 선선해서 자전거를 안탈 수가 없었다. 즉시 밖으로 나가 베이글도 사먹고 잠수교에도 가본다. 베이글 가게 사장님께서 내가 집어든 초코 베이글 하나는 가격을 받지 아니하셨다. 아 성은이야 가디록 망극할샤.

10월 19일

다달이 회식자리가 열린다. 오늘은 UI/UX를 담당하시는 분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저녁 회식이었기에 술과 맛있는 고기와 수많은 대화들이 오갔다. 나는 술을 마시지는 않았으나, 같이 자리하신 분들의 호응 덕분에 그런대로 흥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여섯명 이상이 모인 자리와 시끄럽게 떠드는 분위기의 주점에서 제정신을 붙들고 있기는 쉽지가 않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필요하게 많은 말을 했고, 다른 사람의 대화는 많이 듣지 못했기에, 그 형별로 혀는 술을 마셨을 때와 똑같이 텁텁해져 혓바늘이 생기고 말았다.

오늘 있었던 그나마 주고받았던 대화와 생각, 공감과 투쟁은 또 알콜같이 휘발되어 날아가버리고 다음날이면 같이 자리하기 전 보다도 더 큰 어색함이 남아있을 것만 같다. 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아직도 너무 어렵다.

10월 20일

건강검진표가 내게 다가와 '너는 아직 괜찮은 놈이야' 하고 말해주었다.

10월 22일

이번 시즌 자전거 마일리지도 4000k+도 넘었겠다, 날씨도 좋겠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등산을 다녀왔다.

목이아파 고개를 숙이거나, 속도계를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앞만보고 오르는 산길은 기분이 좋았다. 곧 붉어질듯 하지만 아직 나뭇잎은 많이 푸르다. 2주일정도는 지나야 단풍이 완연하겠다.

10월 24일

지난 회식때 자리를 같이 했던 사람들과 복도에서 마주쳐 인사했는데, 그 속에서 미묘한 냉랭함을 느꼈다. 회식으로 서로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은 헛되었고, 나는 또 약간 더 외로워졌다.

10월 27일

오늘 회사에서 뭔가 공유하기로 했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아 조금 미루었다. 내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그러면서 회사 안에서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이점을 살려 온갖 딴짓들을 섭렵한다.

두렵다. 어릴적부터 컴퓨터 학원에 다니며 컴퓨터로 밥벌어 먹는 꿈으로 살았었는데, 겪어낼 수록 이 일은 컴퓨터 일이 아니고 사람 일이라고 말한다. 딴짓을 할 때마다, 사실은 이 일을 마음속 깊은곳으로 부터 싫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0월 28일

본가에 들러 쉬다가 아침에 부모님 두 분의 건강검진 가는길을 바래다 드렸다. 건강검진이 끝났다는 아버지의 연락을 듣고 다시 병원을 향했는데, 아직 나오지 않아 기다리다가 전화를 드리니, 목 쪽에 조직검사가 필요해서 CT를 추가로 찍게 되었다고 하셔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서 엄마와 대화를 해보니 작년에도 비슷한 일로 아버지가 병원을 다니며 고생을 하셨단다. 그런데도 술을 줄이거나 하는 건강관리는 전혀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삶을 산다. 아 고집불통 영감쟁이 진짜.

11월

11월 4일

며칠간 자전거를 쉬었으니 오늘 자전거를 타면 꽤 몸상태가 괜찮아 멀리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호흡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피로도가 높아 페달을 밟는 동안에 잠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밤에 잠을 설쳐서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처음에 마음먹었던 남산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잠실에서 잠시 쉬었다가 발길을 돌렸다. 마냥 날씨도 흐릿하여 몸과 마음과 날씨가 모두 쓸쓸해져 버리고 말았다.

일기예보상 다음주 부터는 사실상 초겨울이라고 생각해도 될만큼 추워질터라, 사실상 오늘이 제대로 탈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끝맺음이 깔끔하지 못한것 같아 이 상황조차도 나를 닮은 듯하다.

11월 5일

그냥 할아버지에게 격달에 한 번쯤 전화를 드리는 일도 왜 이렇게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할아버지 잘 들리라고 큰 소리로 전화를 하려면 아무데서나 생각나는 대로 전화를 하기도 어렵다. 저녁무렵 전화를 드리니 경로당에서 전화를 받으신 할아버지는 마음이 가벼우신 듯한 말투다. 다행스럽다. 며칠전 엄마와 아버지가 내려가실적, 내게 주라며 어디선가 받아온 이불을 주셨다기에, 그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니 할아버지가 너털 웃음을 지으셨다.

할아버지가 별일없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바라는 마음이, 내가 내 자신에게 바라는 일 같기만 하다.

11월 7일

날은 갑자기 추워졌다. 요즘은 변화라는게 점진적으로 오는게 아니라 갑자기 찾아와 나를 놀래킨다. 나이는 점진적으로 먹기에 노화도 점진적으로 오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에 선명하고도 부끄러운 옛날 생각이 머리를 스치다가 지금의 나를 떠올리면 갑자기 나이를 먹어버린 것만 같아 또 깜짝 놀란다. 나는 아무것도 자란게 없는데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 어떤 날에는 갑자기 억울하고 서럽기 까지 하다. 하소연 할 곳이 없어 혼자 몸서리친다.

11월 14일

아버지가 식도암 진단을 받았다.

11월 18일

아버지의 소식을 모두 듣고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화로 엄마에게 말하니 나에게나 동생에게나 오지 말라고 하였으나, 기어이 모두 집으로 모여들었다. 저녁을 드신 아버지는 병에 대해서 별말씀이 없으셨다가, 모두가 모여 가만히 TV를 보고 있을 적에, 넌지시 한마디 던지셨다. '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운을 떼시며, 어떤 검사를 받으셨는지, 비용은 얼마나 들었는지, 어떻게 병원을 옮겨가며 상담을 받았는지 모두 말씀하셨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아버지조차도 처음 겪는 일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시려는 용기를 동시에 느낀다.

그리고 나와 동생은 아버지 말씀에 추임새를 넣으며, 이 일도 지나갈 것이라는 듯이 여러 말들을 건네었다. 나는 아버지를 걱정하지 않을테다.

11월 24일

원래는 주말이 되어야 엄마에게 전화를 한통씩 하는데, 한주가 거의 끝나가 괜히 마음이 급해져 운동이 끝나자 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오늘따라 엄마 목소리는 조금 더 커진 목소리로 이모가 집에 놀라왔다고 말했다. 나는 뭔가 마음이 놓여 더 안부를 묻지 않고 몇마디만 건네다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가 암을 진단 받고도 아직은 별일이 없듯이 우리 가족의 일상이 굴러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

11월 25일

대학생활을 같이한 친구가 오늘 결혼식을 한다. 친구의 결혼도 축하할 일이지만, 같은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의 지금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한자리에 다같이 모여 밥와 커피를 마시니 그때의 추억은 아직 추억이라고 하기에 애매할 만치 선명하다.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내가 어릴적 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해보이고, 단단해진듯 하다며 내게 말했다. 나는 손사래 치며, 그저 도망치고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사실이 그랬다. 예전의 내 모습을 돌이켜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차이점이라고는 내게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때에 비하면 없기에 그저 침묵하고 있다는 차이 뿐이었다. 내 자아가 그리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 해봤자, 그렇게 좋은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깨달으며 살았다. 나는 겉으로는 겸손과 자기객관화가 되어있는 것 처럼 말해도, 속으로는 '내 모습은 뭔가 매력이 있고, 누구보다도 선하며, 그리고 그 선함을 누군가는 알아줄 것이다' 라는 이상한 자신감을 가지며 살았었다가, 어느 순간에 나는, 이석원 작가가 말하던, '내 자신이 보통의 존재가 되는 느낌'을 경험하고 나서 부터는,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설득하지 않고 살기로 마음을 먹고 만 것이다.

11월 27일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이제는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며 함께하자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거짓말에 가깝다. 다가올 아픔과 두려움을 함께 나누고 맞서 싸워 연대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자고 함께 할 사람에게 말을 건넬 수는 없다. 그러면 도망가버리고 만다. 혼자가 되어 맞이할 미래가 너무 무섭다.

11월 28일

아버지의 진료를 위해 온가족이 모여 병원에 갔다. 삼성병원까지 가는길에 아들들이 모셔다 드리리라 했으나, 아버지는 한사코 거절해 직접 운전하셨다. 가만히 있으면 답답한 마음 더 깊어지겠다 싶으셨나 보다.

한껏 긴장해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오고 간다. 가까운 병원의 의사들이 가보라고 하는 '큰병원' 이라서, 첫 진료로는 올 수 없는 병원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승에서의 생존권을 번호표 뽑고 기다린다. 이 병원에 온 사람들에게 가만히 서서 자신의 아픔과 삶의 의미 시간의 소중함과 허무함 같은 막연한 감상은 끼어들 틈이 없다. 그저 진료를 받으면 다음 검사를 하고, 검사가 끝나면 또 다음 검사가 있다가, 병원비 수납이 끝나면 한시 바삐 떠났다가 다음에 다시 와야 하는 일사분란한 곳이다. 살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

진료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아버지의 암은 초기였고, 전이는 없었지만, 간단하다는 내시경 시술을 할 정도는 아니기에 수술이 필요하고, 바로 수술하는 것과 방사선 치료 후 수술하는 것 두가지의 길이 있는데, 의사는 후자를 권했다. 아버지는 별 말씀없이 의사의 권유를 따랐다. 그리고 너무도 빠르게 진료는 끝나버려서, 내가 궁금한 것을 나서서 물어볼 틈이 없었다.

진료가 끝나고 아버지가 받은 진료 설명서에는 다음에 해야할 일이 명확하게 적혀 있기에, 한번 진료를 받고 나면 가만히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 진료 설명서 처럼, 아버지의 앞날에 그러한 '막연함' 같은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진료 받으면 치료 받고, 치료 받으면 또 다음 치료 받고. 그래서 모든 수순이 끝나면 이전과 같이 돌아갈 수 있는 설명서이기를 바랬다.

돌아와서 집근처에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숯불에 구워진 고기를 먹는다. 진단받고 한달 가까이 술을 멀리한 아버지가 오늘만큼은 한잔 먹자신다. 술과 담배를 멀리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지 두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으나, 붙잡고 말릴 수 없었다. 아버지의 병의 근원이 마음고생이냐, 술이냐. 나는 그 무게를 가늠할 수가 없다.

이민혁_2023년.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3/12/01 16:58 저자 220.94.163.24